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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Apr 06. 2021

도마 소리

매캐한 기름 타는 냄새도 사랑이 묻어나면 향기롭다.

 오늘도 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감자와 양파를 잘게 채 썰어 튀김을 할 요량이었다. 음식에 시각, 청각, 미각이 잘 이루어지면 금상첨화다. 속이 하얀 감자에 보랏빛 적양파, 녹색의 풋고추는 있었다. 붉은색이 아쉬웠다. 냉장고를 뒤졌다. 쓰다 남은 당근 한 조각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한눈에 들어오고도 남는 야채 칸을 몇 번이나 뒤지고서야 당근 한 개를 찾았다. 얼추 구색은 맞췄다.


 아이들이 오면 아삭한 튀김을 동그란 대바구니에 보기 좋게 내놓을 생각에 손놀림이 가벼웠다. 요리 실력은 별로 없지만 튀김이나 전은 제법 하는 편이다. 삼십여 년 동안 제사 음식을 하다 보니 저절로 손에 익어서다.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칼질을 했다. 토닥토닥 가볍게 내려치는 칼을 도마가 잘 받쳐줬다. 경쾌하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신이 나 있으니 도마와 칼도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서로 합이 좋으니 한바탕 국악 놀이가 펼쳐진다. 활기찬 세마치장단에 흥이 절로 난다. 부모와 자식도 합이 맞는 사람이 있다. 엄마와 내가 그렇다. 내가 결혼을 하고도 오 분 거리를 벗어 난 적이 없다. 서로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결혼 후 시아버지를 모시면서부터 엄마 집에서 자고 오거나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미꾸라지 찍찍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주물러 끓인 엄마표 시래깃국이 그리울 정도였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시아버지가 시누이 집에 일주일 정도 다니러 가셨다. 엄마 집에서 자고 올 좋은 기회였다. 시아버지가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나도 집을 나섰다. 아이들과 남편에겐 그리로 올 것을 미리 이야기해두었다. 

 “엄마,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간데이. 시아버지 청송 시누이네 가셨거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살짝 잠이 들었나 보다. 낮잠을 자는 일이 거의 없는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다. 편안하게 꿈까지 꾸었다. 잠결에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토닥토닥. 정겨운 도마 소리가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던지 맑은 장단에 흥이 났다. 냄새도 구수했다. 몸도 뭉게구름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이 가볍고 시원했다. 


 소리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더운 날씨에 무엇인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꿈인가. 볼을 꼬집어 봤다. 아팠다. 뒷모습만 봐도 엄마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아픈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의지한 채 부지런히 춤을 추는 듯했다. 손의 움직임이 가볍고, 어깨의 들썩거림이 들떠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자고 간다는 딸을 위해 추어탕을 끓이는 중이었다. 


 도마 소리의 경쾌함을 그때 알았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난 그때의 그 소리를 기억한다. 토닥토닥. 힘들어하는 자식을 다독여 주는 소리다. 내가 식구들을 위해 도마질을 할 때마다 그때의 기분이 든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면 달그락거리는 모든 소리는 사랑의 협주곡이다. 달콤하다. 


 내가 그랬듯이 아이들도 그 소리를 좋아한다. 아들은 휴일에 늦잠을 잘 때 엄마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고 토닥거리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끔 눈을 뜨고도 한참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한단다.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행복하다 말하기도 한다. 지금 타지에서 오누이가 자취를 한다. 딸아이가 일요일 늦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으면 

 “음, 냄새 좋다. 누나, 뭐해? 늦잠 자려고 했는데 누나 도마 소리에 일어났네. 갑자기 배가 고파서 잘 수가 있어야지.” 

아들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허수아비 춤까지 추며 나온단다.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마음의 합이 중요하다. 잘 받쳐주고받아 준다면 칼과 도마의 소리로도 흥이 오른다. 자신을 날카로운 날로 아프게 한다고 여기면 한도 없다. 도마를 유심히 보면 상처투성이다. 칼의 춤에 난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도마는 말이 없다. 칼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요즘 자주 나른해지고 밥맛도 없다. 맥없이 소파에 누워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꿈속에서 엄마의 장단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찾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엄마?”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아들이었나 보다. 설익은 잠 기운에 부엌에서 계란 프라이를 하는지 기름 타는 냄새가 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한결 가뿐했다. 코끝에 구수함이 전해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엄마 집에서 느꼈던 기분이었다. 엄마의 소리보다 힘이 좀 더 들어간 장단이다. 엄마의 소리는 경쾌한 리듬의 자진모리장단을 배합했다면, 이들의 소리는 급하고 분주한 휘모리장단이 배합된 소리였다. 그 소리를 더 듣기 위해 눈을 감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이제 엄마의 장단을 들을 수 없다. 몸이 아플 땐 더욱 그립다. 어깨 들썩이며 치던 도마 소리를 들으며 금방이라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비늘구름이 떠 있는 햇살 좋은 날이면 마음이 아파 온다.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장단은 리듬이 다르다. 행여 자식이 싫어할까 봐 소리도 냄새도 엄마의 걸음도 긴장을 한다. 자체가 사랑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해준다면 그 자체로 즐겁다. 특별하고 요란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좋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특별한 인물이 되어 등장할 수 있게 엇중모리 장단에 우조가 섞이어 나는 소리면 된다. 소박하게 호박 슴벅슴벅 썰어 넣고 끓인 뚝배기 한 사발에서도, 매캐한 기름 타는 냄새도 사랑이 묻어나면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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