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수진 Jul 17. 2021

둥지 품은 단풍나무

내 품에서 새를 키우고 있어

    

아침부터 무더운 날씨였다. 

점심때가 되면서 급기야 폭염주의보까지 내렸고,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씨라는 뉴스도 나왔다.

얼마 전 학교 단풍나무에 둥지를 튼 멧비둘기는 이렇게 더운 날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여름방학을 했지만 학교에 계속 나와 일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잠깐 짬을 내어 멧비둘기 둥지를 보러 갔다. 

그 잠깐도 너무 햇빛이 따가워 양산을 쓰고 갔다. 


멧비둘기가 선택한 단풍나무


나지막하고 예쁜 단풍나무에 둥지를 지은 멧비둘기는 꼿꼿한 자세로 알을 품고 있었다. 

나는 어미 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살폈다. 

둥지는 눈에 잘 띄지 않게 나무 안쪽에 있었는데, 나뭇가지들이 양산처럼 둥지 위를 덮어서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폭염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옆의 나무에 둥지를 틀었을까 의아했었는데,

나무 안쪽은 아늑하고 시원하고 안전해 보였다. 

하긴, 얼마나 신경 써서 고른 나무일까. 


알을 품은 멧비둘기

갑자기 어미 새가 푸드덕, 둥지를 비우고 날아올랐다. 아니, 아빠 새 인지도 모른다.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보름 정도 품어서 부화시킨다고 하니 말이다.

혹시 나 때문에 놀란 것일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하얗고 예쁜 알을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멧비둘기는 두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더니, 정말 알 두 개가 둥지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멧비둘기 둥지와 알



오후 들어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햇빛은 그대로 눈이 부신데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호우주의보까지 발효되었다. 요즘 들어 날씨가 정말이지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열대지역에서 나타나는 '스콜'은 아니고, 국지성 소나기라고 한다.

스콜은 비가 온 뒤에도 공기가 후텁지근하지만, 

소나기는 대기 상층부에 찬 공기가 있어서, 비가 내리고 난 후 공기가 선선해진다고 한다. 

글쎄, 오늘 저녁은 좀 선선해지려나? 


비 오고 바람 불고 햇빛 나는 날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 멧비둘기는 괜찮을까?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단풍나무를 지나며 슬쩍 살폈다.  

멧비둘기는 여전히 둥지에서 머리의 방향만 바꾼 채 의연하게 알을 품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도 나는 어깨가 다 젖었지만, 

단풍나무가 가지를 우산처럼 쫙 펼치고 있는 덕에 멧비둘기 둥지는 비를 잘 피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툭, 툭,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정도였다. 


단풍나무도 좋은 것이리라, 품에 새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은 어미 새지만, 

둥지를 품고 있는 것은 나야,라고 단풍나무가 자랑스레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풍나무의 품에서 두 마리 아기 새가 푸드덕 날아오를 그날을 기다린다. 



비 오고 바람 불고 햇빛 나는 날





작가의 이전글 꽃의 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