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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n 17. 2022

한 달에 딱 백만원만 벌었으면 좋겠는 마음

누구나 사정이 있다.


꽤 괜찮은 공기업에 입사해 몇 년여를 아이 낳고까지 잘 다니다가 퇴사한 친구 하나가 있다.

그 친구 역시 나처럼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최소한 어느 정도는 가계에 보탬이 될 정도의 돈을

벌었으면 하는데, 그  친구와 가끔 만나면 서로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 진짜 한 달에 딱 백만원만 벌었으면 좋겠어.”     


아이를 낳은 후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복직했거나 혹은 결혼/출산/육아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내 또래의 여성에게 한 달에 백만원이란 돈은 아주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벌이일지도 모른다.

프리랜서가 아니고, 그래도 10년 정도 되는 회사 생활을 했다면

최소한 300에서 많게는 직업이나 직종에 따라 1000까지도 벌 수 있는 나이이니까.     

 

나의 경우란 어떤가.

결혼 전 두 군데의 그렇고 그런 작은 회사를 다녔다. 두 군데를 거치며 딱 만 3년 정도를 일하고

결혼해서 해외로 나가는 바람에 영원히 대리의 ‘대’ 자 한 번 못 달아보고

만년 박사원에서 회사생활을 (아마도) 접게 되어버렸다.

혹여나 내가 다시 조직생활을 하게 된다고 해도 10년 전의 경력은 없는 것만 못하니

다시 박사원에서 시작하거나, 이 나이에 막내로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마저도 그런 자리라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 이미 포기한 지 오래.



꿈이던 작가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지만 책을 써서 버는 돈이란 것은

조금이라도 이름 난 작가가 아닌 이상 아주 그냥 귀여운 수준이다.

 글을 쓰는 시간, 책을 만드는 시간에 비하면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깜찍하고 앙증맞은 수준이라 글로 돈을 번다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한 수준이다.

2020년에 첫 책을 냈으니 작가가 된 지 3년 차가 되었지만,

책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는 미지의 가능성의 글을 계속해서 찍어내듯 쓰는 것도 아니고,

 결코 작가라는 직업이 나의 메인 직업이라고 할 정도의 일이 아닌 것이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지난 3년간 인세로 번 돈보다는 누구도 예상 못한 역병이 닥치는 바람에

 나라에서 받은 프리랜서/예술인 재난지원금이 훨씬 많았다. 

아마 그 지원금이 없었다면 이깟 돈도 안 되는 책을 내느라 머리 쥐어짜고 고생한 보람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라는 직업에 알 수 없는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나도 그랬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러니 나도 꿈이라는 그럴듯한 명목 하에 이깟 돈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리는 것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 꿈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한 달에 딱 백만원만.”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백만원이란 내가 원하는 정확한 금액이라기보다는 어떤 상징적인 금액이다.


출산 후 다시 뭔가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은 영어강사와 바리스타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만 할 수 있으니 벌이가 당연히 시원찮았다. 하루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적으면 50만원에서 많으면 80만원 정도였다

10년 전 첫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 번 돈도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었는데

나는 10년이 지나서도 최저임금 기준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아이 하나를 낳아서 이젠 지 똥 싸고 난 뒤처리는 할 수 있을 정도만큼 키워놓느라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이긴 하지만,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괜스레 나보다 멋져 보이는

커리어우먼들만 남은 것 같고, 나만 뒷걸음질 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마음을 파고들어 가 보면 결국은, 돈이었다.


내가 얼마나 내 아이를 잘 키웠건, 꿈을 향해 달려드는 열정적인 사람이건,

그런 건 그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SNS 속 허상 같았다.

왜냐하면 결국은 나는 매번 여유 없음에 허덕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고,

그건 결국 돈의 문제였으니까.

아마 내가 바리스타나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로 100만원을 벌었다면

가계에 경제적 보탬은 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돈 안 되는) 글 쓰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담감이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백만원은 하나의 상징이다.

내가 (결혼 후에) 결코 진짜 '돈 되는' 일로는 결코 벌어본 적 없는 금액이니까.

 

아마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살았다면 이만큼의 큰 대출과 다른 갖가지 비용들이 조금은 덜 들었을 테니

삶이 조금은 더 여유로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경력 단절’은커녕 ‘경력이랄 것도 없는 경력마저 10년 전의 것’인 쓸모없는 그냥 아줌마가 되었을 뿐이니, 꾸준히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하는 남편의 직장이 이 서울 땅덩어리에 있는 이상 그걸 내팽개치고 무작정 지방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글의 처음에 언급한 친구는 서울은 아닌,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아주 여유롭게’까지는 살 수 없기에 뭔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나처럼 외동인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지만, 근처에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셔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있다.

또 다른 어떤 친구는 남편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했지만 첫째 아이가 너무 예뻐서 키우다 보니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어 둘째를 가졌다. 하지만 남편 월급만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남들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갈 즈음이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남편과 같이 공무원으로 일하지만 둘째가 조금 아파 일을 쉬고 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해보지 않은 내가 상상만 해도 힘든 일이지만, 워킹맘으로 종종거리며 아이 둘을 혼자 보다시피 하던 때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겨 복직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휴직 기간이 끝나면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로 복직하게 될 것이다. 힘들게 공무원 시험에 붙어 여기까지 견뎌왔는데 막상 이 나이에 공무원을 그만 두면 할만한 일이 없으니 막막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친구는 아이를 둘 낳고, 둘째가 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다니자마자 복직했다. 예전부터 아이는 둘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둘을 가졌지만, 막상 출산 휴가 기간 아이만 돌보며 집에 있어보니 회사생활의 고됨이 육아의 고됨보다는 훨씬 나아서 서둘러 복직했다고 했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나도 위에서 말한 것 같은 나의 사정이 있으나 아주 친한 지인이 아니면 굳이 일일이 말하진 않는다.

(아마도 나의 인스타그램만 보는 온라인 속 사람들은 내가 아주 행복해 보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듯이. 그곳은 행복과 즐거움을 위주로 전시하는 곳이니까.)

. 막상 이야기를 나누고 깊이 들어가 보면 모두 각자의 힘듦과 사정이 있을진대, 당연하게도 항상 나의 일만 크게 느껴지고 내가 가장 힘든 것 같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저 친구 사정보다야 내가 좀 낫지 싶은 못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그래도 오늘은 좀 괜찮은데? 지금 이대로만 쭉 가면 좋겠다 싶은 날들도 있다.

하지만 삶은 평탄하게 흘러가는가 싶으면 구태여 사고를 낸다.

마치 그렇게 긴 행복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많은 불행과 슬픔과 고통, 괴로움 속에서 행복은 간간이만 등장한다.

그 빈도수와 크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마 그 삶의 법칙은 모두에게 동등할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그 법칙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의지로 이겨내냐의 문제일 것이다.

사실 ‘이겨낸다’기보다는 삶은 ‘버티는 것’에 가깝다고 자주 느낀다.

어쨌거나 나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 나는 이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니 살아야만 한다.

 내 생이 어디까지인지는 그 누구도, 나도 알 수 없기에. 그 끝까지 살아보기 전까지는.

내 의지로 죽어버릴 것이 아니라면, 이왕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잘 버티고 견뎌내야 한다.

견디다 보면 간혹 행복의 이름을 한 순간들도 분명 올 것이다.      


이건 아이를 키우는 일과도 조금 비슷한다.

육아는 대부분의 순간은 고통이다.

거의 매 순간 나의 욕망을 아이의 욕망 아래에 두어야 하는 고통,

나의 시간을 이 작은 인간 하나를 잘 키워내기 위해 소비해야만 하는 고통,

그럼으로써 필연적으로 ‘나’를 뒤에 두게 되는 고통,

문자 그대로 피곤함을 동반하는 육체적인 고통,

그리고 나도 곧 겪게 될,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

 순간부터 겪게 될 자식과의 갈등에 대한 고통.


하지만 그 수많은 고통들 속에서 분명히 반짝이는 행복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잠 안 자고, 덜 씻고, 덜 먹고 인간다움을 어느 정도 포기하던 나날 속에, 아이가 처음 나를 보며 웃어줄 때, 처음 ‘엄마’라고 소리 내어 말했을 때, 첫 걸음마할 때,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이 거의 다 해준 것이 분명하지만, 처음으로 어버이날 색종이 카네이션을 만들어 왔을 때 같은 순간들.


분명히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너무 찰나라 정말 존재하긴 했나 싶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그런 순간들은 뇌리에 박혀서 불행과 고통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를 각성시킨다. 참고 살아가게 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참고 버티며 살다 보면 또 그런 찰나의 행복의 순간들이 분명 올 것이라고.  

    

한 달에 백만 원만 벌었으면 좋겠는 마음에 대해서 솔직히 써보려다가

왜 또 인생 얘기까지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고질병인 것 같기도 하고, 신세한탄을 한번 속 시원히 해버리고 나면 나의 다음 ‘찰나의 순간’을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을까?

 

가끔 우울의 순간들에 빠지는 지점을 고민해 보니, 나는 글 쓰는 게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쓰고 싶은데, 이건 어느 날 눈 떠보니 로또 맞듯이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이니,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라도 뭔가 다른 돈벌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길이 참 안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N잡러라는 것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사실 말이 좋아 N잡러이지 나처럼 그럴듯한 경력도 능력도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에게는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가진 진정한 의미의 N잡러가 되기보다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 해서 푼돈을 그러모으는 N잡러가 되기 십상이다.

그건 결국 또 경력도 되지 못하는 악순환의 연속이기에 어떻게든 이 고리를 끊어보고 싶은데,

몇 년째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 내가 한심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쯤에 나는 쉽게 우울해지곤 한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이딴 똥 싸듯 싸질러놓은 글 또한 누군가에게 읽히긴 할까 싶은 마음이

글 사이를 비집고 나올 것 같으면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한다. 

오늘은 그냥 이쯤에서 그만 쓰고, 이쯤에서 그만 머리 쥐어뜯고

달달한 디저트라도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돈도 안 되는 글 하나 쓰고

나는 정말로 디저트를 사 먹을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 하고 우울의 하강나선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으니까.

나는 이제 정말로 그만 노트북을 쾅 닫고,

빵 쪼가리보다 좀 더 강력한 어떤 것을 먹으러 가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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