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녹여보는 편집자의 시선
▶책을 읽게 된 계기
그림책 입문자였던 시기 최혜진 작가의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를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각 장마다 펼쳐지는 그림책에 대한 작가만의 해석과 매력적인 필력에 반해 이후 최혜진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에디토리얼 씽킹』 은 작가의 가장 최근작으로 20년 차 잡지 에디터로서 에디터의 정의와 가치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그간 쌓은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얻고 싶었던 것
최혜진 작가는 지금까지 주로 그림과 그림책에 관련된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에디토리얼 씽킹』은 이전의 책들과 달리 20년 차 에디터로서 에디터의 전문성과 가치에 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른 분야에 대해 풀어내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과 시선을 나의 삶에 적용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를 이끈 포인트
책에서 언급하는 에디터로서의 사고는 내가 지금 하는 일과 맞닿은 부분이 많았다. 책 속의 에디팅 기술은 글을 편집하는 일뿐만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 적용해도 매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둔 것은 '내가 끌리는가'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정제하여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정리하여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내가 제시한 언어들로 타인을 설득해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전개를 위해 내가 앞으로 한 번 더 생각해야겠다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편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이야기로 바꾸고,
사실에서 통찰을 끌어내 행위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에는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에디토리얼 씽킹』 최혜진
책에서 제시하는 '에디토리얼 씽킹'은 총 12가지다.
재료 수집 : 가능성을 품은 재료 찾고 모으기
연상 : 새로운 연결 가능성 높이기
범주화 : 유사성과 연관성 찾기
관계와 간격 : 목적에 맞게 적정 거리 조절하기
레퍼런스 : 새로움을 만드는 재배치, 재맥락화
컨셉 : 인식과 포지셔닝을 위한 뾰족한 차별점
요점 : 핵심을 알아보는 눈
프레임 : 입장과 관점 정하고 드러내기
객관성과 주관성 : 주관적인 것의 힘
생략 : 군더더기를 알아보고 배제하는 판단력
질문 : 좋은 질문 만드는 법
시각 재료 : 메시지와 비주얼 사이의 거리 감각
1. 능동적 해석자가 되기 위한 '에디토리얼 씽킹'
『에디토리얼 씽킹』은 잡지 편집자로서 작가의 노하우를 정리한 책이지만 편집의 기술은 잡지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고를 하는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설득력은 에디토리얼 씽킹의 중요한 실용적 가치이지만, 내가 업에 대해 가장 자긍심을 느끼는 부분은 에디토리얼 씽킹이 우리를 능동적 해석자로 만들어준다는 데에 있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바깥의 자극, 정보, 현상과 스스로를 분리시키디 않고,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 과정은 높은 수준의 관여와 복잡한 사고 과정을 필요로 한다. (p.37)
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이런 수동적인 자세가 나를 정체시키는 원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책을 읽을 때면 내 안의 경험과 연결해 의문을 가지려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 글도 나의 사고를 내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함이다. 이런 일상적인 행위도 에디팅의 자세를 적용 시키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2. 무의식적 사고 흐름에 이름을 붙이다
현재 나는 그림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을 준비할 때면 그간 내가 미리 정리해 둔 분류 혹은 그 무렵 마음에 들어왔던 책들을 중심으로 계획안을 짠다. 책들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이를 연결시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나에겐 즐거운 시간인데 『에디토리얼 씽킹』을 통해 내가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과정들에 각각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러 책을 읽고 태그 달기(재료 수집) ▶책 속 이야기들의 의미를 내 방식으로 해석하기(연상)▶주제가 비슷한 혹은 뜻이 통하는 것들끼리 묶어보기(범주화)▶ 여러 책을 연결하여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이해 가능한 선을 조절하기(관계와 관격)▶관련 없다고 생각된 것들의 새로운 연결성을 찾아내기(레퍼런스)▶정해진 내용들을 통해 전체 주제 뽑아내기(컨셉)▶많은 생각 중 중요한 것을 뽑아내기(요점)▶내가 정리한 주관적인 생각을 타인을 납득시킬만한 전개로 펼치기(객관성과 주관성-주관적인 것의 힘)▶욕심을 버리고 뺄 건 빼기(생략)▶생각을 나눌 발문 정하기(질문)▶효과적인 PPT 만들기(시각 재료)
내가 하나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머 속으로 흘러가는 사고의 과정이 에디터의 작업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게 반가웠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생략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 후 일을 하든, 친구와 대화하든 일과 중 일어나는 모든 일에 더하는 것 보다 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더불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우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었다.
3. 마음속 고민을 해결해 준 문장들
문과 출신인 나는 이성적인 논리에 반박하는 힘이 부족하다. 내 생각과 마음은 객관적 지표와 다른 방향으로 끌리고, 이성적인 논리의 전개가 완전한 답은 아닌 것 같지만 그간 내 생각도 맞다고 확신할 논리가 부족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객관이라는 단어 앞에서 늘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객관이 티 없이 완전무결한 세계라면 주관은 허술하고 유아적인 주장으로 점철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당신의 주관적인 판단이고요"라는 문장 앞에서 움찔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관이라는 단어에 부정적 뉘앙스가 이미 스며 있는 것이다. 반면 객관은 어떤가? "객관적인 데이터를 볼 때…"로 문장을 시작하면 그 내용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객관은 옮고 정당한 느낌을 준다. (p.172)
객관은 완전무결한 절대 진리가 아니라 동시대 다수가 합의한 임의적 약속이다. 어떤 생각이 객관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것을 수용한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의미다. (중략) 결국 설득의 문제다. 주관은 열등하고 객관은 우등한 것이 아니라 모든 건 주관의 산물인데, 어떤 주관은 여러 이유에서 설득력을 가져 보편의 차원에 자리 잡는다. 냉철하게 숫자를 보는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경영자의 책상 위로 온갖 곳에서 기록한 데이터가 쌓인다. 숫자들은 중립적이지만, 그중 특정 지표에 '주목'하고, 경영 여건에 대한 '판단'을 내려 '전략'을 세우는 경영자는 결국 자신의 주관을 바탕으로 일한다. 자기 버전의 현실 인식 프레임을 제시하고 함께 일하는 구성원의 합의를 최대한 모으는 것이다. 편집도 그렇다. 주관적 관점으로 정리한 결과물을 타인에게 보이고 합의를 모은다. 세상을 이렇게 보기 시작한 뒤로 나는 이제 객관이라는 단어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다. 내 관점, 믿음, 판단을 신뢰하고 그것을 나 아닌 타인이 납득할 수 있는 모양새로 만들어내려고 애쓸 뿐이다.(p.174-175)
몇 년간 내가 하는 일이 오답인 것 같고 쓸모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 주변의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실리를 따라고 조언하지만 결국 내 마음은 비논리적이더라도 마음이 편한 곳으로 향했다. 객관적인 수치로는 가치 없는 일을 할 때 내가 의미를 갖고 행하면 그 또한 답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됐다.
▶책을 읽고 내가 얻은 것
책을 읽은 후 내가 하는 모든 글과 관련된 일들을 편집자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중심이 아닌 상대방이 중심인 사고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내가 쓴 글과 전개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떤 면에서 공감하냐에 따라 나의 주관성이 보편성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 가치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든 내가 나의 편집자란 생각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며 스스로 검열하고 방향을 정할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콘텐츠를 지탱하는 힘은 타인에 대한 상상에서 온다. 수용자에게 어떤 첫인상으로 다가갈지, 그들은 어느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이 콘텐츠를 선택할지, 보고 난 뒤에 무엇이 마음에 남을지 상상한 만큼 콘텐츠에 힘이 생긴다. (p.143)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 편집자의 기술이 궁금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