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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pr 27. 2022

광기와 우울은 유전일까?

-시즌병일수도. <동굴 파헤치기 프로젝트-5화>, INFJ

좀 개인적인 이야기라 망설여지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실 브런치에 연재 중인 것과 전작들에 쓴 이야기들도 너무나도 개인적인 일들이라

더 망설일 이유도 없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과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조금은 덜 불편한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부모님 중 한 분인 아버지 (이하 아빠) 이야기가

들어가기에 쓰면서도 약간 ‘이걸 써도 될까?’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걸 미리 밝혀둔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생활을 약 38년 이어오시면서 끝끝내 최근에서야

아빠의 어떤 면을 ‘포기’하게 되셨다고 한다.

내가 엄마 마음속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포기인지, 겉으로라도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조금 위안을 얻으려는 것인지까지는 나는 알 수 없다.



아빠에게는 ‘시즌병’이라 불릴 만한 증상이 있다.

그것은 연 단위로 매 해 일어났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봄에서 여름 넘어갈 무렵에서 가을까지? 날씨가 좋은 시즌에 아빠는

새벽 3시쯤 기상하셔서 차를 타고, 옛날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시절에 살았던 곳에 있는

작은 산을 오르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신다.

 태풍이 휘몰아치거나 생명에 위협이 느껴질 정도의 날씨가 아니라면 매일 반복하신다.


우리(엄마, 나, 남동생)는 아빠로부터 늘 ‘등산은 만병통치약’이란 말을 듣고 살았다.


..............


내가 20대 초중반 아직 고향 부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였다.

부산 변두리에 있는 기장 쪽엔가 아홉산이라 불리는 곳을 다 같이 등산하고 나면,

거기 옆 한우촌에 가서 한우를 사 줄 테니, 제발 가자고 하셔서 못 이기는 척 주말에 등산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산은 아빠가 늘 오르시던 동네 뒷산 수준이 아니었다.

그 아홉산의 ‘아홉’이 ‘아홉 개의 고개’ 임을 왜 짐작하지 못했을까......



아빠의 위에서 언급한 ‘텐션 업’ 시즌에는 퇴근 후 9시 즈음 안마의자에서 피곤함을 풀며

잠이 반쯤 드셨다가 방으로 옮겨 잠을 청하시고, 3시 즈 기상하는 스케줄을 유지하신다.

몸이 다치시거나 특별한 일이 없어 매일 등산 미션을 잘 이행한 날은 기분이 좋으시고 말이 많아지신다.




문제는 일 년 중 그 나머지 시간에 일어난다.     


‘비시즌’의 아빠는 새벽 3시에 혼자서 벌떡 일어나 산에 가던 사람이 맞는지 두 눈을 의심할 만큼

 아침잠을 깨기 어려워하신다. 엄마가 7시 반 즈음? 출근해야 한다며 깨우면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몽사몽으로 온몸이 천근 만금이라며 겨우겨우 일어나 회사에 가신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할 수도 있다.


But,

그 시즌/비시즌의 간극이 너무 큰 것도 문제이지만

그 연간의 스케줄이...

몇십 년째 이어진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엄마 입장에서는 

‘어젯밤 비가 많이 내려 산길이 미끄러우니 제발 오늘만 쉬어라.’고 하는 것조차 듣지 않으려 하는 남편/

마치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채 깨워도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남편의 간극을 39년째 보고 있는 것이다.




20대 후반 내가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결혼을 한 후에 엄마와 간혹 통화하면,

 ‘아빤 요즘 어떠셔? 요즘에도 매일 산에 가셔? 몇 시에 일어나셔?’가 묻는 게 일상이었다.   

   

다행히 아빠는 최근 몇 년 새, 본인의 이런 기질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신 건지, 혹은 본인도 업 앤 다운이 너무 큰 것에 지치기라도 하신 건지,

의학의 도움을 조금 받아 간극을 현저히 줄이셨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입장을 이해해보며, 엄마에겐 몇십 년의 ‘지긋지긋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나는 요즘 아빠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그 시즌병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나에게도 비슷한 종류의 기질이,

반드시 한마디로만 정의해야 한다면 ‘광기’라고 불릴 수도 있을 그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면서

그것이 적잖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빠처럼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

아주 작은 일로 심각한 수준의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온갖 열정이 불타올라 주변 사람을 피곤하거나 살짝 괴롭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그 광기가 다행히 좋게 발전되고, 내가 좋아하는

글 쓰는 일로 연결되면서 이 광기를 글에 쏟아낼 수 있게 되었지만, 아빠의 경우란 어떤가.




60대 반의 가방끈 짧고, 지극히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생 평범하고 어찌 보면 우유부단하게 살아온 남성이 핏 속에 날 때부터 흐르고 있었던 광기를

어떤 방식으로 잘 통제하며 풀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다른 방식으로 또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그것을 산에 가는 정도의 ‘지극히 건전한’ 방법으로

해결하며 가족에게 다른 피해(예를 들자면 여자에 빠져 바람을 피운다거나 도박을 한다거나)를

주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어쩐지 아빠가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신 씌었다’며 굿도 하고, 병원에도 가둘 뻔했던 나의 할아버지......

아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함께 살았고, 내가 20대 후반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광기는 그 어린 내가 보아도 말 그대로 광기였고, 며느리인 엄마를 학대하는 수준이었다.

엄마는 25년이 넘도록 할아버지에게 삼시 세 끼를 해다 바치고,

똥오줌을 치워드리면서도 쌍욕을 들으며 살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눈물을 보며 자랐다.

할아버지의 학대가 너무나 끔찍했던 나머지, 그런 고부갈등이 당연히 엄마와 아빠, 부부 사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터인데도,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것은,

엄마 아빠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음을,

내가 부모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격해진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아이 앞에서 큰소리 내며 싸우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알게 되면서 말이다.      



할아버지는 옛날 분답게 남동생과 나를 차별했기에,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엄마를 괴롭히던 나쁜 사람이었고, 그냥 내 아빠의 하나뿐인 부모님이었던 그분이 기나긴 생을 마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뭔가 ‘대단원의 막이 드디어 내렸다.’는 느낌이 들었고,

엄마가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느꼈고, 애증이랄 수도 없는 묘한 감정으로, 어쨌든 내 친지 중에서 누군가 돌아가신 일이 처음이었던 것이 조금 신기한 마음으로,

장례식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물론 울긴 울었다.

그것이 어떤 감정들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광기를 보여주며 살았는지에 대한 일화까지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지면을 아끼려고 한다. 그냥 엄마의 처절한 울음이 아주 많이 생각난다고만 하겠다.


아빠의 어떤 광기를 조금 이해하게 되면서는 그 유전적 기질이 할아버지로부터 왔구나, 하고
엄마와 나는 생각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까지 이렇게 내려오게 되었구나.

라고는 최근에서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깨달음 아닌 깨달음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쳤다.

어느 날 어떤 생각에 몰두되어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마치 배터리가 방전된 것 마냥

기절한 듯 잠에 빠져들었다. 늦은 시간 잠에 들었지만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광기 어린 손놀림으로 타자기를 두드려대야만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미 터득한

나의 뇌는 나를 새벽 3시에 깨워버린 것이다.


남편과 아이가 고요히 잠들어있는 새벽 시간,

나는 살금살금 주방 불을 켜고, 허기를 달래며

어떤 꼭지부터 써야 할까, 생각했다.

 ‘쓴다’기보다는 ‘미친 듯이 머릿속을 떠도는 말들을 한글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뱉어내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이런 묘사는 마치 천재적인 소설가나 노벨문학상 감의 대작가에게나 걸맞은 듯하여 왠지 좀 쓰면서도 민망하기는 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머리를 빡세게 굴리며 거실을 배회하며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주섬주섬 뭔가 주워 먹고 있는

 나 자신을 3인칭 시점에서 마주하게 된 순간,

나는 친정에 갔을 때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갈 때 마주쳤던  아빠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절대 할아버지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대를 거쳐 순화된 방식으로 정제된 아빠의 광기를 거쳐,

나의 광기는 이렇게 어떻게 보면 더 멋지고, 세련된 방식으로, 내가 작가가 되면서 풀 수 있게 되었으니.

나는 두 분께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정말, 이런 것도 유전의 힘이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일까?



심리검사나 제대로 된 성격유형검사를 받아보면 더 좋겠지만, 다음에 아빠를 만나면 재미로라도

 MBTI 검사를 한 번 해봐야지.

(아빠의 별자리가 뭔지도 찾아봐야겠다.)

광기와 MBTI테스트는 또 완전히 다른 영역이겠지만,

아빠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TMI로 엄마의 MBTI는 ISFJ로 나와 상극이라고 한다....ㅎㅎㅎㅎㅎ)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하면 또 묘하게 저... 뒤에서 안갯속을 걸어오는 젊은 남자가 한 명 보이는 것이다.      


..............



(동생아, 너는 과연 너의 어떤 본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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