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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Jul 01. 2021

종종 엄마와 점심을 사 먹으러 나간다.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바꾸기

일상은 희로애락보다 무미건조에 가깝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늘은 어제처럼 굴러간다. 사실 그 특별한 일도 생일을 포함해 일 년에 몇 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일부러 '특별한 날'을 만든다. 매달 14일에 있는 XX데이, 연인과의 기념일, N주년 등 그 방법은 여러 가지다. 별거 아닌 날이지만 일부러라도 특별한 날을 만들면, 그 전날부터 작은 설렘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날이 되면 똑같은 출근길도 다르게 보인다.


기념일로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바꾸는 것처럼, 엄마와 나는 종종 점심에 외식을 하며 일상을 특별하게 보낸다.




외식을 한다고 엄마와 근사한 곳에 가는 것은 아니다.



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칼국수 노포 집에 간다. 메뉴도 특별한 것 없이 칼국수와 수제비가 전부다. 찾아가는 가게가 먼 것도 아니고, 먹는데 오래 걸리는 메뉴도 아니라 식사는 보통 3~40분이면 끝난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바로 그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사 먹기도 한다.



때때로 차를 타고 대야미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이미 지역 맛집으로 유명해진 보리밥 집에 가서 보리밥과 주꾸미 볶음을 하나 시킨다. 이 역시 먹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짧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공짜 커피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를 하나 뽑고, 2층으로 올라가 저수지를 감상하고 내려온다. 종종 돌아오는 길에 명장이 한다는 유명한 빵집에 들려 공갈빵 하나를 사 오기도 한다.




자주 가는 외식 장소들이 집에서 20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지만, 엄마는 평소보다 조금 더 꾸미고 나가신다. 평소에는 집안일과 손주 육아에 바쁘셔서 최대한 편한 옷을 입고 계신다. 하지만 외식하러 나가실 때는 동대문에서 사 왔던 옷과 신발을 꺼내 입으신다.


엄마에게도 일상은 무미건조할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손주 등원과 장보기에, 집에서 점심을 드시는 아버지를 위한 점심 준비에, 밀렸던 집안일에, 오후는 손주 육아에, 엄마의 하루는 쉴 새 없이 쳇바귀처럼 굴러간다. 아니, 어쩌면 엄마의 일상은 나보다 더 무미건조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여자 친구를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일상에 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요새 친구들을 만나는 경우는 친구 자식 결혼식이나, 친구 부모님 장례식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는 친구들을 자주 볼 기회가 없어, 엄마에게 특별한 날은 만드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무미건조한 엄마의 일상에서 나와 함께 하는 외식은, 엄마의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바꿔주는, 작은 이벤트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엄마는 엄마대로, 또 나는 나대로 각자의 일상이 있기 때문에 항상 외식을 하러 나가지는 못 하겠지만, 시간 여유가 되는대로 외식을 하며 나와 엄마의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바꿔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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