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호실, 설레는 마지막 밤
새로운 희망을 안고
아버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건강하고 풍채 좋았던 미남 우리 아버지!
갑자기 찾아온 척추염이라는 병명 아래 걸을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예전처럼 씩씩하게 걸을 줄 알고 바로 수술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느닷없이 코로나에 걸려 1인 병실로 옮겨진 후 열흘 이상 격리되는 동안 흡인성 폐렴까지 얻었다. 그 상태로 재활 기회를 얻기 위해 두 달을 마냥 누워있었더니 믿기지 않을 일이 벌어졌다.
76킬로이던 몸무게가 62킬로로. 뼈의 윤곽이 그대로 잡힐 정도로 근육이 몽땅 빠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가래로 숨을 잘 못 쉬어 산소까지 공급받다가 그 무섭다는 기관지 삽관까지 하고 말았다.
당연히 말을 못 해서 글자로 소통해야 했고, 입 대신 콧줄로 경관식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기상이 좋고 총명함도 예전 그대로다. 상체는 자유롭게 놀릴 수 있어 기력도 많이 회복되는 중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아버지는 이제 손가락으로 잠깐잠깐 목구멍을 막으면 말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어 말하는 연습도 자주 하고 있다. 얼굴 표정이 꼭 어린애 같아 간호사들은 '귀여운 할아버지'라 부른다.
재활 운동이라 해봤자 고작 자전거 타는 일이지만 조금씩 다리에 힘이 오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재활 병동으로 옮겨 다양한 프로그램에 의해 계획적으로 운동을 빨리 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 아침, 회진 온 호흡기 담당 의사가 희소식을 전했다. 아버지 증세가 호전됐다는 증거다. 이미 산소 통을 떼어버렸으니 자가 호흡이 가능한 상태다.
"재활 병동에서 받아준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갑자기 상체 운동, 다리 운동을 보란 듯이 하더니 한자 책까지 펼쳐 읽는다. 칭찬받고 싶어 하는 어린애처럼 표정이 맑아 마음을 흐뭇하다.
내일은 드디어 전과하는 날. 아버지가 걸을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해 줄 재활 병동에 입성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가족은 물론 여러 사람의 도움과 응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재활병동에서는 아버지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기를, 혼자 걸어서 나올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병원에서 나온 분홍쟁반 위에는 잡곡밥 한 그릇과 수저가 놓여 있다. 이미 찬 밥 신세가 되어 멀뚱이 나를 바라본다. 냉장고에서 배추김치, 물김치, 멸치볶음, 김을 꺼내 올려놓는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이렇게 꿀맛일 줄이야. 어느 누가 반찬 투정을 할 수 있으랴. 하루 세끼를 모두 콧줄로 공급받는 아버지 앞에서. 음식을 입에 넣고 씹어서 목구멍으로 삼키는 일이 이렇게 호사스럽고 죄송한 일인 줄 정말 몰랐다.
115호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115호실은 폐가 안 좋아 숨쉬기에 고통받고 걸음을 못 떼는 환자들이 오래도록 함께 지냈던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역시 건강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 곳이다.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다.
가래 끓는 소리도, 짜증 내는 모습도, 시끄러운 기계 음도, 콜록거리는 기침소리도 모두 같은 심정으로 나눴던 환자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부디 완쾌하여 사랑하는 가족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따스한 집으로 어서 돌아갈 수 있기를ㆍㆍㆍ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해 준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의 무궁한 발전도 빈다. 매일 새벽부터 병실의 위생을 책임지는 환경미화원 님의 도움도 감사하다. 병원에 존재하는 모든 분들이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오늘 밤도 왠지 잠은 오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