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드너스 트럼프 카드

by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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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DDBBMM으로 이름을 바꾼 스튜디오 김가든을 좋아한다. 캘린더 모양 자, 단편선과 선원들 앨범 커버. 특히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티뮤지엄의 <빛의 순환>은 좋아하다 못해 경이로운데, 우연히 비메오에서 지나가며 본 졸업 작품이 그 시작이었다. 정말 그 센스와 유머감각은 심지어 디자인을 못했어도 팬이 됐을거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런데 이 <가드너스 트럼프 카드>는 다른 의미에서 생각을 하게 해준다. 바로 쓰지 않는 것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해서.


나는 놀랍게도, 구매 후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텀블벅에서 후원으로 구매하여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받자마자 침대 옆 협탁에 고이 모셔놓고. 눈을 뜨자마자 하루 온종일 쳐다보다 잠이 들 때 까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은 그 녀석. 왜 가드너스 카드인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단순히 스튜디오 김가든의 팬이라는 이유로. 처음 살 때 단 한번 꺼내보고, 그대로 집어넣은 다음 다시는 꺼내지 않았던 바로 그 트럼프 카드. 콘텐츠를 촬영하기로 했을 때에 우선적으로 떠올릴 만큼 예쁘고, 좋아했으며. 단 한번도 진심으로 예뻐한적이 없는 바로 그 물건. 그러고보니 나, 이거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반성하며 카드를 열어보았고, 습기 탓인지 제품의 하자인지. 카드는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U자를 그리며 휘어 있었다.


과연 물건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너무 사랑해서, 닳을까봐 꺼내보지도 않고 평생을 포장지 안에 가둬 놓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너무 사랑해서, 시도 때도 없이 꺼내어 만지고 핥고 품에 두고 낡아 빠질 때 까지 어루만지는 사랑도 있다. 무엇이 사랑인가? 같은 사랑이다, 우위를 가릴 수 없다… 라고 하기엔. 내가 아는, 그리고 내가 믿는 스튜디오 김가든은 전자를 위해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트럼프 카드의 형태만을 빌려, 일종의 코스프레 행사를 뛰는 것이 아니다. 단지 패션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포저가 아니다. 포저는 나였다. 스튜디오 김가든을 단지 패션으로 소비했다. 그들의 작업물을 삼류 굿즈로 여기고, 아낀다는 핑계로 테이블 위에 쳐박아 두었다. 그걸 모르고 살았다. 몇년을 함께 했는데도, 모르고 살았다. 이걸 찍어야지 다짐하기 전까지는. 손에서 꺼내보기 전까지는.


정확히 이 이후로 소소하게 변한 습관이 있다. 아끼는 책일수록 책을 접거나, 펼치거나, 메모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띠지는 과감히 버리고, 어떤 때는 커버도 버린다. 너덜너덜할때까지 읽고, 책갈피 없이 접어서 페이지를 표시하고. 조금 심한 경우엔 흙바닥에 올려 놓기도 한다. 왜냐면 나는 두번째 사랑을 선택했으니까. 두번째 사랑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니까. 물건은 그 물건이 만들어진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다른 이유는 모두 필요 없이. 그 편이 가장 아름답다. 사놓고 듣지 않는 음반. 읽지 않는 책. 쓰지 않는 펜. 그리고 놀지 않는 트럼프 카드는 필요하지 않다. 허영심은 쇼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소비함으로서 내 것이 된다. 스튜디오 김가든이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아마도 이게 아니었을까(아님)? 오늘따라 바람이 차다. 물론 방 안에서 창문 닫고 쓰는 중이지만.


https://www.youtube.com/shorts/A5X3f7Q9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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