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 여자들은 치유되지 않아요.
툴리 : 치유돼요.
말로 : 아니에요.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 범벅이죠.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을 겪으며 무너져 내리던 여주인공 ‘말로’가 영화 〈툴리〉에서 한 말이 내 마음을 툭 건드렸다. 영화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어가던 세 아이의 엄마 말로가 야간 보모 ‘툴리’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친해진 툴리에게 어느 날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이제와는 반대로 말로가 툴리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저 대사가 오갔다.
결혼한 여성의 우울증은 대부분 출산과 육아, 그리고 그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변화, 경력 단절, 고부 갈등 등에서 기인한다. 그런 면에서 산후 우울증과 고부 갈등에 따른 기혼 여성의 우울증은 닮은 점이 많다. 게다가 남편이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면 증상은 더 심해져 부부 관계에도 단절이 생기고, 앙금이 굳어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하는 것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얼굴의 잡티 등을 가리기 위해 화장 전 국소적으로 바르는 짙은 농도의 스틱이나 액체형 화장품) 범벅’이라는 말, 즉 여자에게 한번 생긴 상처는 눈속임으로 가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치유되긴 힘들다는 단순한 비유의 대사가 마음에 참 와닿았다.
나는 출산 전 심한 입덧으로 고생한 거에 비하면 산후 우울증은 크게 겪지 않았다. 육아 우울증 역시 평범하게 지나갔다. 누구나 죽을 만큼 힘들다는 신생아 시절 한두 달 정도만 ‘내가 미쳤지, 애는 왜 낳았나. 얘는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울기만 하나. 제발 두 시간만 연달아서 자보고 싶다.’라며 좀비처럼 지냈을 뿐 이후에는 육아가 오히려 재밌고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다. 대신 피 터지는 고부 갈등으로 수많은 눈물을 흘리며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지곤 했고, 가끔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언젠가 볕 좋은 일요일이었다. 시어머니와 평소보단 훨씬 다정하게 통화하다가 어머니가 뭐에 기분이 확 상하셨던 건지 갑자기 공격을 퍼부었다. 둘째를 낳느니 안 낳느니 하는 문제로 대화하던 끝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녀의 말은 “너는 쌍둥이 낳았냐? 너는 못 했잖아!”였다.
시어머니가 말한 ‘쌍둥이 낳은 여자’란 어머니에겐 사돈이고 나에겐 올케인, 내 남동생의 아내였다. 올케는 쌍둥이를 가졌다가 유산을 겪어 너무나 힘들어하는 중이었는데, 시어머니에게까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기에 시가에서는 내 올케가 쌍둥이를 임신 중이라고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시어머니의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설움이 폭발하듯 밀려들었고, 나도 모르게 꼭지가 확 돌아버려서 옆에 남편이 운전 중이든 말든, 뒤에 아이가 있든 말든 마구 소리를 질러버렸다.
“어머니! 그러는 어머니는 왜 아들 하나만 낳으셨어요? 어머니도 쌍둥이 못 낳아 놓고 왜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예요? 전 둘째 낳을 생각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어머니는 같은 여자로서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나는 전화를 내동댕이치고는 대성통곡을 하며 엉엉 울어버렸다.
처음에는 “엄마 또 한잔하셨나 보네. 험한 소리 듣지 말고 대충 빨리 끊어.”라고 하던 남편도 내가 우는 걸 보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짜 엄마 때문에 아들 이혼하는 꼴 보고 싶어?”
남편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어머니와 싸우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머니 얼굴을 보기는커녕 목소리도 듣기 싫었지만, 이대로 인연 끊고 평생 안 보는 일이 있더라도 그동안 쌓인 한풀이는 죄다 해버리자 싶어, 내가 먼저 전화를 드렸다. 나는 그동안 섭섭했던 어머니의 모든 막말에 대해 조곤조곤 따졌고,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 목이 메어 꺽꺽거렸다. 그러자 나의 그런 태도를 처음 마주한 어머니도 좀 당황하셨는지 오히려 더 세게 나오시는 거였다.
나는 마지막 수를 던졌다.
“어머니, 저 어머니 막말 때문에 너무 가슴에 맺힌 게 많고 화병이 나고 우울증 와서 다음 주에 정신과 상담받으려고 했어요.”
이에 질세라 어머니도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나도 내일 정신과 가보려던 참이야. 우울증 와서. 며느리는 딱딱 말대꾸하고, 전화도 안 하고, 아들은 천치처럼 제 마누라 편만 들고! 내가 너희들한테 뭘 그렇게 못 해줬냐! 밤낮으로 허리 한번 못 펴고 일해서 너희들 다 주려고 그러는 거지. 나는 천 원 한 장도 허투루 안 써.”
늘 하던 똑같은 레퍼토리가 구구절절 이어졌다. 어머니도 울고 있었다. 우리 둘은 한 시간가량 그렇게 서로에게 쏟아붓고 울고 할퀴며 한풀이를 했다.
어머니는 막말의 대가였지만, 당신 또한 아들과 며느리에게 또는 시아버지인 남편에게 나름 섭섭한 포인트가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시부모님은 아들 며느리가 자주 전화해주기를, 손녀 자주 보여주기를, 딸이 없으니 며느리가 딸처럼 살갑게 굴기를 바라셨다.
‘아니, 그렇게 쉬운 거면 된다고? 그저 매일 전화만 드리면 그 많은 유산이 외동아들인 우리 차지이고, 뭐든 다 해주실 거라고? 나 같으면 매일 가서 절이라도 하겠다.’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의 일이니 말은 참 쉽다.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천 번도 만 번도 더 했다. 하지만 내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어머니는 굵은 소금을 쫙쫙 뿌려댔고, 상처는 곪고 곪아 도저히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는 시가에서 지원받는 전세 자금이나 장래에 받게 될 유산 따위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걸 주고 얼마나 들들 볶을지 생각하면 치가 떨리니, 차라리 연락과 지원을 끊고 원룸으로 이사 가는 게 좋다고 남편과 싸울 때마다 말하곤 했다.
누구도 그 사람이 되어 그 삶을 살아보지 않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시부모님이 재벌이거나 막말로 당장 내년에 돌아가실 병에 걸렸다고 해도 나는 친딸처럼 살가운 며느리가 될 수 없다. 험한 말도 웃음으로 받아내고, 원하시는 대로 둘째도 낳고, 내 꿈과 내 주도적인 삶까지 포기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인생을 한 해 두 해 살면서 더 속물적으로 변하거나 더 능글맞아지거나, 막말조차 한 귀로 흘려들을 만큼의 내공이 쌓이면, 막말 능력과 경제력을 동시에 가진 시어머니를 오히려 반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그게 안 된다.
내 상처는 회복될 수 있을까?
영화 〈툴리〉의 대사처럼 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머니 역시 당신 기준에서 나에게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아픈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사람이 남편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상처가 아물길, 그래서 내 삶의 기준과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 글은 아래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