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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pr 27. 2022

파워 내향형 슈퍼쑥맥 찐따였던 18살의 나를 돌아보며

- '광기와 우울'에 이어지며 <동굴 파헤치기 프로젝트-6회>, INFJ

보통 아이들이 중2 즈음 사춘기가 많이 오기에 '중2병'이란 말이 생겼다.

발달 속도가 빨라져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사춘기가 오는 모양이긴 하다만... (후덜덜)

나는 비교적 부모님 속을 거의 썩이지 않고 살아온 범생이 딸이다.

물론 엄마 아빠 말은 들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뭐 꼭 알아야 하나? ㅎㅎ)



초등학생 때는 4학년부터 반장, 부반장이란 걸

뽑았던 것 같은데,

 나는 거의 성적순/인기순으로 한 투표에서 표를 받아 4, 5학년 때 부반장을 두 번 했다.

6학년 때는 쭈글이처럼 지냈다.


중학생 때는 비교적 평범하게 지내다가 중3 때 만난 친구들과 아주아주 친해지면서 

그룹을 형성하며 놀다가 그 친구들의 절반은 인문계로,

 절반은 실업계로 진학하면서 지금은 거의 모두 연락이 끊겼다.

중학생 때는 두 번 반장을 맡았는데

 숫기가 1도 없는 파워내성적 인간이었던 중1, 2 시절이었기에 떠드는 아이들에게

 "야, 조용히 해! 자습시간이잖아!" 

같은 말도 한마디 못 하고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다 보내기 일쑤인 허수아비 반장이었다.

당시에도 성적순으로 선생님이 반장 부반장 후보를 냈고,

첫인상이 좋은 편인 내가 뽑혀버렸지만 죽도록 하기 싫어서 집에 가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1학년을 어찌 보냈는지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지금 연락하는 친구도 없고,

고3 때 친구들이 아직까지도 절친하기에 별로 중요치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저 학교에 적응하고, 적당히 내성적이고, 모범생인 나와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 몇몇과 사귀고,

방과 후에는 종합학원을 다니며 바쁘게 보냈던 것 같다.



.................



그리고 이 글의 제목에 등장하는

대망의 고2 시절.

한국 나이로 18살이었던 나에 대해서 파고들어 가 보고 싶어 이 글을 시작했다.


처음엔 '우울중독'이란 이름으로 매거진을 만들고,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작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니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자꾸 과거의, 어린 시절의 나를 파보게 된다.

 현실 속에서의 30대 후반 어른이 된 내가 자주 겪는 우울감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보고,

남은 생(?)에 그것을 잘 대처하며 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를 찾고 찾고 찾다 보니 어린 시절의 가 자꾸 딸려 나온다.


어린 시절에 치유되지 못했던 상처라든지, 안 좋은 기억이라든지,

그 시절의 내가 많이 했던 생각들, 보았던 책들, 친구 관계.. 이런 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동굴 깊은 곳에서 여전히 블랙박스처럼

묻혀 신호를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열여덟이었던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자발적 은따'였다.

이런 말 하기 좀 머쓱하고 민망하긴 하지만....(ㅎㅎㅎ) 

열여덟의 나는 내 인생 최초의 미모 리즈시절이었다. 잡티 없이 마알갛고 깨끗한 흰 피부에

나쁘지 않은 얼굴 외모, 168의 큰 키에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었으니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 까지는 아니고..ㅎㅎ 여고를 다녔으니까, 평소에는 남학생을 접할 일이 없었고,

 다니던 종합학원에서 같은 반의 남학생들이나 지나가다가 나를 본 남학생들에게

 자주 고백을 받곤 했었던 시절이었다.



고백은 계속 받는데 순수와 숙맥 그 자체였던 나는 입시를 앞두고 남자친구를 사귈 마음이 1도 없었고.. 본의 아니게 '철벽녀'가 되어갔는데... 아무튼 그건 학교 밖의 일이었고,

여고 2학년 교실 안에서는 처음 보면 살짝 말 걸기 어려운 스타일의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같은 반 아이 중에 특히 나를 막 우상시하면서 대놓고 내 코앞에 앉아서 '우와~니, 진짜 예쁘네!'를 연발하던 중성적인 느낌의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인싸' 느낌의 아이라

그 아이의 언행이 반의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친구들과 너무너무 친해지고 싶었는데 숫기가 없어서 먼저 말도 못 건네고,

그 아이 때문에(덕분에) 다른 아이들마저 내가 예쁘다는 데 세뇌되어 버린 것인지

외모 칭찬 이외에 다른 말을 잘 건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엄청 중요한 신학기 초반을 홀랑 날려버리게 된 것이다.


다들 학교 다녀보셨으니 알지 않은가...

초반에 그룹에 끼지 못하면 1년을 어찌 보내게 되는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자발적 은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친구가 사귀고 싶었으면 먼저 말을 건네고 이미지 망가트리

친해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엄청나게 외향화 패치가 완료된 내 모습만 아는 분이 할만한 질문이거나,

파워내향형슈퍼쑥맥찐따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당시에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심각하게 어려운 과제다.


그것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예를 들어 오늘 수학 숙제가 몇 쪽에서 몇 쪽까지 노트에 풀이해오는 것이었다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짝꿍이나 앞뒤에 앉은 친구에게 "너 수학 숙제해왔어?"라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이

보통의 학생인데, 나는 그 질문 하나를 하기 위해서 속으로



'쟤랑 나랑 별로 안 친한데, 이런 거 괜히

물어봐도 될까?

 왜 갑자기 친한 척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수학 숙제 안 해서 보여달라고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싫어하면 어떡하지????

아, 지금 말할 타이밍인데 할까 말까ㅠㅠ

아 어쩌지ㅠㅠ

 아씨 수업 종 쳤다ㅠㅠㅜ'



등등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통에 결국에 가서는 고민만 하다가

그 질문할 타이밍을 놓쳐서 대화의 물꼬조차 트지 못하는 지경의 진상 중의 진상 내향인이랄까....



그렇다.

일이 그렇게 꼬여버리는 통에 나는 고2 생활의 쉬는 시간과 남는 점심시간 대부분을

엎드려 자는 척하며 보내거나, 책 읽는 척하거나 하며 자발적 은따로 보냈고, 간혹 아이들이 묻는 질문에만 Yes or No로 대답하며 입에 썩은 내가 나는 일 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체육시간이라 운동장에 나가야 하거나, 음악실, 과학실 등으로 이동수업을 할 때에면

누구와 같이 이동을 해야 할지 두려움에 떨며 남는 쩌리 친구를 물색하기 바빴다.


 나중에는 서로 다른 친구 그룹에 속했으나 3월 첫째 주에 근처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1년간 군말 않고 나와 함께 밥을 먹어준 친구 몇몇에서 지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아침 8시 반경부터 저녁 6시까지를 처절하게 외로움에 떨며 보내다가

방과 후 학원에 가게 되면 같은 고등학교 친구지만, 반은 다른 '학원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거기가 내 유일한 소통창구였다. 그들 몇몇과는 죽이 잘 맞아 간혹 주말에도 만나고,

같이 팬시문구점에도 가고, 떡볶이도 사 먹곤 했다.


..............................



그렇게 겨우겨우 1년을 보내고 불쌍한 고3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성격은 180도 변했다.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절친들을 그 열아홉에 만난 까닭인데, 나를 그대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아이들과 친해지자마자 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광기와 또라이기질이 말 그대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때 나는 한평생(18년) 해 온 욕설의 천배쯤 많은 욕설을 입에 달고 살며 말 그대로 '미친' 한 해를 보냈다. 미친 듯이 웃고, 미친 듯이 울고(모의고사 치고 나서),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땐 그랬다.

욕을 내뱉으면 '노는 언니'들 같아서 세 보이고 싶어서 한다기보 

그것이 그냥 고등학생의 문화였다.




"아~수학 진짜 싫어" 보단 "아~수학 진짜 개싫어" 또는 "쒸발 수학 진짜 존나 싫어."가 더 임팩트 있고,

 강렬하고, (그러면 안 되지만) '있어 보였다.' 욕설은 문자 그대로 욕설이 아니라

모든 문장과 모든 말에 '강조 부사'인 양 쓰였다.


그렇게 '찐친'들 몇을 만나 나도 드디어 학교에서 '친구 그룹'이란 것에 들면서 말 그대로 1년을 날아다녔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크게 소리 내며 웃고, 친구들과 매점에 다니며 수많은 간식들을

 말 그대로 먹어치우고, 온갖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미친 짓을 다했다.

그런 180도 변한 내 모습을 보면서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눈 휘둥그레지곤 했다.



"야~! 니 이런 성격인 줄 몰랐잖아~!! 완전 변했네!"

"야~ 박xx 너 작년에 어떻게 참고 살았냐??"



그러게나 말이다.

 1년을 참고 살았는데, 학원에서의 친구들마저 없었다면 아마 나는 그 중요한 고2 시절을

 깊은 우울에 빠져 버둥거리며 보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 수능을 완전히 망치는 아찔한 길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고2 시절에 대해 써봐야겠다 생각한 것이 고작 하루 이틀 전의 일이다.

그냥 일단 풀어놓아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동굴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보일 것도 같았다.

어차피 정답이나 나가는 길을 모르고 시작한 글이니 꼭 어떤 방식으로 끝맺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과거의 조그만 상처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좀 후련해지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데 막상 이렇게 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알겠다.

왜 이걸 써야만 했는지를.

지난 글에도 썼던 주제, '광기' 그리고 그것과 항상 함께 딸려오는 세트, '우울'.


나는 아마도 유전적으로 그 두 가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작가가 되어 광기를 글로 풀어가며 삭히고, 정제시키고, 승화시키며 살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우울은 핏 속에 흐르는 광기를 제 때에, 좋은 방식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시간들이 쌓이면

불쑥 나타나는 내 속의 또 다른 무엇인가인 듯하다.


가슴 저 깊은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우울은, 또 다른 좋은 단어로 표현자면 '열정'이랄 수도 있는

 '광기'가 제 때 발현되지 못할 때 슬금슬금 기어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나의 광기와 열정은 내 주변에 나와 아주 잘 맞는 사람들,

그러니까 적절하고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에만 좋은 쪽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쓰고 보니 아주 당연하고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내 열정을 더 좋게,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더 좋은 글'로

발현시키고 살기 위해서 나는

 내 주변을 잘 정돈하고 보살필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내 주변을 좀 더, 나를 더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로 채울 필요가 있다.

그 이외에 정신을 분산시키거나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내 인간관계의 전부를 한 번 돌아볼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인간관계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서 항상 그것에 몰두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며

 스스로 힘들어해서 악순환이 되었던 것이 이제 이해가 된다.

또 한 가지, 내가 그다지도 '공간'에 집착해 온 것이 또 설명이 된다.

 나는 집안 '가구위치바꾸기병'이라는 지독하고 몹쓸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이사온지 세 달 차, 집안 전체의 가구 배치가 벌써 세 번 바뀌었다.

2년간 살았던 지난 전셋집에서는 10번도 넘게 바꿨다.

2미터가 넘는 책장이나 소파, 침대도 그냥 나 혼자 다 옮긴다. 그걸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그걸 하지 않고는 집안일도, 육아도, 글도 쓸 수가 없다.


바꾸어서 더 아늑하고 좋아진 집안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럴 때는 글도 더 잘 써지고 영감도 더 잘 떠오른다.

그래서 생각의 전환이나 어떤 각오가 생기거나 다짐이 필요할 시기가 되면

또 집안을 뒤집어엎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거리는 듯하다.


다 썼다.

많은 것을 깨달아서 뿌듯한 글이었고,

개운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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