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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일상] 벚꽃 드라이브

벚꽃길에 울려 퍼진 바흐의 마태수난곡

by 겨울햇살 Mar 26. 2025

 


 벚꽃이 만개한 초 사월의 봄, 긴장된 마음으로 운전대에 손을 올렸다. 부산에서 통영까지 백이십 킬로미터, 두 시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팔 년간의 장롱면허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운전한 지 사 년 차, 이번 통영행은 나의 운전 역사상 가장 장거리이자 장시간 운전이었다. 개화의 절정을 맞은 연분홍 벚나무들이 황홀하게 거리를 수놓았고, 낭만적인 풍경과 대조적인 묵직한 음률의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차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겨울 통영국제음악제의 선예매가 곧 시작될 거라며 함께 가지 않겠냐는 친구의 연락에 마음이 동했다. 한때 클래식에 빠져 매달 공연에 갈 정도로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늘어나며 좋아하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나의 시간을 선점했다. 특히 아이를 낳은 후 세상의 중심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는 여유가 생기더라도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수험생의 삶과 닮았다. 다만 수험생의 수고로움은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모두 인정하지만, 초보 엄마의 고달픔은 당연하다 여기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힘든 내 모습이 유별난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며 매일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의무감을 내려놓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없었다. 육아에 전념하며 놓게 된 사회적 경력에 대한 불안감을 품은 채, 아이가 집에 없는 시간 동안 살림과 육아에 관련된 잡다한 일을 처리한 후 한숨 돌리면 하원 시간이었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할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사용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 쉽지 않았다. 육아보다 더 길었던 사회생활이 익숙한 탓에 고정적인 수입 없이 집에서 아이만 보는 내 모습이 때론 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고 난 후 프리랜서로 약간의 수입이 생겼을 때도 내 정체성은 항상 모호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사회생활을 한 만큼 엄마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자 삶의 저울은 서서히 균형을 맞춰갔다. 엄마의 역할로 가득 찬 일상의 결과가 경제적 가치로는 환산되지 않음에 허무함을 느끼며 이 삶이 나에게 충분한지 쉼 없이 물었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책을 읽고, 마음을 글로 정리하며 서서히 엄마라는 역할의 반대편에 있던 나로서의 삶을 다질 수 있었다. 그 무렵 결정한 통영행은 새로운 시작의 이정표였다.     

 

 친구가 보내온 공연 일정을 훑어보니 독일 프라이부르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눈에 띄었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고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살면서 마태수난곡을 실제로 들어보는 일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닌 것 같았다. 한정된 자원이 욕망을 불러일으키듯 자주 무대에 오르는 곡이 아니라는 희소성은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예매를 완료한 후 틈이 날 때마다 마태 수난곡을 듣기 시작했다. 마태 수난곡은 성경의 마태복음을 바탕으로 만든 곡으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의 배신으로 맞이한 예수가 죽음을 맞이하는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 마냥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률도 아니고 가사가 담은 내용도 어려웠지만, 음악을 들으며 통영행을 준비하는 내 마음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제 제법 운전이 익숙해졌지만 백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를 혼자 운전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십 대 끝자락에 딴 면허가 빛을 발한 건 장롱면허를 탈출한 삼십 대 중반을 맞이하고부터다. 단언컨대 나에겐 아이를 낳은 일보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한 일이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운전을 시작한 후 아이를 위한 장소에 방문하거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한 수업을 듣기 위해 길을 오갔다. 언제나 의무와 불안 해소라는 목적이 있었던 운전과 달리 이번 통영행은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운전하는 시간이었다. 


 친구와 나는 다른 지역에 살았기에 각자 운전해서 공연 전 통영국제음악당 옆에 있는 숙소에서 만나기로 정했다. 이십 대 시절 뚜벅이로 함께 여행을 다니는 학생이었던 우리가 아이를 낳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클래식이라는 공통분모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참 근사했다. 남편과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온 두 명의 엄마는 그날 밤 독일에서 건너온 장장 세 시간의 음악에 흠뻑 빠졌고, 여전히 철없던 대학 시절처럼 통닭을 야식으로 먹었으며, 밤새도록 수다를 떤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마태 수난곡을 들을 때면 그 봄이 떠오른다. 운전대의 긴장감, 그 긴장을 녹여준 흩날리던 벚꽃, 공연장을 채우던 고악기의 따뜻한 선율과 힘 있는 성악가의 목소리, 세 시간의 공연 후 마주한 밤의 차가운 공기까지. 의무감에서 벗어나 오로지 즐거움을 목적으로 삼았던 시간을 통해 그간 의문을 품어왔던 나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새로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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