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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Nov 17. 2022

심리상담 1회차 후기

울고 말았지 뭐야

나는 무기력함과 우울함에 자주 빠지곤 한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해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은 아니지만 뭔가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이런 상태에 빠졌다가 헤어 나오곤 하는 걸 반복하며 기질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우울의 하강선을 잘 타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하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회사에서 지원이 되니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사실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말이 좋아 상담이지 회당 최소 10만원 정도씩 하니 (비용은 상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덜컥 받아보고자 결정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상담이 1회차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최소 5회 이상은 받아야 할 텐데 몇십만 원을 내고 결과가 무조건적으로 좋아지리란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인터넷 심리상담 후기를 찾아보면 상담사가 본인과 맞지 않아 돈만 날렸다든가 상담사를 여러 번 바꾸었다는 후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남편 덕에 비용을 내지 않고 상담을 받아볼 기회가 있어서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있었던 상담 1회차.

아마 친정엄마보다 살짝 젊으신 나이대의 여 선생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셨고, 가벼운 농담으로 무슨 질문을 하시려나 살짝 긴장해있는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셨다. 상담시간은 50분. 둘이서 나에 대한 대화만 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50분은 금세 지나갔다.


처음에는 최근 겪고 있는 문제라든지 상담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어보셨고 질문은 점점 범위를 넓혀 나의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 친구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대학시절, 결혼하게 된 과정, 결혼 후 생활 등 내 삶의 일대기에 대해 하나씩 차례로 물어보셨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엄청 엄하게 자랐다거나 부모님께 학대를 받았다거나 엄청나게 불우하게 자란 케이스는 아니기에 나는 그저 내가 유전적으로 혹은 선천적인 기질이 우울한 성향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어린 시절의 어떤 이야기에 대해서 물어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린 시절 나는 장남인 아빠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아빠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음.) 부모님, 할아버지, 남동생까지 5명이 함께 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엄마를 못살게 굴고 엄마가 늘 할아버지 때문에 울거나 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자랐다. 어린 시절에 대해 질문을 하셔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할아버지가 나에게도 뭔가 잘못하거나 한 것은 없었지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 엄마가 시아버지 때문에 자주 울거나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자란 것이 (나도 잘 몰랐지만 무의식 중에)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고 그 지점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할아버지는 대놓고 나와 동생을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옛날 사람답게 아들을 더 좋아하셔서 남동생과 나에게 용돈을 주실 때 내가 누나인데도 동생에게 5천원을 주시면 나에겐 3천원을 주신다던가 하는 걸로 손자/손녀를 차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장남인 아빠가 첫 아이인 나(딸)를 낳자 병원에도 안 와보셨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 옛날 분이시니까 손자, 손녀 차별하시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ㅇㅇ씨한테 소중한 사람 엄마한테 할아버지가 함부로 대하고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늘 보며 자라는 건 굉장히 힘들었겠어요."


사실 이 부분은 여태까지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어쨌든 할아버지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차별하거나 혼내거나 나쁘게 군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할아버지와 엄마의 관계를 그저 제삼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며 자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문제로 집안이 시끄러운 적이 많았지만 부모님이 자식인 우리 앞에서 그 문제로 크게 다투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다투더라도 우리가 없는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고 오시곤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나는 가끔 할아버지와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과 나, 동생 이렇게 4 가족만 살면 훨씬 더 우리 가족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엄마가 할아버지 점심, 저녁 차려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어딜 잠시 외출해서도 금방 집에 돌아가야하고, 30년 가까이 맘 편히 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고, 제대로 넷이서만 놀러 가거나 여행 가본 기억이 없는 것도 안타까웠다. 아빠는 왜 장남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만 하며, 엄마가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뭐 하나 물려받을 유산도 없는데 일 년에 몇 번씩 힘든 제사를 모셔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느새 끝날 시간이 되었고, 나의 인생 전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께서는 나의 우울 성향의 원인을 대충 알 것 같긴 하지만 기질검사와 인성검사를 한번 해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검사를 권유하셨다. 거기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금쪽이나 금쪽이 엄마들이 하곤 하던 문장완성검사까지. 검사지를 받아오며 다음 회차엔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500문항이 넘는 인성검사지를 어제 풀며 많은 생각이 들었고 검사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이 검사 한 가지로 다 드러나진 않겠지만 어쨌든 전문적 검사 결과를 들으면 나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좋은 기회 심리상담을 받아볼 수 있게 되어서 후기를 남겨보고자 이 글을 시작한다.


그럼 다음 회차 후기에서 만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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