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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얼 Mar 08. 2021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 물의 온도

뜨거운 물이라고 다 같은 뜨거운 물이 아니다.

  

(c)만얼 | 뜨거운 인스턴트커피


한국의 인스턴트커피는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믹스커피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최근에 함께 일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가 믹스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빵 터진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정수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정수기에도 뜨거운 물이 잘 나올 텐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건 팔팔 끓는 물을 부어줘야 제맛이야"라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외국인 친구의 '짜식, 뭘 모르네' 하는 듯한 표정과 대답을 듣고 있다 보니 왠지 기억 속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에 석유난로 위에서 주전자로 물을 펄펄 끓여,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반 정도 물을 채워서 양손으로 잡고 마셨던 기억이었습니다. 새벽에 바닷가에서 마셨던 그 커피는 유난히 더 달고 향긋했습니다. 




커피를 내릴 때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뜨거운 물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물'의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믹스커피를 마실 때처럼 펄펄 끓는 물을 바로 커피 원두에 부어도 맛이 있을까요? 아니면 굳이 뜨겁지 않고 미지근한 물을 부어도 맛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난번 난류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거의 똑같이 물 온도가 적절하게 뜨거울 때 커피가 가장 맛있습니다.  


(c)만얼 | 물의 온도에 따른 커피 맛의 변화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물의 온도에 따른 커피 맛의 변화는 꽤 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잘 갈려진 커피 가루와 뜨거운 물이 만나면 커피 입자에서 맛과 향 성분이 추출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물에 소금을 녹일 때 그냥 찬물보다 뜨거운 물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커피 성분도 마찬가지로 보다 높은 온도에서 잘 녹아져 나옵니다. 


보통은 약 90도에서 96도 사이의 물을 사용했을 때 커피 입자에서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딱 원하는 정도의 성분이 잘 추출되었을 때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좋은 향과 단맛, 깔끔한 질감과 적절한 농도의 커피인 것이지요. 


그러나 물의 온도가 너무 낮을 경우에는 물이 커피 입자 속까지 침투하지 못하고 겉을 씻어내는 정도에 그칩니다. 흔히 우리는 '수박 겉핥기 식이다~'라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딱 그 표현이 어울립니다. 성분을 제대로 빼내지 못하니 콩 씻어낸 물처럼 비리고 떫은 향과 맛이 나고, 흐릿하고 옅은 느낌이 강합니다. 


반면에 물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뜨거운 물이 필요 이상으로 커피 성분을 추출합니다. 너무 과하게 빠져나온 성분들은 쓴맛을 내고 섬세한 아로마 성분을 파괴하여 향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까칠까칠한 느낌의 질감과 농도로 입 안을 불편하게 합니다.  


자, 바리스타가 커피를 추출할 때 왜 비싼 온도계를 사용하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예민한 바리스타들의 입맛에는 1~2도의 물 온도 변화에 따라서 변하는 커피의 맛도 극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어떤 카페에 가보면 아래에 있는 사진처럼 투박하게 생긴 기계가 브루잉 바 위에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아주 정밀한 수준으로 온도를 측정해주는 기계인데 약 10만 원대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주전자 모양의 이쁜 전기포트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제품은 20만 원대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TES 정밀 온도계, 네이버 이미지 검색


이제 커피를 추출할 때 온도가 중요한 이유에 동의하시나요? 그러나 홈카페를 하면서 10만 원대의 온도계를 구비해놓기는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심지어 20만 원짜리 전기포트라니요..! 그리고 인터넷에 찾아보면 2-3만 원대의 가정용 온도계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매일매일 커피를 추출하다 보면 매번 온도를 재기도 귀찮습니다. 그러니, 오늘 제가 가벼운 팁 한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1. 전기포트에 물을 팔팔 끓인다.

2. 물이 끓고 전원이 꺼지는 즉시 그 물을 커피 추출에 사용할 커피포트에 붓는다. 

3. 커피포트에 절반 정도 채운 뒤 두세 번 정도 돌리며 가볍게 물을 식힌다.

**만약, 커피포트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물컵도 괜찮습니다.

4. 가볍게 식힌 물을 다시 전기포트에 붓는다. 

5. 그 물을 다시 커피포트에 옮긴 후 바로 사용한다. 


(c)만얼 | 온도계 없이 끓는 물 식히기


제가 여러 번 실험해본 결과, 이렇게 하면 대개 94도 정도의 물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 쓰다 보니 5단계가 되었지만 실제로 해보면 몇 초 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따로 온도계를 구매하지 않고도 적절한 온도로 커피를 쉽게 추출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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