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한 해를 보낼 지에 대한 다짐과 계획을 떠올려보니 좀처럼 생각이 이어지질 않는다.
비교적 긍정적인 사람인지라, 새해가 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설렘은 있었던 거 같다. 올해 바라고 이루고 싶은 것들, 노력해야 할 부분들을 하나씩 적어보며, 작년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보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곤 했다.
희한하게도 올해에는 그런 생각도 절차도 모두 생략이다. 다이어리는 아직 첫 장을 넘겨보지도 못했고, 새해에는 어떤 다짐들이 있냐는 남편의 물음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남편의 계획을 되물어보는 것으로 회피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훌쩍 보내버린 2022년이 아직 그리워서일까? 어느새 와버린 2023년이 낯설어서일까?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누군가를 보내는 일도, 누군가를 새롭게 맞이하는 일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거 같아요.
새해에 대한 기대도 설렘도 일지 않는 담담한 내 마음이 너무도 수상했다. 최근 집안에 좋은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덤덤한 내 모습에 남편은 좋지 않냐며 연신 물었다.
예전처럼 날아갈 듯이 기쁘고, 발을 동동 구를 만큼의 즐거운 일도, 콩닥콩닥설레는 일도, 이제는 일상 가운데 그런 감정들을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딱히 무엇 때문인지 손꼽을 이유도 없지만, 뭘 해도 감정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나이 탓일 거라고 짐작했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차분하게 삶을 대하는 자세는 어쩌면 내가 오래전부터 원했던 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 무덤덤한 삶을 마주해 보니, 일상 자체도 단조롭게느껴졌다.
정말 내 삶이 단조로웠던 걸까? 아니면 충분히 다이나믹한 삶이었으나단조롭게느껴진걸까? 이 뜨적미지근한 덤덤함은 무료했던 지난 삶으로부터 온 걸까?
갑자기 2022년 한 해가 어땠는지 궁금해져서 무턱대고 ‘2022 하눕의 10대 뉴스’를 작성해 보았다.
“2022 하눕의 10대 뉴스” (댓글에 심약한 관계로 일부만 공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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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갑작스런 브런치 작가 데뷔
9. 생애 첫 수영 수업 등록
10. 글쓰기 공모전 수상
10가지 뉴스거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10가지가 채워질 정도로 풍성하고 감사한 일 투성이었다. 이렇게 좋은 일과 특별한 일이 많았음에도 뛸듯이 기뻐하지 못했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 모든 걸 순전히 나이 탓, 호르몬 탓으로 돌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단조롭긴 커녕 지난 한 해여러가지 일들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마흔이 넘었다. 아주 큰 어른도 아니지만, 마냥 어리지도 않은 어른이 되었다. 늘 감사하며 살자고 하면서도, 정작 감사한 일 앞에서는 양반 마냥 점잖게 행동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믿었다.
축하받을 일, 좋은 일이 있어도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야 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땐 속으로 삼켜 이겨내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믿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내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덤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속으로만 삭인 기쁨과 슬픔이 정작 밖으로 나왔을 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거 같다.
올 한 해에는 내 삶 가운데 느껴지는 모든 감정들에 집중해 보고 싶다. 교만과 겸손 따위의 고민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감정들을 찬찬히 느껴보고 싶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땐 혼자 참기만 할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토로하여 그 힘든 마음을 드러낼 것이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 앞에서는 지난 해 보다 2배 정도 더 호들갑 떨며 기쁨을 표현해 볼 것이다. 조금 철없는 어른처럼 보일지라도, 내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하며 살아가는 어른이고 싶다.
(무료했던 새해 첫날 지난해 10대 뉴스를 적다 보니, 갑자기 2023년에 대한 기대가 마구 솟구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