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얼 Feb 15. 2021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 난류

바리스타가 만드는 커피가 더 맛있는 이유


커피를 추출한다는 것이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꽤나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저 갈려진 커피 원두 위에 뜨거운 물을 붓고 갈색 액체가 떨어지면 끝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물리적, 화학적 단계가 있습니다. 특히 커피와 뜨거운 물이 만나는 단계가 핵심인데 그것을 먼저 이해해야 오늘의 주제인 난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할 테니 겁먹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c)만얼 | 커피 추출 과정


그림만 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의 그림 처럼 커피와 물이 만나는 단계에서 본격적인 커피 추출이 일어납니다. 커피 입자에 닿은 뜨거운 물이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커피의 입자 표면에서 향기와 맛 성분을 가져옵니다. 바로 그 성분을 머금고 있는 갈색의 액체가 바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난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리스타가 아니라면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인 '교반(Agitation)' 또는 '난류(Turbulance)'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문과 출신이라 교반 또는 난류가 어떤 다른 분야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지 잘 모르지만 커피 추출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용어입니다. 커피를 추출할 때 교반이나 난류를 모르는 것은 차를 운전할 때 연비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엄밀히 따지면 교반과 난류는 다른 용어입니다. 교반은 성질이 다른 두 가지의 액체를 섞는 것이고 난류는 한 가지 액체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라떼아트를 위한 스팀밀크를 만들 땐 교반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며,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 땐 난류라는 단어가 적절합니다. 그러나 둘 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섞는다'는 의미로 비슷하게 사용됩니다. 실제로 많은 바리스타들이 편의상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요. 저도 지금부터는 난류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c)만얼 | 교반과 난류의 차이


위에서 한 번 강조했지만, 난류는 커피를 추출할 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게 있습니다. 바로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세기의 균일한 난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난류는 곱게 갈린 커피 입자 사이로 뜨거운 물이 흐르는 과정에서 커피의 향과 맛 성분을 알맞게 추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커피의 성분을 잘 빼내야 한다는 말이지요.


난류의 세기는 일정 시간 동안 물이 떨어지는 양과 속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그저 커피 위로 뜨거운 물을 한 곳에 수직으로 떨어뜨리면 난류가 생길까요? 네, 물론 일어나긴 합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형태의 난류는 아닐 것입니다. 커피의 모든 입자에 물이 골고루 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물을 부어줄 때 나선형으로 천천히 돌립니다. 그렇게 하면 물이 커피에 골고루 닿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주전자를 나선형으로 돌리면서 비교적 일정한 양의 물줄기를 일정한 속도로 골고루 부어주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습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 주전자를 어렵게 돌리는 것 대신 물을 편하게 붓고 나서 작은 스푼으로 저어주거나 아예 드리퍼를 손으로 잡고 돌리기도 합니다. 이 또한 매우 좋은 방법이니 커피 추출에 고민이 된다면 이 방법을 사용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물줄기의 세심한 컨트롤로 추출된 커피가 더 맛있는 것 같긴 합니다.




자, 그럼 위에서 이야기한 적절한 세기의 난류 범위에서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났을 땐 커피가 아주 흐릿하고 시거나, 반대로 아주 날카롭고 써집니다. 이해가 쉽도록 아래에 그림으로 표현해 두었습니다.


(c)만얼 | 커피의 난류


양극의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과 반대로 커피의 성분이 잘 추출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추출한 커피가 맛없는 이유가 바로 커피의 성분이 잘 추출되지 못한 것 때문이지요. 난류가 너무 부족하면 단맛을 내는 커피의 성분이 충분히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흐릿한 느낌과 함께 신맛이 두드러집니다. 반대로, 난류가 너무 강하면 쓴맛을 내는 필요 없는 성분까지 함께 추출되기 때문에 날카로운 느낌과 쓴맛이 두드러집니다. 그 중간 위치의 적절한 난류가 있을 때 비로소 선명한 느낌이 있는, 좋은 향과 단맛을 가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력 있는 바리스타의 커피가 맛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적절한 난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선 에피소드에 나온 일정한 커피와 물의 비율과 그라인더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난류는 커피 성분의 추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요소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즐거운 홈카페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그리고 난류 뿐만 아니라 물의 온도 또한 커피 성분의 추출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이니, 재미없더라도 한 번씩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읽고 나면 조금 더 완벽한 홈카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전 03화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 그라인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