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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an 20. 2024

가족 간병인의 하루

아이구, 아버지

'휴, 다행이다. 밤 사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잘 넘어갔어.'


하루 일상이 새벽부터 수선스럽게  열리는 병실에서 지내다 보면 밤이 일찍 찾아온다.

어젯밤 11시에 눈을 감았으나 잠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11시부터 1시, 3시, 5시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나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로 인해.

어쩌면 그리도 시간 감각이 정확한지 나는 아버지를 '시간의 달인'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잠을 깨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궁금하다는 분을 위해 적어보자면. 

가래 뽑기부터 시작해서 침 닦아 드리기, 몸 상태 체크하기, 이불 덮어드리기는 하수에 속한다.

침대 아래쪽으로 쑥 내려와서 바짝 오그라든 아버지의 몸을 침대 위로 잡아 올려 몸을 펴드리는 일이 어렵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며 마주 잡아 줄 손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에게 '실례'를 절대로 못하는 집안의 자식들이라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밤새도록 동분서주 바삐 움직이는 간호사를 뻔히 보면서 선뜻 간호사님들의 손을 덥석 잡을 수가 없다.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하려니 힘에 부치는 건 당연지사다. 혼자서 힘을 쓸 때는 허리가 삐끗하지 않도록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나도 환갑을 넘긴 지 꽤 됐으니 허리 조심해야지, 간병하다가 아버지 옆에 나란히 눕게 되면 큰일 아닌가.


환자 곁을 지키다 보니 노하우를 점점 터득하게 된다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으나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환자를 돌보는 방법이 생긴다. 예를 들어 자꾸만 침대 아래로  내려가는 아버지를 끌어올릴 때 나는 아버지의 발을 이용한다. 거의 힘을 주지는 못하지만 미세한 힘이라도 이용해 보자는 것이다. 침대 끝의 난간에 아버지의 발바닥을 대놓고 '하나 둘 셋!!' 하는 구령으로 아버지와 함께 백지장을 맞든다. 힘을 주지는 못해도 발바닥이 지탱만 하고 있어도 위로 잡아 끌 때 약간의 덕을 볼 수 있다. 대개 네 번 정도 구령을 붙이면 성공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쪼르르 밑으로 내려온다는 것이 큰 흠이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잠깐 눈 좀 붙일 수 있으려나? 하고 간이침대에 누웠다. 

이런, 부지런한 청소미화원 여사님이 벌써부터 팔을 걷어 부치고 병실에 나타나셨으니 어쩌나. 잠자기는 이미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갑자기 길재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아직 6시도 안 됐는데요. 속으로만 꿍얼댄다. 이왕 잠이 달아났으니 오늘 해야 할 일과나 좀 적어봐야겠다.

1. 약 복용- 식전 약 포함 하루 4번 (물에 잘 녹여 주사기로 콧줄에 넣기)

2. 경관식 식사- 하루 세끼를 콧줄에 넣기 (600ml, 500ml, 500ml)

3. 네뷸라이저(호흡기 치료)- (두 가지로 소:기관지 확장, 대:가래 배출을 위해 하루 4번)

4. 썩션- 목구멍, 입안 가래 뽑기(수시로 하고 심할 때는 정신없음)

5. 소변 량 수시로 체크해서 적고 통 비워두기

6. 대변 치우기-하루 2~3번으로 줄어듦

7. 옷 갈아입히기, 침대 커버 교체하기, 얼굴 닦아드리기, 양치시켜드리기


여기에 재활 치료를 갈 때는 따로 추가되는 일이 있다.

1. 양말과 바지 입히고, 운동화 신겨드리기

2. 이송 요원이 오면 휠체어에 아버지를 맞들어 옮기기

3.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동안 재빨리 침상 정리하고 시트와 이불을 교체하기

4. 재활 치료실에서 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엄마한테 전송하기

5. 돌아와서 재활 에어 장화 신겨드리고 기계 작동하기


이런 기본 스케줄 외에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은 정서적 치료이다. 가족보호자와 전문 간병사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정서적 케어는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을 우울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희망을 유지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   


오늘은 손톱깎이를 대신하여 가위로 손톱을 잘라드렸다. 물론 중간중간 집에 계신 엄마와 소통할 수 있도록 페이스 톡 연결도 해드리고, 틈틈이 기록으로 남길 사진도 찍는다.

이 와중에도 계속 나오는 가래를 빼야 하고 닦아드려야 하니 손이 여럿이라도 부족할 따름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사치스러운 힘듦에 속한다.


아버지 손가락이 허리 아래를 가리키며 입을 동그랗게 말아 내밀면 긴급상황이 발생한 거다.

어린애의 순진무구함이 가득 스며든 눈동자가 내 마음을 애처롭게 만든다.


 "ddong!!!"


이제 많이 익숙해진 과정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얼른 비닐장갑을 끼고 화장지를 잔뜩 준비하여 대기하면 준비 완료. 아무런 냄새가 없는 ddong은 입자가 균일해 찰흙처럼 곱다. 이 찰흙덩이를 하루 세 번 정도 생산해 내야만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고 순조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미국에서 간병하러 온 동생은 이 찰흙덩이로 미술 작품 하나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다니 못 말린다. 대신 사진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려주는 친절을 보였다.


오늘은 오전부터 도무지 기미가 안 보인다. 2시에 재활 운동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생산활동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째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송 팀이 아버지를 모시러 오기 전에 준비할 것도 많은데 중요한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드디어 기다리던 이송 팀이 침대를 끌면서 나타났다.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의 손가락이 뒤를 가리키며 입모양은 동글게 해서 앞으로 내민다.


 "ddong!"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 변을 치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급하다고 엉터리로 마무리해선 안 되는 일이라 마음만 허둥지둥이다. 잠시 다른 환자부터 봐달라는 양해를 구하고 커튼을 쳤다. 얼른 뒷처리를 한 다음 욕창 방지를 위해 물로 깨끗이 닦았다. 새 출발을 준비하는 아기처럼 뽀송뽀송한 기저귀를 채워드린 지 몇 초도 안 되어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는 2차 찰흙덩이가 살포시 떨어졌다. 힘이 쑥 빠진다. 그동안 아버지한테 많이 속아왔으면서도 느긋하게 기다리지 않았던 나의 불찰이니 어쩌랴.


"아이구, 아버지!"


기독교인이 아닌 내 입에서 "아이고, 주여!" 대신 터져 나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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