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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Feb 12. 2023

시어머니와 동거 7일 차


어머님은 다행히 빠른 시일 안에 수술도 잘 받으시고 회복도 빠르신 편이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누군가 옆에서 챙겨드려야 할 거 같아 퇴원 후 우리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이전 연관글: https://brunch.co.kr/@8planets425/17 ​ )


밖으로 이런저런 살림이 나와있는 게 싫어 일단 어디든 보이지 않는 곳에는 잘 쑤셔 놓는 편이다.  잠깐 오셨다 가실 때면, 제법 단정한 살림살이 인척이 가능하지만, 며칠 지내시는 동안에는 어질러진 살림들이 금세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게으르고 살림 못하는 며느리'라는 것을 대놓고 커밍아웃하자니, 그것도 맘이 편치는 않지만 아프신 어머님을 외면하는 것은 마음이 더 불편했다.  그래도 그동안 어머님을 많이 의지했고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당연히 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싶었다.




어머님과의 동거 2일 전, 집안 청소를 했다.  정리정돈은 야무지게 못하지만 먼지에 예민한 나는 청소는 곧 잘한다.  청소하다 보면, 정리정돈이 자연스레 될 법도 한데, 나의 경우에는 왜 이 두 가지가 함께 되지 않는지 그건 여전히 의문이다.


다른 곳은 어찌 됐든 내 기준에서의 정리를 마쳤다.  문제는 우리 집에서 가장 어지러운 옷방이었다.  한숨을 크게 쉬고 옷장을 열어 좌우로 스캔해 본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옷장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덕에 옷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잔뜩 쭈그려진 채로 빼곡히 걸린 옷들이 마치 비명을 지르며 매섭게 노려 보는 것 같았다.  이 광경을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지만, 그날은 왠지 더 이상 마주하기가 어려워 서둘러 옷장 문을 닫아버렸다.  


신기하게도 작년에 분명 안 입는 옷들을 한차례 정리했지만, 여전히 옷장은 꽉 차있다.  사소한 것에도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나란 사람에게 추억을 미니멀화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번엔 옷장 맞은편 서랍장이다.  첫 번째 서랍칸에 양말이 있으면, 두 번째 서랍칸엔 다른 것이 있을 법도 한데, 두 번째 칸에도 양말이 속옷과 함께 뒤섞여있다.  분명히 몇 개월 전에 한번 다 정리해서 넣어뒀던 거 같은데, 왜 또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작아져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아이의 옷은 몇 개의 쇼핑백에 담겨 여기 저리 자리 잡았다. 매번 보내는 친한 동생네로 보내겠다며 잘 넣어둔 옷들은 3개월째 옷방에 그대로 있었다.  이 정도면 진짜 병이다.  버리지도, 정리도 못하는 병.


하루가 더 남았으니, 다음날 다시 "정리"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하루 먼저 어머님의 퇴원이 결정되었다.  맙소사!  D-day가 하루 앞당겨졌다.  장을 본 후 어머님이 드실 수 있는 죽과 반찬거리를 준비하느라, 결국 미처 거사를 치르지 못한 옷방은 그 모습 그대로 어머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정신없는 워킹맘이고 최근 어머님이 아프셔서 간호하고 신경 쓰느라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잔뜩 되뇌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멘탈을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처음 며칠은 남편과 내가 휴가와 재택으로 어머님과 함께 집에 있었다.  옷방에 따로 들어가실 일이 없으셔서 그나마 안도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집안에 함께 있는 동안,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그로 인해 나는 깊은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마흔 살 넘은 결혼 10년 차 며느리가 아직도 어머님 눈에 못 마땅하신 게 많은지, 나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어머님의 피드백이 사이좋게 함께 따라다녔다.  


마치 내가 올해 10살 된 아들에게 더 좋은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준다는 핑계로 해대던 잔소리처럼 말이다.  


'아들아 미안해! 너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어머님과 동거 3일 차, 나는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동거 4일 차, 어머님은 점점 더 좋아지시고 기력을 회복하셔서, 이제 혼자서도 모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셨고 우리 부부는 출근을 결정하였다.

 

허나, 어머님께 오픈하지 못한 옷방은 어쩌나.  출근 전까지 정리를 조금이라도 해야 할지 말지 순간 잠시 고민하였으나, 그 밤에 내가 가장 못하는 정리라는 것을 할 자신은 없었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자. 하나 남겨진 옷방이 아니더라도 살림 고수인 어머님은 이미 첫날 모든 걸 아셨을 테니.  아니 어쩜 예전부터 한 번씩 우리 집에 오가시며, 이미 다 아셨을 거다.  돌이켜보니, 지난 십 년간 옷방을 점검하실 기회는 충분했었다.  (단지, 지금까지 보셨던 것들 중 지금이 가장 심한 놈이어서 그럴 뿐이다.)


그날 퇴근 후 집에 오니, 어머님은 내 운동화 한 켤레와 손주의 운동화를 빨아두셨다.  하필 내 운동화는 최근 폭설로 인해 검은 때가 잔뜩 묻어있었다.


멋쩍은 나는 말했다.  "어머님, 제 운동화도 빠셨어요? 그거 엄청 더러웠는데, 힘들게 왜 하셨어요?"


어머님은 두 켤레 모두 손주의 신발인 줄 알고 심심하셔서 뭐라도 하셨다고 한다.  내 운동화라고 괜히 말씀드렸다.  그러고 보니 내거나 아들 거나 사이즈가 엇비슷하다.


동거 5일 차, 퇴근 후 집에 오니 온기가 느껴진다.  아이를 학원에서 픽업 후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리는 건 평소와 다름없는데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저녁이다.


아침에 못다 하고 나간 설거지도 모두 완료되었고, 주방도 깔끔하다.  어머님이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밥도 해 두시고, 기본 재료 손질도 모두 해 두셨다.  손이 빠르신 어머님과 함께라 훨씬 수월한 저녁 상차림이 완성된다.  


함께한 지 7일 차, 생각해 보니 그동안 단 한 번의 외식도, 배달 음식도 없이 모두 집 밥을 해 먹었다.  놀라운 일이다.  진정 어머님이 함께 도와주셔서 가능했다.  


평소 아침 8시 즈음이면 아이는 돌봄 교실로,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분주한 아침 속 터지게 늑장이라도 부리는 아들이 출연할 때면 어김없이 나도 소리 지르는 엄마를 소환한다.  하지만 어머님이 집에 계시고부턴 아침에 화 한번 내지 않고 집을 나선다.  겨울 방학 내내 늦잠 한번 못 자고 매서운 추위를 뚫고, 집을 나서던 아들도 할머니 덕분에 이불속에서 조금 더 여유를 부린다.  어머님과의 동거가 제법 편해진 건지, 처음 며칠은 평소 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으나 이제 늦잠을 자는 날도 생겼다.  




동거 기간 동안, 과감히 모든 걸 내려놓고 다 보여드린 것 같다.  더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그저 뭘 해드리면 잘 드시고 빨리 회복하실 수 있을지만 신경 썼다.  물론 함께 지내며 당연히 서로 불편한 점들도 있었다.  


어머님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지만 운동을 핑계 삼아,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도와주시는 것을 안다.  남편이 괜히 내 눈치를 살필 까 싶어, 더 힘든 내색 없이 어머님을 살갑게 챙기려고 하기도 한다.  매일매일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남편의 얼굴도 편안해 보인다.


아직 언제까지 이 동거가 유지될지는 상의해 보지 않았다.  그저 함께 하는 동안, 딱 지금처럼만 적당히 불편하면서, 적당히 편하기도 한 상태가 유지되면 한 동안은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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