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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의 도시에서 낭만을 외치다

비록 줄리엣 슴가는 못 만졌지만...

by 박식빵

*연재 요일을 (일)->(월)로 변경하였습니다. *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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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와 코모 호수에서 며칠을 보내고 수년간 가보길 꿈꿔왔던 베니스로 향하는 길..

우리는 밀라노에서 동쪽의 베니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베로나에 들렀다.

초딩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강행군 렌트카 여행에서 도시 하나를 더 찍고 말고는 큰 결정이었으나,

어차피 가는 동선에 있었고 ㅋㅋㅋ 그냥 왠지 끌려서 갔던 것 같다.

역시 ZTL 바로 밖 주차장에 차를 대고, 초입 맥도날드에서 에스프레소와 블러드 오렌지주스를 한잔하고 나서 베로나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보였던 두 개의 아치형 문이 너무 예뻐서 이상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베로나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그 유명한 줄리엣의 집이 있다는 것과, 좋아했던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배경 또한 이곳이라는 것.

왠지 그냥 미국, 호주 애들이라기보단 유럽에서 혹은 이탈리아 다른 도시에서 놀러 온 것 같은

유럽 청소년처럼 보이는 애들이 많았다.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 같은 걸로 학교나 클럽에서 단체로 온 느낌.

아마 오후 서너 시 즈음부터 해질녘까지 채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베로나에 머문 것 같았는데

나는 그만 베로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냥 찍고 가는 도시로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베로나는 우리가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차를 타고 다니며 가장 많은 주차비를 낸 도시가 되어버렸다. (11유로)

무려 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만든 아레나에서 아직도 오페라 축제를 하는 도시라니!

로마의 콜로세움과는 또 다른 매력의 아레나와 아름다운 벽돌집이 즐비한 도시!

2025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광고판이 붙어 있었는데, 이 웅장하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레나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일까! 떠올려보게 하는 도시!

그 멋진 건물들 사이로 명품 가게들이 즐비한 요상한 매력의 도시!

명품가게들과 예쁜 집들을 굽이굽이 돌다가 마침내 줄리엣의 집에 도착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ㅠㅠ 우리가 간 딱 그날이 지붕 보수 공사 때문에 문을 닫아서

정말 애석하게도 줄리엣의 가슴은 만져보지 못했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그녀의 가슴을 만져댔고, 그녀의 가슴은 반들반들해졌다고 한다 ㅎㅎ

아쉬우니 우리처럼 탄식을 내뱉는 관광객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창살 너머로라도 줄리엣 사진 한 장 찍고.


발걸음을 서둘러 해가 지기 전에 산피에트로성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예쁘고 낭만적인 테라스가 있는

집들 사이를 지나

마침내 강가에 다다랐고, 저 멀리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당히 온화한 날씨, 예쁜 강변, 멋진 성, 그 모든 것이 지치고 지친 몸을 계속 걷게 만들었던

너무 예뻤던 베로나.

우리집 꼬맹이도 요렇게 귀여운 포즈도 잡아주고 ㅎㅎㅎ (내 Z flip 커버 배경화면)

막 여기저기 아무데나 찍어도 예쁜 도시. 낭만이 그득그득 묻어있는 도시.

에너지가 넘치는 (시차 적응 잘하고, 잠도 늘 잘 자는) 부녀는 굳이 계단을 내려가 다시 올라오고 ㅎㅎ

난 위에서 사진만 찍는다.


성 초입에 거의 다 왔는데, 분명히 책에서는 푸니쿨라가 있다고 했는데, 푸니쿨라 타는 곳을 못 찾겠고

계단을 걸어 올라 가려다가, 에너지가 고갈된 어린이는 아빠 등에 업혔고,

1/3쯤 올라가다 보니 계단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푸니쿨라 승강장이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내려갔다. ㅋㅋ

도저히 꼭대기까지는 걸어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그다지 높진 않았지만 ㅋㅋㅋ)

푸니쿨라 타기 바로 전, 젤라또 한 사발씩을 사서 당 충전을 하며 푸니쿨라를 탔다.

승강장에 있던 직원에서 이거 가지고 타도 되냐고 물었더니 너무도 쿨하게 "Why not?" 표정으로 오케이 해줬다. ㅋㅋ

마침내 베로나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성피에트로성 꼭대기에 도착.

우와........... 오늘 내가 이걸 보러 베로나를 걷고 또 걸어 여기까지 왔구나!!

꿈을 꾸는 것 같은 순간.. 매 순간이 아름답고 그저.. 모든 것이 그림 같은 이탈리아.

베로나에 오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이 아름다운 풍경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도시.

피렌체가 번쩍번쩍한 보물 같은 도시라면, 베로나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과 낭만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누군가의 애착인형 같은 그런 도시. 애틋하고 감미로운 추억이 깃든 도시.


베로나에 취해 예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버린 우리는 저녁 먹을 무렵이 되어서야 주차장으로 다시 향하기 시작했고, 급 배가 고파져 검색을 거쳐 한 일식 가게 집에 들어갔다.

밥을 기다리며 바로 맞은편에 있던 서점에 가서 구경했는데 귀여운 어린이책들이 아주 많았다.

아이와 내가 아는 책들도 이탈리아 버젼으로 있으니 신기해서 표지도 다시 살펴보고!

문 닫기 5분 전이라 기념으로 한 권만 골라보라고 해서.

이탈리아어는 못 읽으니까 주로 그림이 있는 예술적인 그림책으로 같이 골라 한 권 구매했다.

우리에겐 파파고가 있으니까 짧은 글 정도는 번역해서 볼 수 있겠지!

교자와 롤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아이 또래 사장님 아들이 주는 (중국인 가족인 듯) 포츈쿠키도 열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베로나를 떠나 다시 차를 몰았다. 오늘의 여독을 풀고, 짐을 풀고 2박 3일을 보내게 될 베니스의 숙소에 깜깜한 밤이 되어 겨우 도착했다. 아주 널찍하고 좋았던 에어비앤비 숙소.


베로나에 반해버린 덕에 베니스에서의 관광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뭐 어떠랴!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꿈결 같은 시간이 끼어드는.. 떠나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낭만이 가득한 곳,

그게 유럽 여행의 즐거움인 것을!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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