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병동에서 3개월 치료를 받다가 이곳 재활 병동으로 오게 된 지 4주째다. 이참에 집으로 가서 쉬고 싶지만 주치의는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며요양병원을 소개한다. 가족들은 나를 집으로 데려가야 할지, 다시 새로운 병원을 찾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 것 같다. 결국 6개월 동안 치료한 노력이 물거품 되지 않도록 재활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중지를 모았나 보다. 희망을 가슴에 품고 소개받은 병원 세 군데를 알아보고 그중 두 군데는 직접 답사까지 했단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자식들 마음이야 고맙지만 어디든 집만 한 곳이 또 있을까.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던 내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까.
이 모든 원인은 코로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3차 백신을 맞고 나서부터 왼팔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옆구리까지 통증이 번져갔다. 며칠 뒤 심한 딸꾹질까지 찾아와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바람에 응급실로 실려간 게 시초였다. 그곳에서 내려진 척수염이라는 진단이 내 여생을 엉망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누구한테 하소연하겠나.
무난하게 수술을 마치고 회복 단계까지 갔으나 코로나에 감염된 게 일생일대의 한으로 남는다. 코로나로 인해 1인실에서 격리하던 중에 흡인성 폐렴까지 겹쳐 산소마스크를 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열흘 간 수면 상태로 지내면서 생사의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일반 병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행운으로 여긴 것도 잠시, 호흡곤란이 심해져 급기야 기관 삽관까지 하고야 말았다. 결국 콧줄로 음식을 섭취하며 누워서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내가 입원한 본관 5인실에는 폐가 안 좋아 숨쉬기가 힘든 환자들 뿐이다. 밤새 가래 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진저리가 난다. 목구멍에 착 달라붙은 진득한 가래를 빼내느라 침상마다 붙어 있는 기계가 종일 돌아간다.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어느 환자건 그렁그렁한 가래는 당장 뽑을 수 있지만 쌕쌕거리는 고통만큼은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침상에 누워 생활하는 환자들은 다리 근육이 빠져서 걷지를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나는 욕창까지 걸렸으니 손이 아주 많이 가는 환자 중의 하나였다. 내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돌아보면 허망할 뿐이다. 오랫동안 누워있다가 욕창이라는 녀석이 내 발목을 잡았다. 진작에 재활병원으로 옮겨졌으면 달라졌을지 모르는데 너무 늦게 주치의의 허락이 떨어졌다. 갑자기 정신없이 재활병동으로 옮겨지는 바람에 함께 누워있던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인사도 못 건네고 떠나왔다.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이곳 재활병동은 본관보다 오래된 건물이라 협소하고 시설도 아주 열악하다. 병실 하나에 5명의 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숨소리까지 바짝 들린다. 기침을 하면 내가 하는 느낌이 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듯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이송 요원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환자들이라 침상마다 가족이 한 명씩 붙어 있다. 움직이는 자유를 잃어버린 나를 포함한 환자들은오로지 남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치료를 갈 때마다 간이침대로 옮겨 누워야 하는데기계가 나를 들어서 올려준다. 물론 휠체어를 탈 때에도 이송 요원 두 명의 손이 반드시 필요하다.
빡빡하게 짜인 재활운동 시간표를 보며 새벽부터 환자를 태우고 달리는 보호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환자마다 서로 다른 맞춤형 치료가 정해져 있다. 시간에 맞춰 장소를 찾아 이동하느라 엘리베이터 앞은 언제나 카트와 휠체어로 장사진을 이룬다. 젊은 이송 요원들이 이 늙은이를 도우려고 늘 대기하고 있는 걸 보면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넓은 치료실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들어찬 환자들이 재활의지를 다지면서 각종 기구를 이용한다. 여러 가지 형태의 치료를 다양하게 받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싶어도 현재 욕창이 심해서 마음껏 치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엉덩이 꼬리뼈에 레이저를 쏘는 욕창치료를 위해 바지를 내린다.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옆으로 누워 있으면 내가 사람인지 벌레인지 궁금하다. 머릿속에서는 온통 로봇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뿐. 그것만 하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나도 로봇치료를 받고 싶지만 서 있을 정도로 몸을 지탱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하니. 자동자전거를 타는 게 고작인 나한테 재활 치료실의 기구는 모두그림의 떡이다. 언제쯤 내 발로 걸어서 비곳을나서게 될지 갈길이 너무 까마득하다.
이제 와서 그만 퇴원하라니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머물고는 있으나 욕창으로 인해 변변한 재활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병원 규정 상 또 다른 곳을 찾아 나가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냥 집으로 가서 편안하게 삶을 마치고 싶은데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며 자꾸만 요양병원을 권고하는 건 또 뭔가. 목구멍에 기관삽입만 하지 않았어도 자식들은 내 바람대로 집으로 데려갈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 권고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누가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몇 년 전에 내 발로 이 종합병원을 찾아와서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분명히 작성해 놨는데 효력이 발생하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의식이 또렷하고 호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의사의 말이 내 의향서 작성보다 더 중요한 건지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