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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Mar 05. 2023

내 나이 아흔입니다만

이제 그만 퇴원하세요


   나는 올해로 아흔 살이다. 입원 전에는 태블릿으로 자식들과 카톡 문자를 하며 소통했고, 유튜브를 보며 세상과 소통했다. 한 마디로 신식 노인인 셈이다.


침대에 누운 채로 집에 있는 아내와 화상통화를 하노라면 눈물이 난다. ‘웃어야지’하고 독하게 마음먹는데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걸 어쩌랴. 내가 늘 앉아 있던 소파와 반쯤 열린 안방으로 침대가 슬몃 보이는데 눈물이 안 나고 배길 장사가 어디 있을까. 집 떠나온 지 벌써 넉 달 째라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전화기 속 아내가 손을 흔들며 자꾸 다리운동하라고 한다. ‘알았어. 건강해’라고 답하지만 목에 뚫린 구멍으로 소리가 다 새나간다. 결국 작은 칠판 위에 내 마음을 글자로 표현할 수밖에.

“건강하게 잘살아. 밥 잘 먹고.”

해줄 수 있는 말은 겨우 이것뿐이지만 절실한 바람이다.


얼마 전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다. 발을 씻기 위해 공기 주입 특수스타킹을 벗었는데 걸음이 쿵 내려앉았다. 뼈마디가 그대로 만져지는 나무도막 같은 게 내 다리라니.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뼈를 감쌌던 근육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이내 목구멍으로 원통함까지 기어 올라와 눈물이 핑 돌았다. 가느다랗게 변한 다리를 보면서 체념했다. 아, 이제 하늘로 가야 할 때가 왔구나.

그래서 칠판에 이렇게 써놓았다.

'이제 아버지한테 갈 거다. 나는 힘들어서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


뼈대 굵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체격으로는 어디서나 군계일학이었던 나. 병원 침상에 누워 있다 보니 별 볼일이 없어졌다. 젊었을 때는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큰 키가 이제 그 효력을 상실했으니 인생 총량의 법칙이다. 간병사들도 은근히 작은 몸집을 가진 환자를 선호하는 눈치다. 노골적으로 키와 몸무게를 따지며 돈을 더 달라는 요구도 한다. 욕창 방지를 위해 내 몸을 뒤집으려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그 마음도 한편 이해된다. 간호사와 간병사, 젊은 이송요원들의 수고로움에 보답하려고 최대한 표정을 밝게 하면서 미소 짓곤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미소 천사 할아버지’ 또는 ‘귀여운 할아버지’다. 인생 끄트머리에 와서 참 좋은 이름을 얻은 것 같다.

  

병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우울한 기운이 덮여 있는 환자들한테는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건네는 인사 한 마디, 표정 하나가 의기소침을 잠재우고 기를 살려주기 때문이다.

“귀여운 할아버지, 오늘도 말끔하시네요.”


나는 지금껏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심장 진료차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는 받고 있었지만 멀쩡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어 당당했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돈’, ‘절약’이라는 두 낱말로 가득 찼었다.

그동안 지 못 하고 입지 못하면서 모은 돈이 현재는 병원비로 다 쓰이고 있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 보니 돈보다 건강이 중요했다는 걸 깨닫고 있다. 

'젊었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늙으면 건강을 위해 돈을 쓴다'말이 딱 들어맞는다.


현재 내 꿈은 스스로 걷는 것이다. 워커를 잡고 비틀거려서라도 내 오물을 내가 처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로 돌아가며 간병을 하고, 집에 있는 제 어머니를 챙기는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을 꼭 이루고 싶다. 화장실 출입을 스스로 하지 못하면 자식들한테 커다란 짐덩어리가 될 텐데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다.


어젯밤 병실 복도에 모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열차 사고에 젊은 사람은 죽고, 80대 노인이 살아났다고 열을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끌끌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고, 젊은이 대신 노인이 갔어야지. “

목숨이 소중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 '대신'이라는 말로써 노인의 죽음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어찌 내 힘으로 명을 재단할 수 있으랴.


오늘도 간병하는 딸이 집사람과 카톡을 연결시켜 주었다.

“아버지, 지금 운동 열심히 하고 계셔요.”

집사람이 조그맣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걷지 못한다면 어쩐다니. 너희들 고생시켜서"

급속도로 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요양원 알아봐라.”

요. 양. 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글자가 내 앞으로 꾸역꾸역 다가섰다. 집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엄마. 일단 재활 시작했으니 희망을 가져야지요."

앙상한 무릎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재활치료를 받으면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그런 행운을 가져다줄 정도로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해왔을까?

다시 이어지는 집사람 말에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알아봐. 아버지랑 둘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요양원을.”

나 혼자만 보내지는 않을 모양이다. 시집와서 지금껏 해준 것 하나 없는데 끝까지 나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고맙다. 걷지도 못하는 이 노구를 위해 자나 깨나 걱정해 주는 집사람한테 나는 왜 그리 지독한 구두쇠였는지.


엊그제 집사람의 생일날이라 칠판에 편지를 써서 보여주었다. 평생 생일 상 한 번 차려주지 않은 못남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혀 가족들에게 전송되었다.

“엄마, 요양원은 무슨? 재활병원에서 열심히 운동하면 걸을 수 있어요.”

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걷지 못하는 노인이 재활병동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제 발로 성큼 걸어 나왔다고 한다.  내일부터는 자동자전거 타기와 물리치료, 연하 장애 치료, 욕창 치료에 열성을 보여야겠다. 물리치료사의 말에 잘 따르고 더 고분고분하게 행동해야지. 생명을 더 연장시키려는 욕심이 아니라 당장 하루를 살아도 내 힘으로 걷기 위함이다.


옆 병상에 있던 뇌졸중 노인이 몸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퇴원했다. 워커에 몸을 의지하며 절름 절름 병실을 나서는 모습에 울컥했다. 얼마나 열심히 운동해야 저런 결을 맺게 되는지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창밖을 볼 수 있도록 딸이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금방이라도 환자가 들어온다면 다시 사방이 커튼으로 둘러쳐질 테지만 잠깐이나마 속이 뻥 뚫렸다. 신촌 거리를 내려다보는 까만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내렸다. 그 빛을 따라 젊은이들이 내딛는 경쾌한 발걸음을 상상해 본다. 내게도 분명 빛나는 젊은 시절이 있었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신촌 거리를 누빈 적이 있었지.


간호사들이 왔다 갔다 분주하게 침구 정리하는 걸 보니 벌써 신입 환자가 들어오려나 보다. 신촌 야경을 좀 더 오래 즐겨보려나 했더니 아쉽게 됐네. 그나저나 이번엔 어떤 환자가 내 옆 침상에 눕게 될지 은근히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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