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밀 vs 전동 그라인더
...... " 친구가 손수 만들어준 원목 핸드드립 스탠드 아래에 둔 검은색 저울을 꺼낸다. 그리고는 전동 그라인더의 윗 뚜껑을 뒤집어 저울 위에 올린다. 원두 패키지를 기울여, 오늘 마실 커피 원두를 계량한다. 늘 18.3g으로 매번 정확한 양이다. 원두가 담긴 그라인더 뚜껑을 들고 부드럽게 뒤로 돌아서 전동 그라인더의 호퍼(분쇄 전의 원두를 담아놓는 곳)에 그대로 원두를 붓고 뚜껑을 닫는다.
곧바로 전동 그라인더의 오른쪽에 있는 타이머 전원을 적당히 돌려, 원두가 다 갈릴 때까지 작동시킨다. 그라인더가 윙- 소리를 내며 원두를 갈아내는데, 이 소리는 가까이 있으면 꽤 거슬리지만 닫혀있는 방문을 뚫고 깊은 잠을 깨울 정도는 아니다. 원두가 다 갈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라인더도 멈추었다. 오늘도 쓸데없는 공회전은 없었던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물이 다 끓었는지 확인한다."......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brunch.co.kr) 중)
집에서 커피를 추출할 때 그라인더의 유무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가장 큰 변화는 그라인더를 가지고 있으면 커피를 훨씬 더 쉽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라인더는 사실 집에서 커피를 추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단골 카페 또는 온라인에서 커피를 구매하면서 본인이 사용하는 추출 기구에 맞게 분쇄를 요청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단, 주의할 점이 구매처가 아닌 다른 카페에서 원두를 분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카페 입장에서 썩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커피를 살 때부터 전량 분쇄해야만 합니다.
원두를 구매하면서 전량 분쇄했을 땐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 분쇄된 원두는 그 신선도가 떨어지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분쇄된 상태의 커피는 일반적인 원두 상태의 커피보다 몇 배 이상은 빠른 속도로 산패가 진행됩니다. 쉽게 말하면 아름다운 커피의 향이 변질되는 속도가 몇 배 이상 빠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내가 선택한 분쇄 옵션에 해당하는 추출 방식 외에는 적용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하리오 V60'용 분쇄도는 '칼리타' 드리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모카포트'같은 고운 분쇄도가 필요한 방식에는 훨씬 적용하기가 힘듭니다.
때문에 그라인더가 있으면 신선한 커피를 조금 더 오랜 기간 동안 즐길 수 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험 VS 편리함
보통 저가의 핸드밀은 2만 원에서 3만 원 사이에 적당한 것을 구할 수 있지만 커피를 분쇄했을 때 상대적으로 입자가 고르지 못하고 커피를 분쇄할 때 조금은 과장해서 많은 힘(massive power)이 필요합니다. 물론 핸드밀도 20만 원대가 넘어가는 고가의 제품이 있지만, 여전히 분쇄할 때 많은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성인 남자인 제가 해도 20g 넘게 갈다 보면 어느새 이를 꽉 깨물고 있으니까요. 반면 10만 원대에서 20만 원대의 전동 그라인더는 꽤 균일한 분쇄 입자를 보여주는 동시에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으로 쉽게 원두를 갈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300만 원대를 호가하는 매장용 그라인더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내가 직접 커피를 갈아서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주기에는 핸드밀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토요일 아침, 화창한 날씨에 커튼 사이로 햇빛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밝은 햇빛 덕분에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눈이 떠진 그녀였다. 간밤에 실컷 잔 것 같은데도 휴대폰을 보니 아직 9시밖에 되지 않았다. 더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다. 최근에 홈카페를 시작했는데 여유로운 주말 아침,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가장 먼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서늘한 찬장에 보관해 두었던 원두와 저울을 꺼낸다. 혼자 마시기 적당한 양의 원두 15g을 계량해 이쁜 모양의 하리오 슬림 핸드밀에 털어 넣고 식탁 의자에 앉아 슬슬 갈아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창문 밖의 푸른 하늘을 내다보며 분쇄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신선하고 향긋한 원두의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동시에 들려오는 물이 끓는 소리.. 완벽할 것만 같은 아침이다.
여유가 있을 땐 어딘가에 앉아서 슬슬 커피를 갈아내고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손이 돌아갈수록 향긋한 커피 원두의 향이 점점 더 진하게 올라오는데 그럴수록 내가 직접 만든다는 보람도 함께 커져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 핸드밀은 원두를 분쇄하는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울 때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핸드밀은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으면 사용하기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다 보면 원두 분쇄가 귀찮아서 어느 순간부터 손이 잘 가지 않기 시작하고, 큰마음먹고 사두었던 커피 용품들 위엔 먼지가 쌓여갑니다.
반면에 전동 그라인더는 매우 편리합니다. 버튼 하나만 눌러 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알아서 원두가 분쇄되어 나오며 입자의 균일함도 상대적으로 뛰어납니다.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세고 빨라도 전기로 돌아가는 모터만큼 빠르고 안정적으로 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몇 번을 마셔도 힘들일 필요 없이 버튼 하나면 해결이기 때문에 자주 손이 갑니다. 대신에 가격대는 높은 편입니다. 제 기준으로 괜찮은 그라인더를 사기 위해서는 10만 원 이상은 써야 합니다.
저는 집에 있는 날에는 커피를 하루에도 두세 번씩 내려 마시기 때문에 편리함이 더 중요합니다. 때문에 전동 그라인더를 두고 매우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라인더에 대해서 물어볼 땐 예산을 먼저 물어보고 편리함과 경험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전동 그라인더 쪽으로 더 추천하긴 합니다. 굳이 가격대가 저렴한 것도 아닌 전동 그라인더를 추천해주는 이유는 그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커피를 만들어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편리함과 특별한 경험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요?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커피를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 하루 이틀의 특별한 경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일상 속에 편안하고 즐거운 것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