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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Mar 26. 2021

유치원 가다

새털보다 가벼울 엄마의 몸이 버거워 보였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작은 쪽문은 항상 비스듬히 담에 기대어 서 있다. 공부방이라는 간판을 매달고 주 5일 열려있다. 그 아래 쪽머리를 한 울 엄마가 고개를 내밀고 세상 구경을 한다. 거동이 불편하여 멀리는 나갈 수가 없다. 민달팽이가 보이지 않게 움직여 세상을 가듯 엄마도 그렇게 움직인다. 오가는 행인들에게 무조건 말을 건넨다. 

“어디 가능교?”

젊은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게걸음질을 하며 비집고 들어  온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가 창피했다. 공부방 학부모들이 보면 어쩌나 노심초사였다. 아이들이 오르는 계단 입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길을 가던 또래의 할머니들 몇몇은 아예 문을 막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이고, 하루가 와 이리 기노. 밤도 길고 낮도 길다.”

며 서로 신세 한탄을 한다. 바람도 친구이고, 길고양이도 친구인 엄마에게 말을 걸어준 그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부방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되기도 한다.  


 어느 날이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할머니 요양원 보내라. 거기 가면 친구도 있고 심심하지는 않을 끼다. 얼마나 심심하겠노.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도 그렇고…….”

하는 것이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남의 눈에 엄마가 불쌍해 보이는구나.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 숟가락을 드셔도 집 밥이 좋다는 엄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요양원은 엄마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때, 내가 더 이상 엄마를 모실 수 없을 때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요즘에는 맞벌이 가정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부모들을 요양원에 보낸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생각이다. 절대로 엄마는 요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내 결단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엄마는 아들이 없어 가슴에 스스로 대못을 꽂고 사시는 분이다. 아직은 맑은 정신에 요양원을 가시면 아들이 없어 그렇다고 서러워하실 것이다. 아들이 있고 없고는 요양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아들이 없는 엄마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수만수백 가지 생각이 서로 뒤섞여 엉클어진 실타래가 되어 버렸다. 날씨조차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끝내 오지 않는다. 잔뜩 내려앉은 하늘 탓에 바람은 잔잔하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내 감정 선을 건드리고 있다. 

 남의 눈치 보느라 언제나 당신의 아픔을 숨기고 사신 분이다. 부모에게 받은 머리를 끝까지 가지고 가신다며 지금도 쪽머리를 고수하신다. 담배를 피워도 절대 남이 보는 앞에서는 피우시지 않는다. 서른여섯에 딸자식 셋을 두고 떠난 남편을 꿈에서 가끔 만나 소풍을 가신다는 우리 엄마다. 자식들 고생할까 새 울고 꽃피는 따뜻한 봄에 가시기를 원하시는 그런 분이다.


 나는 이층 공부방에서 한동안 고개를 내밀고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햇살이 내려와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고개만 대문 밖 세상을 향해 기웃거리고 계셨다. 

“엄마, 뜨겁다. 인제 들어가소. 더워서 사람들도 한 명도 안 보이 구만.”

해 보지만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들여보낸다. 이제 더운 줄도 창피한 줄도 모르시는 모양이다. 그토록 단아하던 몸도 바닥과 맞닿아 땅 위에 뒹구는 낙엽이 되어 버렸다. 

 대충 아이들을 보내고 큰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밀려드는 눈물 젖은 목소리에 언니도 놀란 모양이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언니의 목소리도 떨려왔다.    “어째야 되것노. 엄마 깔끔한 성격에 그곳에 가면 바로 우울증 올낀데. 주위 사람들 보기에 안 좋아 보였나 보다. 천천히 생각 한 번 해보자.” 

“그랬나 봐. 저번에도 어느 분이 그래도 그러느니 했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네. 엄마 불쌍해서 우짜노.”

언니와 나는 한참을 울며 통화를 했다.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시아버지가 치매 증상이 보였단다. 요양원에 가시기를 꺼려하시고 자식 된 도리도 있고 해서 상담을 통해 통학 치료를 하신다고 했다. 치매진단서가 있으면 아이들 유치원처럼 통학이 가능한 시설이 있다고 했다. 오전 9시에 모시고 가서 오후 5시에 데려다주는 시스템이란다. 친구들도 있고 프로그램에 맞춰 놀이도 한단다. 처음에는 가기 싫어하시더니 지금은 아침을 기다리신단다. 좋은 친구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어하신다고 했다. 증세도 많이 좋아지시고 지금은 거의 정상이라고, 무조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를 잘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 춘향이 아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 유치원으로 비유해서 이야기를 할까. 요즘 노인 문제로 나라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어 예전 같지 않다고 할까. 며칠만 가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할까. 적응을 할 동안 같이 간다고 할까. 엄마의 친구를 이야기해 줄까.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공부방 문을 닫는다. 

“인자 끝났나? 나도 들어가야겠다.”

나와 출퇴근을 같이 하는 엄마다. 엄마는 천천히 절뚝절뚝 또 혼자만의 공간으로 향한다. 작고 앙상한 몸. 얼마나 무거우면 한 발자국 옮기는 것이 저리 버거울까. 새털보다 가벼울 엄마 몸이 버거워 보였다. ‘밤새 잘 지내시고 내일 또 출근하셔야지요. 이제 엄마도 유치원 가서 친구도 만나고 노래도 하고 재미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혼자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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