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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Apr 11. 2021

오일장

그곳에서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또 누군가는 추억 한 보따리 챙겨 간다.

나는 오일장을 즐겨 찾는다.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시골 풍경이 담겨있는 그 곳에 가기를 좋아한다. 오일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 인정이 있고, 여유가 있고 젊음과 늙음이 공존한다. 더 가져가려는 사람과 그러지 않으려는 사람과의 실랑이도 있다. 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오일장엔 정이 넘쳐흐른다. 


생선 가게 조개의 쪼글쪼글한 맨발. 옆에서 아저씨가 조개를 열심히 까고 있다. 미역국을 끓일 마음으로 백합 두 마리를 샀다. 얼른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검은 봉지에 담아준다. 행여 비린내가 따라 갈까 젖은 손을 손때 묻은 수건에 몇 번을 닦고서야 봉지에 한 번 더 넣어 내민다. 손이 퉁퉁 불어 있다. 손마디가 굽어 펴지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조개를 까느라 손은 지쳐 있었다. 굽은 어깨로 가족의 삶을 짊어지고 나온 가장의 부르튼 손이 애처롭게 보였다.


장터하면 국밥이다. 드럼통을 잘라 만든 간이 조리대위에 얹어 놓은 한 아름 솥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기름이 서로 엉겨 동동 떠있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낮 술판이 벌어졌다. 구수하다. 나는 식당 안을 버릇처럼 기웃거려 본다. 흥이 오른 노인들 틈에 한 노인이 국밥 한 그릇을 두고 멍하니 앉아있다. 그 옆엔 뚜껑을 열지 않은 소주병과 비어 있는 잔 두 개가 마주하고 있다. 숟가락 두 개가 얌전하게 뚝배기에 걸쳐져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노인의 눈은 오로지 국밥만 응시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가 노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노인은 나를 닮아 있었다. 누군가 기다리다 그리워 울어 버릴 것 같은 큰 눈들이 마주쳤다. 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던 아버지의 허상을 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가마니를 짜서 장을 갔단다. 가마니 판돈으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자고 가벼운 걸음으로 고개 넘었단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한 장도 팔리지 않아 고픈 배를 안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고는 너무도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국 국밥 한 그릇 드시지 못했단다. 엄마는 국밥만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엄마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아버지 모습이다. 나와 꼭 닮았다더니 그래서 생긴 허상이 내 옆에 우둑하니 앉아있다. 만삭의 아내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이지 못해 미안해하는 초라한 남편의 모습처럼 보였다. 생각지도 않은 아버지의 잔상을 그 어르신에게서 보고 말았다. 나도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어르신과 눈인사를 건네며 맛나게 드시고 가시라고 웃음을 보내며 그 노인의 몫까지 계산을 하고 나왔다. 


국밥집을 나와 한참을 시끌벅적한 인파속에 난 쉽게 섞이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엔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괜스레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한 기분이 들어 좋다. 무엇이 그리 바빠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가셨는지. 지금은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는 국밥인데 가슴 아픈 음식으로 남겼는지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음식에게 사연이 하나씩은 있을 법하다. 내가 국밥을 보면 아버지를 그리듯이 말이다. 오일장에는 그런 음식들과 추억이 많다. 좌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쪼그려 앉아 식은 밥을 먹는 노인들. 모든 장면들이 옛날 내 엄마의 모습이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남의 집 일이며, 시장 한 귀퉁이에서 좌판을 갈고 미나리를 파는 일이며, 추운 겨울이면 군고구마를 팔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엄마. 그로 인해 거칠고 까맣게 타버린 손을 창피해하던 엄마, 그 엄마가 창피했던 나. 얼굴이 달아오른다. 지금은 그때가 그리워 장을 찾는다.


나에게 오일장은 정을 채워 오는 곳이다. 풍성한 인심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환상 속의 아버지를 만나 좋다. 습관처럼 엄마가 좋아 했던 따뜻한 수수부꾸미 두 어장을 식지 않게 돌돌 말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엄마가 어린 우리를 부뚜막에 옹기종기 앉혀 두고 차례로 입에 넣어 주던 간식이다. 엄마가 힘없는 턱을 움직이며 오물오물 드시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또 하나의 애절한 추억의 음식으로 내게 남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이런 풍경들이 안타깝다. 대형마트가 생겨나고 가족의 수가 줄어들면서 작은 시골 장은 차츰 없어지고 있다. 그나마 도시 인근의 오일장은 카메라를 들고 여행길에 찾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종종 보여 다행이다. 젊은이들이 물건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듣기만 했었던 경험하지 못한 구수한 맛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는 것이지 싶다. 홀로 있을 시골의 할머니 생각도 날 것이고, 두루두루 섞여 살아 온 그들 부모님의 정서도 느끼고 갔으면 한다.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들이 하나 둘 찾아오는 젊은이들 속으로 녹아들어 이어졌으면 한다.


정이 오가고 사람들로 붐비는 도심의 오일장은 옛날 냄새가 난다. 작은 봉지 안에 들어 있는 곡식이며 채소들은 할머니들의 활력소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또 누군가는 추억 한 보따리 챙겨 간다. 다음 장이 서는 날 다시 국밥집에서 내 눈에만 보이는 아버지를 만날 기대를 해본다. 어쩌면 다음 장엔 엄마와 마주보고 앉아 기분 좋은 얼굴로 국밥을 드시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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