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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17. 2020

B급 박사의 영국 유학기

프롤로그

  나는 98학번이다. IMF로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그 여파를 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그 세대다. 덕분에 당시만 해도 대학가에 있었다는 ‘대학가의 로망’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학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다. 수필가로도 유명하신 고 장영희 교수님이 학부시절 지도교수님이셨다.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늘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외에도 제자들을 마치 제 자식인양 아끼시고 사랑해 주시던 교수님들로부터 말 그대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나도 저런 분들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이 스멀스멀 생겼던 것 같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하고, 다시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교수가 되려면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조건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학점으로, 이 영어실력으로, 유학은..... 먼 나라 얘기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4학년 때 용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유학의 꿈은 잠시 접은 채 모교 경영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대학원 졸업이 한 학기 남았을 때쯤, 나를 받아줄 직장을 찾아야 했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고 내가 전공한 재무관리를 공부하러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괴물 같은 스펙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지원한 몇 군데 회사 중 나를 불쌍히 여겨준 회사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넙죽 절을 하며, 유학이라는 꿈은 마음속 저편으로 잠시 던져두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한 지 9년이 흘렀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회사에서 고생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MBA를 보내주는 학술연수 프로그램에 갑자기 ‘박사 학위’ 과정이 추가되었다. 연수 프로그램 설명서를 보는 순간, 맘 속 한편에 내팽개친  ‘유학’이라는 꿈이 갑자기 정중앙으로 날아와 꽂혔다. 어쩌면, 나도 그 유학이라는 걸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싶었다.


  턱걸이로 겨우 선발된 ‘박사 학위 유학생’이 되어 박사 과정 지원을 하려고 알아보니, 세상은 넓고 인재는 정말 정말 많았다. 소위 미국의 탑스쿨이라는 곳에 지원하는 “국가대표급” 학생들의 스펙은 탈지구인급이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B급”이구나. 과연, 나는 합격증이라는 걸 받아볼 수는 있는 걸까?


  결국, 나는 지원서를 쓰면서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영국에 있는 작은 도시 Bath에 있는 University of Bath (Bath는 지명으로 목욕을 뜻하는 영어 단어 bath의 기원이 되었다. 많은 지인들이 ‘목욕 대학’ 이라 부른다. 저자 주)의 경제학 박사 과정에 진학하게 되었고 2019년에 드디어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목욕대학 로고 (험상궂은 목욕탕 주인아저씨 얼굴)


  학위를 받고 다시 회사에 돌아와서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토록 원하던 유학을 가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대표급” 스펙은 아니지만, 뭔가에 이끌려 박사 과정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박사 학위 과정을 준비하고 또 실제 과정을 밟아나가면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의 경험들을 나누고 싶다. 또, 나처럼 “B급 박사”가 되더라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면 무엇을 얻게 되는지, 그리고 학위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추구해야 하는지 내가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는 선진국 사례 중 많은 것들을 미국 중심으로 수용하는 한국 사회에 미국 외에 다른 곳에도 배우고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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