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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Oct 06. 2022

카디프, 이방인의 따뜻한 환영

CARDIFF in UK - 눈감으면 영국

영국에서 크고 작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언제나 떠나오고 떠나가는 사람이 무수히 많았다. 어학연수를 하러 온 학생들, 워킹홀리데이로 일을 하러 온 청년들, 영국 회사에 취직되어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 저마다의 꿈을 찾아 영국을 찾았고 다시 또 꿈을 향해 자신의 길로 떠났다.      



그 인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랏메이트들이었다. 서로 다른 취향과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지만, 우연히 같은 집에 살게 된 사람들. 우리는 한 부엌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요리를 했고, 매일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어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고, 고기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카디프로 떠나게 된 것도 플랏메이트로 만난 친구 덕분이었다. 3개월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던 현이는 여행을 좋아했고 요리도 잘했다. 연어장을 만들어 옆방 친구들에게 맛 보여 주었고, 추진력을 발휘해 플랏메이트들과 여행도 계획했다. 그야말로 플랏의 든든한 분위기 메이커인 셈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현이도 한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곤 떠나기 전 영국 일주를 떠나리란 야심 찬 계획을 알려주었다. 현이가 갈 도시들을 쭉 듣다가 유독 한 도시에 호기심이 생겼는데, 바로 카디프였다. 잘 알지 못하는 곳이기에 더욱 끌렸다. 웨일스의 수도라는 카디프. 그 특유의 분위기는 어떨까? 미지의 세계를 향한 궁금증은 나를 금세 그곳으로 데려다주었다.       


*

카디프에서 나를 먼저 반겨준 것은 붉은 용이 꿈틀거리는 웨일스의 깃발이었다. 웨일스의 상징인 이 깃발은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에 나오는 붉은 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신화에서 켈트족의 수호신인 붉은 용은 앵글로색슨족을 빗댄 하얀 용과의 대결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런 만큼 이 붉은 용은 웨일스 사람들에게 큰 상징이었다.      



카디프성과 세인트 메리 스트리트 등 도심 어디를 가든 붉은 용을 품은 웨일스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특히 도심의 중심에 자리한 카디프성은 투박하지만 견고한 자태로 카디프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성은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1세기 로마인에 의해 지어졌고, 5세기까지 로마인의 요새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1세기 노르만인들에 의해 토대를 굳건히 다졌다. 우뚝 선 노먼 요새와 허물어진 벽들, 곳곳에 세월의 흔적과 웨일스의 역사가 느껴졌다. 그리고 카디프성의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붉은 용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웨일스 깃발을 따라 시내로 들어서자, 비밀스러운 아케이드가 보였다. 카디프에는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것을 포함해 일곱 개의 아케이드가 있었다. 그중 제일 역사가 깊은 것은 1858년 문을 연 로열 아케이드. 고풍스러운 빅토리아와 에드워드 시대 건축 양식의 지붕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도심의 중심에 가로와 세로로 뻗어있는 아케이드들은 하나의 미로처럼 여행자를 맞이했다. 아케이드마다 곳곳에 옷가게, 카페, 공방, 음식점 등 개성 있는 상점들이 포진되어 있어, 하나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

아이러니하게도 웨일스의 뜻은 ‘이방인’이라고 했다.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 섬에서 쫓아낸 브리튼 인들을 이방인이라 부른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따지고 보면 브리튼 섬의 원주민이 웨일스의 조상인 켈트족이었고, 이들을 밀어낸 앵글로색슨족이 실제 이방인이었다.       



웨일스는 크기는 작지만, 기원전 10세기부터 브리튼 섬의 주인이었던 만큼, 독자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고대 켈트어에 뿌리를 둔 독자적인 언어, 웨일스어도 그중 하나다. 카디프는 영어와 웨일스어를 공용으로 쓰고 있지만, 북부 지역으로 가면 웨일스어로만 소통하는 지역도 있단다. 표지판에도 영어와 함께 웨일스어가 적혀 있어, 영국인 듯 영국 아닌 독특한 분위가 전해졌다.      



흥미로운 건, 잉글랜드인들이 이름 붙인 웨일스는 ‘이방인’이란 뜻이지만, 웨일스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큼뤼(Cymru)라고 불렀다. 웨일스어로 ‘동포’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웨일스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조차 동포를 대하듯 친절했다.      


카디프에서 하룻밤을 보낸 게스트하우스의 주인도 카디프 토박이였다. 밀레니엄 스타디움 건너편에 있는 예쁜 주택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는데, 남매가 이를 관리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남매는 카디프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었고, 맛있는 쿠키도 내어주었다. 그리고 오늘 예약을 취소한 여행자가 있다며, 4인실 방을 혼자 쓰라고 배려해주었다. 이곳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와는 달리 영국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었다. 1층 휴게실에서는 검은 고양이가 야옹 하고 나를 반겼는데, 이방인의 등장에도 낯가림 없이 내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웨일스는 고양이마저 친절한 표정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펍에서도 친근한 웨일스 토박이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영국의 펍은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하나의 문화와도 같았다. 특히 앉아 있지 않고 일어 선 채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묵직한 파인트 잔을 들고 친구 혹은 오늘 처음 보는 이와도 거리낌 없이 담소를 나누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카디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디프의 작은 펍에서 혼자 맥주를 즐기고 있던 할아버지는 낯선 동양인이 등장하자 호기심에 말을 걸어왔다. 강한 웨일스 악센트가 이상적인 할아버지는 한국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며, 카디프의 명소들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카디프에 왔으니 나 또한 웨일스의 동포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대접해 주었다.   

                 


잠시 후, 옆 테이블에 있던 커플들도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2명이었던 테이블에는 곧 4명이 모였고, 또다시 6명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낯설지 않고,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카디프는 그런 곳이었다. 이방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활짝 열린 도시. 낯선 이도 따스하게 환영해주는 마음들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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