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 Kyron Jan 22. 2022

지우개와 화이트

박박 문질러 지웠다

내가 온 힘을 쏟아 내린 글씨들을

이제 볼 수 없어 지우개로 지웠다


지직 종이가 찢어졌다

아무리 지워도 글씨의 흔적이 남아

계속 문질렀을 분인데 찢어지고 말았다


네 모습을 묘사한 글씨도

널 바라보는 나를 표현한 어구도

네게 사랑을 고백한 편지도

남김없이 지우려 했지만

흔적은 그대로

종이만 찢어졌다


할 수 없이 딸깍 흔들었다

내 힘으로 네게 남긴 말들을 지우지 못해

화이트를 꺼내들었다

음푹 파인 흔적들 위로

하얀 액체가 채워져나간다


이젠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웠다는 기록만 남을 뿐

내가 네게 어떤 글을 남겼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이제 나만 잊으면 된다

이제 나만 잊으면 된다


난 어쩔 수 없이 화이트 뚜껑을 열고

내 머리 위로 부어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학교가 싫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