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 가장 많은 돈을 쓴 나의 취미는 바로 '꽃'이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2년 동안 배우는데 300만 원은 쓰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어미어마한 돈이었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콜렉터처럼 꽤 많은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때는 자격증들이 모여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직업으로 연결되는 라이센스를 땄어야 했다 싶은 후회가 있지만-새로운 것들을 공부해 자격증까지 따는 과정에 집착했다.
자격증을 따는 과정은 스스로를 격려하는 시간이었고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한 장의 증서는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자격증이란 현실의 불안감을 감소시켜 주는 진통제와 같았다. 그래서 한 가지의 전문성에 목표를 갖고 자격증 획득에 임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 관심 있는 분야의 자격증을 따곤 했다. 그 과정 속에서 획득한 나의 유일한 국가기술자격증이 있다. 바로 ‘화훼장식기능사’이다. 꽃이 좋아서 취미로 배우게 됐고, 배우다 보니 이왕이면 국가 자격증까지 따보자는 마음에 이르렀다.
꽃을 무용지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나도 한 때 꽃선물을 아깝다 여기는 사람이었다. 꽃 선물에 대해 ‘먹을 수도 없는 거, 돈으로 주는 게 더 좋지’란 생각을 갖던 20대의 나에게 꽃을 주는 남자가 나타났다. 당시 나에게 호감을 나타냈던 아는 선배-그 선배는 지금 남편이 되었다-는 나에게 데이트를 제안하였고,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지하철 락커로 몰래 숨겨뒀던 꽃다발을 건넸다.
그렇게 예쁜 꽃다발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화사한 꽃다발을 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왠지 모르게 남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이 꽃다발 하나로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과 대접을 받는 사람이라는 증표가 된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남자친구가 된 그 아는 선배는 기념일마다 꽃을 건넸고 덕분에 꽃은 나에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아는 선배에게 처음 받았던 꽃다발
좋은 기억 때문인지 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회사에서 가까운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꽃을 배우기 시작했다. 백화점에는 꽤 많은 종류의 꽃 수업이 있었는데 기초부터 시작하여 이 수업 저 수업 옮겨가며 약 9개월의 수업을 들었다. 배우다 보니 백화점 수업만으론 부족함이 느껴져 자격증 과정을 찾게 되었고, 전문적인 꽃 학원 두 곳을 거쳐 시험을 준비하고 최종적으로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갖게 됐다.
당시 회사원이었던 나는 퇴근 후 매일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듣는 열정을 발휘했다. 시험을 위해 플로럴폼에 반복해서 꽃을 꽂고 빼고, 꽃줄기에 철사를 감고 지테이프를 두르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다. (현재는 시험 과정이 바뀐 걸로 알고 있다) 시험 준비를 위해 개인적으로 샀던 꽃만 해도 몇 십만 원 치가 됐다. 시험 준비를 왜 하느냐는 주변 사람의 물음에 화훼장식기능사를 따면 나중에 더 나이 들어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식당이 아니라 꽃집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농담을 섞은 나의 바람을 말하곤 했다.
수업을 통해 만들었던 와인플라워박스 / 자격증 시험을 위하여 연습했던 꽃꽂이
꽃을 배우며 꽃으로 일하는 삶을 동경했지만 한편으로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며 꽃으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깨닫게 됐다. 전문반에서 꽃을 배우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만의 꽃집을 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준비한다. 지금이야 예약제로 운영하는 꽃집도 많지만 당시에는 꽃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수 꽃을 재고로 안고 가야 하는 시장 구조였고, 개인적으로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다루는 일은 상상과 같이 우아한 일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자격증을 취하기 위해선 기대 수익보다 투입되는 비용이 더 컸다. 꽃에 대한 감각을 올리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그 과정은 수업만 들어도 몇 백만 원대였고, 유럽에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결국 창업으로 이어질만한 확신과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손에서 꽃을 놓게 됐다.
그때 딴 자격증은 내가 한 때 이렇게나 꽃을 좋아했다는 증거로만 남아있다. 간혹 주변에 꽃을 선물할 일이 생기면 꽃가게가 아닌 꽃시장에 가서 내가 원하는 조합으로 풍성한 꽃다발을 만드는데 배웠던 기술을 써먹을 뿐이다.
꽃을 배웠던 시간은 행복했다. 나는 꽃의 줄기에 달린 잎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마치 나물을 다듬는 것과 같은 느낌인데, 나물을 다듬는 건 노동 같지만 꽃을 다듬는 건 마음을 다듬는 느낌이 든다. 꽃으로 인생 반전을 꿈꿨으나 이제는 우아한 취미 정도가 다이다.
꽃으로 유학을 가는 방법도 찾아보고, 꽃집 창업과 관련한 정보도 조사했지만 결국 나는 직장인으로 남는 길을 선택했다. 현재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쓴 취미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효율적인 관점에서 보면 쓸모없는 일 같지만 꽃을 배우러 다녔던 그 순간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또 좋아하는 게 돈이 되지 못한 나의 취미 한 페이지를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