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형이 태어나기도 전에. 곧 태어날 아들을 찍어주기 위해 해외 여행을 다녀온 회사 동료에게 산 필름 카메라가 있다. 아빠는 사진을 곧 잘 찍었는데, 중학교를 들어간 즈음부터는 사진 찍는 아버지를 쉽게 보지 못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졌거나. 사진에 흥미를 잃었거나. 혹은 필름 값도 아껴야 할 시기였거나, 이유는 모르지만 카메라는 그렇게 장롱으로 들어간다. 장롱 카메라라는 관습적인 표현이 아닌, 정말로 안방에 있는 장롱. 겨울 옷과 겨울 이불이 가득 차 있는 바로 그 장롱에서 몇년째 나오지 못한다. 학창시절 내내 ‘거기에 필름 카메라가 한대 있었지…’정도로 떠올린다. 딱히 더 궁금한건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복학하고, 사진과 관련된 수업이 있었다. 아무도 DSLR을 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캐논 500D. 좀 더 잘 사는 친구들은 550D를 목에 걸고 캠퍼스를 누리고 다녔다. 우리 과는 영상 디자인학과였고, 캐논 500D부터 FHD 동영상을 지원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조교실에 각종 캠코더를 비치해놨지만, 자신의 카메라를 가진다는게 꽤나 매력적이었나보다. 나도 사놓고 남들 얘기 하듯이 한 이유가, 사실 난 무슨 마음으로 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군중심리도 그렇게 갖고 싶은 것도. 창원까지 사서 직거래를 할 이유가 되진 못했다. 아마, 이렇게까지 기억이 안 나는걸 보면… 정말 진심으로 DSLR이 있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속았나보다. 뭐 100만원짜리 DSLR로 500만원이 넘는 공모전 상금을 탔으니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 이 이야기를 하려던게 아니었는데… 자랑이란 놈은 어찌 이리 눈치도 없이 끼어드는지.
대충 그렇게 사진에 취미를 가지게 됐고, 필름 사진 찍는 재미를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새 필카를 살 정도는 아니었고, 아버지의 카메라를 학교에 가져가서 자랑하는 정도가 딱 좋았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어줍잖은 충고를 할 수 있다면 “야 필카고 지랄이고 가지고 있는 DSLR이나 잘 써라. 노출 3요소 뭔지 좀 외우고 그놈의 번들 렌즈 갖다 버리고 50.8 중고로 8만원도 안 하니까 제발 있는거나 잘 써 임마”라고 하겠지만, 필름 사진 만큼 사진 개뿔도 찍을 줄 모르는 학생에게 겉멋을 심어주는게 없었다. 단지 필름으로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럴싸하다니! 아날로그를 향한 허세는 꽤나 역사가 깊은 마음이었구나.
물론 단순히 필름 카메라라서 좋았던건 아니다.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샀던 카메라. 그걸 아들이 물려 받고, 또 언젠가 태어날 아이한테 물려주고. 그렇게 대를 잇는 유품이 되는 시나리오가 꽤나 매력적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그거 지금 값 어마어마하게 나갈거다”라곤 하셨지만, 아쉽게도 단 돈 7만 4천원이면 살 수 있었고. 하루에도 몇개씩 올라오는 흔해 빠진 카메라였다.
안 찾아본 샘 치고, 장롱에 고이 모셔두기로 한다. 참고로 스트랩은 아빠가 사줬던 기타에 달려 있던 스트랩이다. 이왕 아빠 카메라 물려받은거, 스트랩도 아빠가 사준 스트랩으로 하고 싶었다. 이걸 고이 간직하는 나를 보고 흐뭇해 하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고이 간직하는 내가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