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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Oct 13. 2020

#7.센 여자, 예민한 여자



간혹 남편이 하는 말 중에 나를 꼭지 돌게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는 말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네가 좀 참고 넘어가면 안 되겠냐?”라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싫다. 시어머니가 막말을 쏟아낼 때마다 내가 느꼈던 온갖 서러움과 분노를 그저 남의 일, 또는 ‘너 하나만 참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로 치부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난다.


남자와 여자를 편 나누기 하고 싶진 않지만, 으레 남자들은 이상 형으로 예쁜 여자 다음으로 ‘착한 여자’를 꼽는다. ‘착하다’의 본래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잘 해주고, 약자를 돌볼 줄 알고, 선의를 베풀 줄 안다는 뜻 아니었나?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남자들 사이에선 ‘착한 여자’가 ‘센 여자’ 즉, 남자들이 느끼기에 ‘자기 할 말 다 하는 여자’의 반대어로 통용된다. 한술 더 떠서 남자들은 결혼해서도 아내가 계속 착한 여자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아들인 자기는 단 한 번도 부모님 생신에 미역국끓여드린 적 없으면서, 아내는 착한 며느리로서 꼬박꼬박 생신상 차려드리기를 바라고, 명절에 시가 먼저 가는 것에 반기를 들지 않는, 모든 것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여자이길 바라는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여성도 남자와 똑같이 대학에 가고 직장에도 다니지만, 옛날에는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고 여겼다. 여자가 똑똑해지면 말이 많아지고, 순종적인 여자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속상한 것은 속상하다, 똑부러지게 할 말 하는 여자가 센 여자 또는 예민한 여자로 치부되는

걸까. 그 논리는 여자가 남자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시절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스타그램 웹툰으로 시작해 많은 여성의 분노와 공감을 일으키며 책으로도 출간된 《며느라기》에서 주인공 민사린의 윗동서로 등장하는 전혜린이 시가 어른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다. 옛날부터 여자들이 군말 없이 해온 잘못된 관행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당돌한 며느리, 굳이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티 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

는 ‘착하지 않은 여자’로 말이다. 전혜린은 며느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온 시가 제사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 힘들게 제사 노동을 한 동서 민사린에게 말한다.


“저는 그것이 동서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린 씨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이 말에 사린은 잘못된 것을 시부모나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애꿎은 형님 탓을 했던 자기를 반성한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 불편한 것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것은 예민한 여자라서가 아니다.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것이며, 자기 생각을 똑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능력이다. 그동안 침묵하던 여자들이 불편하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를 ‘프로 불편러’라 치부하고 말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 한다. 그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잘못된 걸 알고도 방관하는 사람, 용기 있는 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도 이런 ‘프로 불편러’를 조롱하는 댓글들이 자주 보인다. 나는 그런 몰상식한 댓글들을 보며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진정한 ‘프로 불편러’로 계속해서 살 것이다. 아직은 조롱하는 댓글에 ‘비공감’을 누르는 소심한 ‘프로 불편러’일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불편해하는’ ‘센 여자’로 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싶다.




*이 글은 '본격 며느리 빡침 에세이' <님아, 그 선을 넘지마오>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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