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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그 Lee Jul 21. 2023

3. 그때 그 우물에선...

꽃 잎, 그리고 꽃 신 하나.

그러니까, 대략 1870년 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때부터 전답깨나 있었던 정처사님네는

그 고을 유지, 말하자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부잣집 사람이었다. 고집세지만 인색하지 않았던

부친과, 다정한 모친과 함께 살며 남 부러울 것이

없었던 정처사님은, 대를 이어가야 할 막중한 책임

을 지게 된 맏이였으며, 아래로는 남동생 세명과

막내로 여동생, 이렇게 5남매였다.


정처사님 부친은 요즘 말로 하면 '딸 바보'였다.

(아버지들의 딸 사랑은 시대와 상관없는 내력인 듯)

딸이 어렸을 땐, 잠투정하거나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등에 업고  잠들 때까

지 정원을 이리저리 콧노래 흥얼거리며 걸어 다녔고

방물장수라도 들리는 날이면, 더 자라 어른이 되어

야 할 수 있는 온갖 장신구까지 사줬다.


이미 알다시피 그 집안은 인물도 좋았다.

(정처사님과 큰 아들이 인물이 좋았다고 앞 글에서 말했다. ㅎ)

사는 데 또한 부족함이 없었으니 할아버지께서

고르고 골라 며느리삼은, 그러니까 정처사님 모친도

귀한 집에서 교육 잘 받은, 그러니까 외모 서열과,

학벌 서열이 상위 10%에 드는 재원이었다. 그러니

다정하고 현명함으로 자식들 모두 잘  키워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래동화나 옛날얘기책에 봐도 예기치 못한

변수는 늘 등장한다. 너무 행복하기만 해서였을까.?

이 댁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몇 년이 흘러 볕 좋은 화창한 어느 봄날, 점심 상을

물리고 부친은 막내딸을 데리고 산책 겸, 집 근처에

있는 논이 관리가 잘 되고 있나 겸사겸사 둘러보려고 나섰다.


길 가다가 만난 개울에서 송사리가  노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딸을 위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췄다.

물속에 손을 넣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송사리를 잡아보려고 애쓰는 딸을 므흣한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딸이 몸을 앞으

로 굽히다가 넘어질까 봐 버티더니 결국, 한쪽 발이

빠져 오이씨 같은 버선이 그만 젖고 말았다.


부친은 딸을 황급히 안아 올려 보니 발에 뻘 같은

진흙이 묻어있어 얼른 근처에 있는 우물로 데려갔다

. (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만큼 오래된 커다란

우물엔 조각조각 긴 나무판자를 나란히 하여 안에서

판자를 하나 덧대어 박아주고 , 중간에는 경첩을

달아 반 접히게 만들어서  날씨가 궂어 비나, 눈이

오면 우물을 덮어 두는 뚜껑이 있다. 그러다가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반만 덮어 두고, 반은 열어 놓아 우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둔다.)


우물 위, 덮여있는 반쪽의 뚜껑 위에 딸을 앉혀두고

급히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렸다. 진흙 묻은

발을 씻겨 주고자 함이다.

그런데 찰랑, 찰랑 한가득 길어져 올라오고 있는

두레박 안의 물 위엔 어여쁜 꽃잎이 하나 떨어져

있다. 바람결에 날아들어 우물 안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리라.


"와앙, 꽃이다. ㅎ 예뻐 ~~!!!"


막내딸은 두레박이 다 올라오기도 전에 몸을  

굽혀 올라오고 있는 두레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순간, 미끌하며 중심을 잃고 두레박 쪽으로 몸을

휘청거렸고 이제 거의 다 올라온 두레박과 함께

그만 우물 안으로 빠져  들. 어.   갔.    다.


'..... 벙.....  "


순식간에 아니, 찰나에 일어난 일이라 부친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간할 겨를조차 없이

그저 멍하니 있었다.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애지중지

품어 키운  막내딸은 그렇게, 그렇게 우물 안으로

사라졌다. 더 할 수 없이 찬란한 10살의 나이에.

진흙 묻은, 꽃 신 한 짝 만을 남기고.




"그래서요..? "

"어떻게 되었는데요 그 딸은..?"

내가 스님을 채근한다.


"그렇게 금쪽같은 막내딸을 시집도 못 보내고

눈앞에서 허망하게 잃은 부친은 심중에 큰 병을

얻었고, 병치레에 그 많던 재산은 다 없어졌지요.

몇 해 뒤에 양친이 한 해 걸러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들은  맘 아픈 사연을 잊고자 고향을

떠나서 저 윗마을로 와 그때부터 자리 잡고 살게

된 거지요. "


오래된 기억을 떠 올려 말씀하시는 스님의 모습도   

왠지 처연하다.


"정처사님은 옛날에 잘 살았던 기억은 다 묻어 두고

무참한 심정으로 속이 다 타서 돌아가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장남으로의 책임을 잊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며, 남은 동생들 건사하면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지요.

열심히 살다 보니 인연이 닿아 조신하고도

참한 지금의 안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고 잘 살고 있었지요.

그 내외가 참으로 부지런하여 땅도 하나, 둘

사 모으더니, 몇 해 후에는 과수원도 장만하여

이제는 진짜 걱정 없다. 옛 말하며 살아보리라...

싶었지요.  

그 뒤로 아들도 하나 더 두고 아래로 딸도 낳고

단란하게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큰 아들이

아프기 시작한 거지요.

아마 17살쯤부터라고 합니다."


"그때 복숭아 밭에서 봤던 키가 큰 아들이요.,?  "

내가 묻는다.


"네에. 멀쩡하던 애가 아프니 놀라서 병원마다

가봐도 의사는 대체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애는 매일 밤마다 자지러지며 아파 울고,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니 당장 죽게 생겼지요.

자식이 아플 때 그걸 보는 부모 맘이 오죽했겠어요.

그래서 잘 본다는 병원마다 수소문해서 가봐도

원인은커녕 병명도 모르겠다  하니.

그래서 하다 하다 용하다는 무당에게 가서 굿이란, 굿도 다 해봤대요.

하고 나면 잠깐은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또

마찬가지고. 그렇게 낫지 않아서 나중에는 애타는

심정에 교회도 다녀봤다고 합니다."


"교회요...? 교회는 왜.. 지요..?"

난 영문을 몰라 물었다.


"네에, 당시 안수기도로 병든 사람을 고친다(아하!)

고 하는 유명한 목사가 있어서 혹시니 하고

가봤는데 소용없어서 나중에는 성당에도 가봤대요

성모마리아 님에게 아들 살려달라고 빌어보려고요.

같은 어미(?)로서 참담한 심정을 나누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그마저도 다 소용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 듣기만 해도 속상하다.

"그럼 스님과는 언제 만 나신 가요..?"


" 그러니까 그게 한 25년 전쯤 되었지요.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3시 기도까지 마치고

누웠으니, 한두 시간 잤나..?

명도 동자님께서 오셔서 절 깨우셨죠."




 25년 전, 지금 성불리의 소원암.

" 제자야~~ , 일어나 "

" 좀 있음 손님 도착하니 일어나라고 "

 잠자고 있는 스님의 어깨를 살쩍 흔든다.

"손님이요..?"

" 저 아래 사거리쯤 왔으니 얼른 이불 치우고

 만날 준비 해."


스님께서는 명도 동자님 말씀대로 얼른 이불

치우고, 후다닥 세수하고는 눈곱도 떼고, 회색

법복을 챙겨 입고 좌탁 앞에 앉아 좌정하고 있으니 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여기 맞지요..?"

"그려, 처형이 말한 대로네. 맞네.

스님 계신지 어서 들어가 보세."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키에 빼 싹하니 마른

초로의 부부다. 아니 초로까지는 아니고

50대인 듯한데 얼굴이 꺼칠하니, 푸석하고도

까맣다.


스님께서 두 사람에게 방석을 권하며 앉으시라고

한다.


" 그려, 새끼가 아프면 미물도 애간장이 녹는다고

하는데, 사람이 돼서 얼굴이 좋으면 이상하지.

직접 보니까 또 짠하구먼. 맘 약해지게...(아휴) "


그 부부를 바라보던 명도 동자님의 말씀이다.


" 제자는 잠시 얘기 들어주고 있어. 난 가서 아까

자료 화면 보던 거 마저 돌려보고 와서 어떻게

된 건지, 어떻게 고쳐 줄지 또는, 말건지 알려줄게"


명도 동자님이 다시 신당으로 들어오니

벽에 있는 빔 프로젝트에서 나온 영상이 크게

띄워져 있다. 아까 그 부부의 젊었을 적 모습이다.

논, 밭에서 일하는 장면.

이웃 사람들과 오가며 말하는 장면.

장에 가서 물건 사 오는 것.

명절에 차례 지내고 성묘하는 장면 등.

지난 세월의 모든 게 들어있다. 휙 휙 빠르게

넘어가는 영상을 보면서 동자님들과 선녀님이

둥근 탁자 위에 있는  종이에  각자 신중하게

동그라미 치면서 채점하고 있다.




- 여기서 잠깐!!!!!!! -


사람들이 찾아와서 각자 요청할 때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충족지수 문항'이 있다.


 5개인데,   20점씩이고 최소한 3문제,  

- 60점은 되어야 소원성취 요청에

   '고려'해 볼 수 있고,

- 80점은 수용'이어서 내용이 괜찮으면

   '요청접수'이며

- 100점은 무조건 'OK 통과' 원하는 소원을

   다 들어준다.


그럼, 충족되어야 할 각 문항은 무엇이냐 하면

- 첫 번째가 '성실'이다.

   ' 열심히 잘 살아왔나' 평가하는 것이고

- 두 번째가'부모님께 효도'이다.

- 세 번째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이다.

    조상님께 제사는 잘 지내고 있는지

    산소는 가끔 찾아뵙고 관리는 잘하고 있는지를

     본다.

- 네 번째로는 '미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이고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발로 차면 안 된다.)

- 마지막 다섯째는 '자비살천'이다.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목마르다 하면

   바빠도 얼른 물한 잔 떠다 줘야 한다'는 것이고

   언제든 내 것을 나눠줄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동자님들이 제일 중요하게 평가하는

   항목이다.


그래서 소원암의 모토는 '자비 실천 도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 사흘의 약속, 그리고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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