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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May 30. 2022

미수캄

예전 회사의 팀장이 인스타그램 팔로우해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사실 비공개 계정도 아니고, 내키면 누구나 팔로우 할 수 있다. 딱히 그 팀장이 싫거나 경멸스럽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주제넘게 "아니요 안 하셨어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팔로우를 걸어와서 결국 그 팀장은 싫은 놈이 됐지만, 그렇다고 차단까지 한건 확실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어리숙했다. 아 참 초록우산재단에서 어린- 이라는 표현이 혐오 표현이라고 사용을 자제해달라더라. 미숙했다. 


일단 세가지 과오가 있는데. 먼저 인간 관계에서 상대방을 쉽게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는 몹시 호의적인 멘트에 그따위로 대처한건 성격파탄자라 불리어도 할 말 없는 태도였다. 다년간의 프리랜서 도중에 취업했던 터라 사회생활의 유도리가 부족했다. 이게 과연 겨우 유도리로 치고 넘어갈만한건가 의심이 들지만, 적어도 3년이 지난 지금은 그게 몹시 싸가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말하자면 존중과 배려다.


두번째는 권리와 권한이라 해야 하나. 애초에 "팔로우 해도 되겠니?"는 필요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전 세계 누구나 팔로우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막을 생각도 없다. 좀 재수없는 인간은 숨김 처리하지만 팔로우를 막거나 차단하지는 않는다. 팀장은 나름의 호의를 베풀었고, 나는 그 호의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통제했다. 그럴 수 있는 권리와 권한도 없으면서 불편함을 한껏 드러냈고, 결국 차단 엔딩으로 치닫았다. 이건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 정도의 자유 의지가 아니다. 같은 식당에서 밥 먹어도 되겠니? 아니요 여기서 나가세요 같은 늬앙스다. 이 역시 어리숙. 아니 미숙했다.


마지막을 위해 억지로 짜낸 첫번째와 두번짼데(글이 허술하다고 느꼈다면 정답이다. 뭐든지 세개는 되어야지 의견을 뒷받침하기 좋으니 어떻게든 만들어 낸 이유들이었다), 바야흐로 세번째는 바로 진실성이다. 요컨데 "누가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거야"의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나의 과오며 부끄러운 지난 날이며, 떠올릴때마다 한없이 창피한 기억이다. 


그건 노골적으로 "나는 남 뒷담화나 까고 다니며 저격 글이나 올리는 사람이오!"라고 외친 것과 다름없다. 누군가가 들었을 때 곤란한 말을 뱉고 다니는 삶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루 하루가 꾸며내고 거짓된 나를, 일부 사람들에게만 슬쩍 슬쩍 노출하며 칭찬 받기만을 바라는 삶이다. 그런 삶은 도통 쓸 데가 없다.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게 잘 끓여진 라면만 파는 분식집과 같다. "그 집은 가끔 너무 꼬들하게 끓여서 별로야"소리를 듣더라도, 매번 그때 그때의 라면을 대접하는 사람이고 싶다. 예시가 좀 구린 것 같지만, 매번 좋은 예시만 가져오는 사람보단 가끔 이따위 예시도 가져오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하여 이건 일종의 반성문이 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그 팀장이 했던 짓거리와 언행을 생각하면 싸가지없게 굴었다는 점과 주제 넘게 굴었다는 점은 반성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한데. 그건 너무 결과론적이고. 무엇보다 사람 가려가며 맞춤형 삶을 살아가려던 나는 변명거리가 없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구렸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게 지름길이다. 만에 하나 비공개 계정으로 훔쳐보고 있다면 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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