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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얼 Jan 25. 2021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바리스타가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비밀


오전 6시 30분, 매일 반복되지만 늘 귀를 찌르는 듯 불편한 알람 소리가 들려온다. 


손을 더듬어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을 찾아 알람을 끄려 하지만, 잠금을 해제해야만 알람을 끌 수 있기에 억지로 억지로 눈을 뜬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잠금을 풀고 알람을 끄는 데 성공한다. 슬슬 잠결에 온몸에 맺혀있던 적은 양의 땀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아, 빨리 침대에서 나와야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다행히, 아니 역시나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다. 그럼 난 슬슬 아버지가 드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매일매일 거의 같은 메뉴와 준비 순서. 서늘한 다락에서 사과 한 알과 신선한 고구마 다섯 개를 꺼내온다. 고구마는 씻어서 오븐에 굽고, 사과 한 알은 깎아서 미리 구워둔 계란과 함께 접시에 담아낸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꺼내서 잔에 따라놓는다. 



'음.. 고구마는 30분 정도 구워야 하니 시간이 넉넉하군. 이제 내 커피를 내리자' 


빠르게 식사 준비를 끝내고 오늘의 첫 커피를 마시기 위한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물을 데우는 일이다. 주전자 모양의 전기포트에 정수된 물을 가득 담아 전원을 올린다. 그리고 다락에서 락앤락 통에 이중 밀봉해둔 원두를 꺼내온다. 식탁에서 락앤락 뚜껑을 열고 원두 패키지를 개봉하여 향을 한껏 맡는다. 신선한 원두의 향은 가볍고 고소하면서도 몇 번씩 코를 대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 


친구가 손수 만들어준 원목 핸드드립 스탠드 아래에 둔 검은색 저울을 꺼낸다. 그리고는 전동 그라인더의 윗 뚜껑을 뒤집어 저울 위에 올린다. 원두 패키지를 기울여, 오늘 마실 커피 원두를 계량한다. 늘 18.3g으로 매번 정확한 양이다. 원두가 담긴 그라인더 뚜껑을 들고 부드럽게 뒤로 돌아서 전동 그라인더의 호퍼(분쇄 전의 원두를 담아놓는 곳)에 그대로 원두를 붓고 뚜껑을 닫는다. 


곧바로 전동 그라인더의 오른쪽에 있는 타이머 전원을 적당히 돌려, 원두가 다 갈릴 때까지 작동시킨다. 그라인더가 윙- 소리를 내며 원두를 갈아내는데, 이 소리는 가까이 있으면 꽤 거슬리지만 닫혀있는 방문을 뚫고 깊은 잠을 깨울 정도는 아니다. 원두가 다 갈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라인더도 멈추었다. 오늘도 쓸데없는 공회전은 없었던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물이 다 끓었는지 확인한다. 


확인하는 순간 물이 다 끓어오르면서 전기포트의 전원이 꺼졌다. 팔팔 끓는 물이라도 생각보다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바로 커피를 받을 둥근 모양의 유리 서버 위에 칼리타 웨이브 드리퍼를 올리고 종이 필터를 그 위에 얹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종이 필터에 뜨거운 물을 골고루 부어서 적셔준다. 뜨거운 물이 종이 필터를 타고 서버로 떨어지며, 특유의 종이 냄새를 어느 정도 날려준다.


필터의 종이 냄새를 날리는 것과 동시에 유리 서버를 예열했으니, 씻어낸 물을 그대로 버리고 저울 위로 올린다. 이후, 전기포트의 뚜껑을 열고 전자 온도계를 넣어서 몇 도까지 떨어졌는지 확인한다. 만약, 물의 온도가 96도 밑으로 떨어졌다면 물을 다시 끓여야 한다. 온도계가 정확한 온도를 찾을 때까지는 몇 초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갈려진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드리퍼를 살짝 흔들어 표면을 평평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저울의 영점을 다시 맞춰준다.


휴, 다행이다. 물의 온도가 다행히 97도로 딱 맞다. 바로 전기 포트의 뚜껑을 닫고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한다. 


먼저, 36g의 물을 가볍게 얹는 느낌으로 부어서 갈려진 원두를 적신다 (이 과정을 뜸을 들인다고 한다). 고르게 적셔진 원두는 맛있는 빵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작은 기포를 뿜어낸다. 그 기포와 함께 퍼져오는 원두의 첫 향은 너무나도 환상적이다. 그 향을 즐기며 30초 동안 뜸을 들이고 나서 본격적인 커피 추출을 시작한다. 


가운데부터 나선형의 모양으로 물을 부어준다. 이땐, 물줄기가 너무 얇지도 굵지도 않게, 그리고 물을 붓는 속도가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한쪽에만 많은 양의 물을 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아주 신중하게 작업해야 한다. 약 1분 10초의 시간 동안 저울이 288g을 표시할 때까지 물을 부어준다. 이제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드리퍼에 있는 물이 다 빠지고 추출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다. 


처음 뜸을 들일 때부터 약 3분이 넘으면 모든 추출이 끝이 난다. 물이 다 빠진 드리퍼를 옮겨놓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서버에서 커피 향을 맡아본다. 역시나 환상적이다. 내가 마실 한 잔 분량의 양을 덜어 두고, 어머니를 위해 조금 남겨둔다. 어머니는 물을 많이 섞은 아주 연한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커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구마가 다 익을 때까지, 그리고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까지, 오롯이 나만을 위한 10분 동안 평화로운 모닝커피를 즐긴다. 





저는 매일매일 아침마다 위의 순서대로 커피를 만들어서 마십니다. 너무 피곤하거나 아파서 늦잠을 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같은 일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겨우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에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쉽게 쉽게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실 수도 있습니다. 많은 양의 커피를 한꺼번에 갈아놓고, 스푼으로 푹푹 퍼서 뜨거운 물을 붓고 대충 따라 마셔도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수년간 커피를 하면서 어떤 원리로 커피가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다 보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저는 최대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으니까요. 저처럼 귀찮게, 그리고 많은 도구를 써가면서 커피를 만들면 맛있냐고요? 음.. 맛있긴 합니다. 최소한 저와 주위 사람은 만족하는 정도의 맛입니다. 


사실, 약간의 속임수(?)를 이용해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합니다. 최대한 대충대충 맛없게 내린 커피와 정확한 순서대로 맛있는 성분을 잘 뽑아낸 커피를 비교해서 맛보게 해 주면, 누구든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나는 커피 맛을 몰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도요. 


이다음의 글부터는 개인적으로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데 꼭 필요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하려 합니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또는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핸드드립 강의 책처럼 보일까 봐 많이 고민했지만, 저의 가장 소중한 독자이자 친구인 한 명이 이런 내용으로 꼭 한 번 써달라고 해서 기획해봤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분들 중에 단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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