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찰지고, 입에 잘 감기고, 리듬감이 있는 욕은 힙합 음악의 라임이나 플로우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욕을 들어보고, 또 많은 욕을 내뱉는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 욕이 듣기 좋은. 혹은 뱉기 좋은 욕이었는가? 아니면 단순히 내 더러워진 기분의 배설 방법 중 하나였는가.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욕은 필수 조건이 있다. 첫번째는 그 욕을 듣고 유쾌해져야 할 것. 두번째는 그 욕을 듣고 불쾌해지지 않아야 할 것. 그런 의미에서, <애플 매직 마우스>콘텐츠는 두번째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다.
리듬이나 찰지거나를 떠나서, 내가 뱉은 <병신>이라는 워딩의 문제. <이 지랄>의 경우엔 지금도 종종 사용하고, 오히려 잘 쓴 욕의 예시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만… 병신은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수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좋은 욕이 아니었다. 이때는 그런 인지가 없었다. 욕 감수성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멸칭.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던 시기다. 당장 몇년 전에 썼던 일기만 봐도 ‘무슨 이딴 얘기를 당당하게 하고 있지?’라고 낯뜨거워지곤 한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이딴 얘기를 자기 일기장 뿐 아니라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며 자신의 천박함을 셀프로 박제하고 다니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건 최소한 이렇게 ‘나 이때 천박했음. 알고 있음!’이라고 어필하는 것 뿐이다.
<병신>이라는 욕이 가지는 무게감은 팬 분의 디엠을 통해 인지했다. 나의 글이나 콘텐츠를 즐겨 보지만, <병신>이라는 표현이 나올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고. 처음엔 그게 뭐요. 내가 쓰고 싶어서 쓴다는데. 욕이란게 뭐 사람들 기분 좋아지라고 쓰는건줄 아슈? 따위의 마음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가 <병신>이라 뱉는 순간, 1363개(유튜브 쇼츠만 쳐서)의 댓글들에게 “여러분! 클린한 댓글만 다세요!”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체감한다. 아, 욕이라는건 마치 지금부터 저질이 되어도 괜찮다는 선언과도 같았구나. 깨진 유리창 효과를 위해 스스로 유리를 깨부시는 짓이구나. 왜 이상하게 이 콘텐츠에만 무례한 댓글들이 달리지? 이상할거 없었다. 다 내가 스스로 불러 일으킨 재앙이다.
문제는 콘텐츠에도 소개 했듯이, 애플 매직 마우스를 3개나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딱히 불만 없이 잘 쓰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진심으로 싫어하고 욕하고 싶었던거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냥 이거 까면 콘텐츠가 흥할 것 같은데? 같은 안일한 마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아직까지 나의 흑역사와 같은 콘텐츠로 남아있다. 무언가를 이야기 할 때엔 진심을 담는게 좋다. 거짓으로 얻은 인기는 계속 거짓을 내뱉어야 유지가 된다. 164만 조회수는 달달했고, 나는 두번 다시 콘텐츠에 욕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단거 자주 먹으면 이가 썩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