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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Apr 05. 2021

한 끗 차

땡큐와노떙큐만잘 사용하면 살 수 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서있었다. 횡단보도는 허울뿐인 소방도로다. 차들은 자신이 주인인양 좀처럼 양보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끼어든다. 나도 주춤거리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이 한쪽 발을 먼저 집어넣고 말았다. 조금의 틈만 주면 저런다는 씩으로 차가 기분 나쁜 소리를 하며 빵빵거린다. 나도 눈살을 하나 가득 찌푸리고는 달리는 차 뒤꽁무니를 째려보았다. 


 그때 길 건너편에서 갈피를 잃은 할머니를 보았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제법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스텝을 놓친 댄서처럼 오른발을 넣었다 뺐다, 왼발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난 그녀의 파트너가 되어 주려 다시 길을 건넜다. 한 손을 번쩍 들어 차들의 발목을 잡았다. 할머니의 허리를 감싸고 함께 건네 드렸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행동이 굼떠서 차들이 서주지 않으면 한참을 그렇게 기다린다는 말씀 끝에 “새댁이는 늙지 마레이. 늙으면 사람도 아닌 거라. 바쁜 젊은이들에게 민폐만 끼치 샀고.”하시는 것이 아닌가. 머쓱해진 나는 할머니의 목적지를 물었다. 전철을 타고 딸 집에 가는 길이란다. 나도 전철을 타러 가는 길이라 짐을 맡아 들고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할머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할머니의 걸음에 속도를 나름 맞추느라 노력을 했지만 간격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좁혀졌다 하기 일쑤였다. 할머니의 땀에 어쩌면 할머니가 내 속도에 맞추며 걸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한 맘이 찡했다. 타고 가는 전철의 방향이 달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때 뒤에서 “복 받을 꺼요. 새댁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것이 무엇이라 그렇게 고마워하시는지. 단지 방향이 같아서 동행한 것뿐인데 오십이 넘은 나에게 새댁이라 불러 주시며 덤으로 복까지 가득 담아 주시는지 오히려 감사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우리의 아름다운 속담이 있다. 힘들이지 않고 입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감사하다’ ‘죄송하다’이 말만 잘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잘 되지 않는다. 먼저 그 말을 하기에 쑥스러워서, 아님 자존심이 상해서 눈치를 보다 기회를 놓친다. 그냥 내가 누군가의 발을 밟았던 밟혔던 죄송하다는 말에 서로 웃고 지나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 언양으로 온천을 가는 길이었다. 바람도 쐬고 따뜻한 물에 피로도 풀 겸 종종 가는 길이다. 국도라 중간중간 속도 측정기가 많아 내달리는 차들은 드문 편이다. 하지만 보행자들이 거의 없어 신호 위반을 하는 차들은 종종 본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택시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급하게 달렸다. 마치 응급 환자라도 싣고 가는 것처럼 보지도 않고 우리 차가 흔들거릴 정도로 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렸다.


 얼마 못 가서 그 택시가 갓길에 두 눈을 깜박이고 서 있었다. 그다음 신호도 무시하고 가다 교통경찰에게 딱 걸린 것이다. 도망가다 들킨 학생처럼 무어라 변명을 하는 모양이다. 기사 아저씨가 택시에서 내려 오히려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정말 급해서 그런 것일까. 아님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는 썩어빠진 언변을 하는지 씩씩거렸다. 그 옆엔 듬직한 경찰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무엇인가 요구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오로지 신분증만을 제세하라 했을 것이다.


 마침내 정의가 이기고 택시는 벌겋게 열이 받아 한 바가지 매연을 내뿜고는 꾸물거리며 떠났다. 우리는 당당하니 그냥 태연하게 갈 길을 가려했다. 그 순간 그 경찰이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도로 한 복판까지 나와 우리를 옆으로 이끌었다. “신호 위반하셨습니다. 신분증 제시해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서야 알았다. 남의 싸움 구경하다 우리도 그 속으로 빠져 들어 가버렸다는 것을.


 그 상황에서 우리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경찰 아저씨는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남편은 재빨리 신분증을 제시하며 상황을 설명하였다. 벌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바로 전날 이곳에서 인사사고가 나서 신호위반 차량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을 보내기 주기 어렵고 노상에 침을 뱉은 것으로 벌금만 하는 쪽지를 발부받았다.


 몇 번이고 수고하시라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벌을 받아도 아프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인정해버리니 편했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 고맙다, 죄송하다하는 말을 해버리면 쉽게 일은 마무리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과와 감사를 인지하는 뇌구조가 다르다는 말을 어느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이 생각났다. 


 서양인의 사과는 그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아주 가볍게 ‘쏘리(sorry)’라고 말한다. 반면 동양인의 사과는 자존심과 연결 지어 아주 심각하게 느낀다고 했다. 그러니 사과하기를 두려워한다. 오히려 인상을 쓰며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긴다.’라는 속담을 만들었지 싶다. 


  늙어 서러운 그분은 복이 많은 분이 틀림없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복을 나누어 주지 않았을까. 그 할머니는 덕분에 쉽게 복을 나누어 주는 법도 미안해하는 마음도 배웠다. 해외에서 생활하시는 지인이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땡큐와 노탱큐만 잘 사용하면 살 수 있단다.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의 뇌도 조금씩 글로벌화되길 바라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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