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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Dec 23. 2022

행복해지고 싶다

심리검사, 기질검사 및 심리상담 후기 2

검사결과를 들으며 두 번째 상담을 하기 위해 지난달 말에 상담센터를 다녀왔다.

또 울었다.

아직은 낯선 사람인 선생님 앞에서 자꾸 울게 되는 내가 싫었다. 그 상황이 불편했다.

상담을 끝내고 나오며 다음 예약을 잡을 수 있었지만 전화로 하겠다고만 했다.

게다가 숙제까지 내주셨다. 와우... 진짜로 하기 싫었다. 다음 상담을 잡긴 잡아야겠는데 숙제도 하기 싫고 그냥저냥 마음정리도 안되고, 하릴없이 일주일이 흘러갔다. 직원의 친절한 문자가 왔다.


"다음 상담일정은 생각해 보셨을까요? 다음 주 수, 목 중 예약 가능한 시간 안내드리겠습니다.

12/7(수) 10:00, 12:00...........

12/8(목) 10;00, 12:00............

가능한 시간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예약 도와드리겠습니다."


더이상 도망가기 힘들어졌다.


"목요일 2시로 부탁드립니다."



 TCI 기질 및 성격검사, 심리평가, 문장완성검사에 대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기질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기질 성향이 높아 굉장히 힘들 수밖에 없는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예를 들면 '자극추구' 기질이 높아 세상의 다양한 자극을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많은데, '위험회피' 기질점수 또한 높아서 (하고 싶은 건 드럽게 많은데 마음속에 불안과 위험회피 성향도 많아) 자꾸 브레이크를 스스로 거는 형국이다.


심리검사 결과는 좀 충격적이었다. 약물치료를 요할 정도로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뭐 좀.. 자주 우울한 감정에 빠지고, 가끔 남편과 싸우고, 울기도 하 하지만 가정사에 엄청난 문제가 있다거나 빚더미에 앉았다거나 뭐 그런 큰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상태를 그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수준의 우울감, 번아웃? 뭐 그런 정도로만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석을 듣고 이어서 6회 차까지 상담을 마쳤다.

담당 선생님의 특징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따뜻한 눈빛으로 가만히 기다려주시는 점인데,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은 절대 안 울어야지.' 다짐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여지없이 시뻘게진 눈으로 방을 나서곤 했다.

 

선생님이 나에 대해 하는 말씀 중에 남편과 내가 싸울 때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을 선생님이 똑같이 하셔서 놀라기도 했다.


"벽과 얘기하는 것 같다."

"고집이 정말 세다."

"방어기제가 엄청나다."


어 거대한 바위 같은 피해의식과 방어기제를 어떻게 설명할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셨고, 20년, 30년 잊고 살았던 어렸을 적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말씀드리기도 했다. 여기 브런치에서도 쓴 적이 있는 어릴 적 최초의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했던 기억, 시아버지(나의 할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항상 힘들어 보였던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원하는 걸 삼키고 포기해야만 했던 기억들...


절친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니, 귀찮다는 말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버린다!!"이다.

(경상도 여자..... 서로 이년 저년 하는 사이들....)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ㅇㅇ씨 검사결과에도 '귀찮다'는 표현이 정말 많다고 느꼈어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말을 달고 살았어요?"


"음.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아이고, 역사가 엄청 오래되었네?  그런데 제가 보니 '귀찮다'는 게 사실 몸이 힘들다는 말인 것 같아요.

ㅇㅇ씨에게 체력안배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몸이 힘들어 놔 버리는 걸 귀찮다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맞나요?"


"아.........!!!!!!!!!!! (엄청난 깨달음. 소위 '돌 깨지는 소리')

맞아요! ㅠ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 몸이 건강하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큰 병에 걸린 적은 없지만 항상 골골대고 아프고, 어린 시절엔 엄마가 여름마다 보약 지어 먹이곤 했어요. 그리고 제가 잠에 굉장히 예민한데 새벽에 너무 잘 깨서 남편이랑 한동안 따로 자기도 했고, 불면증이 심해졌을 때 수면제를 먹은 적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수능 치기 전 날 잔뜩 긴장해서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있는데, 아침 7시쯤 간신히 겨우 10분이라도 눈 붙이려는 찰나에 아빠가 깨우려고 방문을 여셔서 엄청나게 짜증을 부렸던 기억이 나요. 게다가 어렸을 땐, 명절마다 친척들에게, 부모님에게 듣는 말이 제가 아기 때 잠을 너무 안 자서 밤새도록 업고 있고, 너무 우니까 옷장에도 잠시 넣어두고, 세탁기에도 장난치듯 잠시 넣어두고 했단 말을 들었어요. 이제야 생각났어요! 그런 게 저한테 무의식 중에 '나는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다.'는 인식을 심어준 걸까요? 정말이지 매년 매번 들었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잠과 체력, 건강 이슈가 나의 우울 성향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거라는 가설이 세워졌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항상 몸이 발목을 잡는다면 나는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무조건 체력을 길러야만 한다. 그리고 과한 체력을 요하는 일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은 좀 제쳐두고 체력안배를 잘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잠에 예민한 성향은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으므로 과한 각성상태를 이완시켜 잠에 잘 들 수 있게 하는 약물치료를 해볼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내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죄책감을 굉장히 자주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일상에서 어떤 순간에 그런 감정이 드는지 생각해보고 오라는 숙제도 내주셨다.


어제 6회 차 상담을 했고, 다음 주에 마지막 상담을 앞두고 있다.

선생님이 이사를 가시면서 올해까지만 이 센터에서 일하신다고 하셔서 7회 차로 상담은 마무리될 것 같다.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사람을 확 바꿔주는 마법이 될 순 없지만, 검사도 해보고 전문가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나의 숨겨진 상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나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울 스위치가 켜졌을 때 가속도가 붙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 같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머릿속에 고속도로가 나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셨다.


뇌에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것. 새로운 사고습관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경험적으로 잘 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할 의지가 있을 때에만 나는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변화하고 싶고, 나 자신을 보듬어주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기에 노력해볼 것이다.




-다음 주에 마지막 후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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