涸轍浮魚(학철부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놓인 붕어'라는 뜻으로 매우 곤궁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비 오는 날 수레바퀴가 지나가며 만들어 놓은 움푹 파인 자리에 빗물이 고인다. 연못에 있던 붕어 한 마리가 하필이면 그 작은 웅덩이로 떠내려왔다. 당장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붕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물 좀 주세요."
본 체 만 체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자 애가 타서 울부짖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물 한 바가지만 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축 늘어져 죽기 일보직전에 어떤 사람이 다가오며 도움을 주겠노라 약속한다.
"며칠만 기다리면 강물을 끌어다가 네가 있는 웅덩이에 물을 대 줄 테니 걱정 마라."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붕어한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넘쳐나는 강물이 아니라 한 바가지의 물이 아닌가. 시간을 지체하여 바로 숨이 끊어진 뒤에 강물을 끌어다 준들 무슨 소용이랴.
나도 몇 년 전에 涸轍浮魚(학철부어) 신세에 놓인 적이 있었다. 식탁을 차려놓고 급하게 빵 하나를 집어 들고 출근을 서두른 게 화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빵을 한 입 베어 문 게 그만 목구멍에 걸려버린 거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걸린 것을 넘기기 위해 빵을 더 크게 떼어 꿀꺽 삼켰다. 이게 웬일인가. 그때부터 딸꾹질이 나오면서 목구멍이 조여드는데 덜컥 겁이 났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집으로 다시 올라가기에는 늦었고 해서 경비실을 떠올렸다. 21층의 가족보다 1층에 있는 이웃이 더 빨리 나를 구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허리를 구부린 채 간신히 발걸음을 떼었다. 엎드리면 코 닿을 데가 천리길처럼 멀어 보여 사력을 다해 몸을 옮겨야 했다. 마침 TV를 시청하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나는 구부러진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물 좀……."
짧게 내뱉은 '없어요'라는 말이 들렸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피가 통하지 않아 얼굴은 붉어지고, 양손은 목덜미를 부여잡고, 허리는 휘청거리는 모습을 한 아줌마가 나타난다면? 게다가 물 좀 달라 애원까지 한다면 대개는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을 게 뻔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분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었다. 고통에 못 이겨 당장이라도 쓰러지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태연하고 침착했으니.
"제가 지금 목이 막혀서요. 물 한 모금만 주시면……."
다급한 목소리와 딸꾹질이 그 무거운 입을 겨우 열 수 있게 했다.
"저기 정문 경비실에 가면 정수기가 있는데요."
거기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뭐가 아쉬워서 찾아왔겠냐 싶었으나 나를 살릴 사람은 오로지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저씨뿐이었다. '제발'을 연발하자 굳게 다문 아저씨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나 점심에 먹을 물밖에는 없는데."
퉁명스럽게 튀어나온 혼잣말에 이승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찰떡 먹는 내기를 하는 방송 촬영 중에 유명을 달리한 어떤 방송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 절체절명의 순간은 이렇게 갑작스레 나를 찾아오는구나.'
목에서 나오지 않는 말을 간신히 이어 붙이며 마지막으로 애원해 보았다.
"그 물 좀. 저, 저 지금 죽을 것……."
아저씨는 마지못해서 '점심에 먹어야 할' 물병을 느릿느릿 꺼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물을 받아 드는 순간이었다. 얼른 입으로 가져간 한 모금의 물에 그토록 신비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녹아있을 줄이야. 꽉 막혔던 목구멍이 뚫리고 활처럼 구부러졌던 허리가 펴졌다. 물론 목소리도 제대로 잘 나왔다.
"아, 이제야 살았네요. 고맙습니다."
내가 지른 감탄사에도 아저씨는 아무런 동요 없이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점심에 먹을 물이 줄어든 게 속상해서였을까, 아니면 남의 고통을 늦게 알아챈 게 미안해서였을까.
무사히 출근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물 한 모금과 경비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살아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후에 과일을 들고 경비실을 찾았으나 마침 오후 당번 아저씨와 교체된 뒤였다.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고마움은 남겨둘 수 있었다.
죽음 문턱까지 갔던 그날이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 물은 점심에 먹을 것이라 안 되고, 내일 많은 물을 갖다 주겠다'라고 끝까지 버텼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힘에 겨워 쓰러지는 사람을 살리는 건 크고 성대한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다. 나를 살린 한 모금의 물처럼. 나도 소중한 누군가를 지켜내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