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언제 충전하세요?(#37)

1%? 3%? 50%? 99%?

by 하원
배터리 언제 충전하세요?


이 질문에 당신은 몇 %라고 대답했는가?


필자는 1%, 혹은 전원이 꺼지고 나서야 충전을 하는 편이다. 어쩌면 당신이 세상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전원이 꺼지고 나서야 충전하는 이유를 들자면,

1.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고,

2. 언제든 전원이 꺼지더라도 충전기와 연결해서 전원을 켜면 되니까

3. 배터리가 남아 있으므로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남아 있는 배터리 사용량만큼 충전기에 묶여 있지 않고, 그 시간 동안 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4. 좀 더 사용하다가 충전해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5. 다른 걸 하다가 충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서.

등등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이다.


문제는, 핸드폰 배터리뿐만 아니라 내 에너지 충전 타임도 똑같다는 데 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중거리 선수, 불꽃에 비유하곤 한다.


내 가장 큰 장점인 추진력과 실행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는 열정에 불타오른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일을 물고 늘어진다. 다만, 그 성과가 단거리 선수만큼 파바박 하고 순식간에 나오진 않는다. 스타트에서는 뒤쳐지지만, 뒷심을 발휘하여, 앞선 상대를 앞지르는 페이스에 익숙하다. 준비과정이 철저하고, 오랜 공을 들일 수록 치고 올라가는 속도가 큰 타입이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중거리 선수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왜 장거리, 마라톤 선수가 아니고 중거리 선수라고 생각하는지 물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불태우는 불꽃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장거리를 뛰기에는 내 페이스가 그리 길지 못하다. 쉽게 질리는 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과를 빨리 보고자 하는 효율주의의 성향도 한몫을 한다.


나는 내가 언제 지치는지, 언제 충전을 해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놓쳐 버릴 때가 많다.'하나 더! 이것만 더! 난 할 수 있다! 해냈다!'는 그 성취감에 몰두하고 미처 취해버려서, 충전을 해야 하는 타이밍을 눈치 채지 못하고 남은 에너지의 잿더미마저 먼지가 되어 날아가버릴 때까지 온 기력을 다 쓰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아, 나 좀 이상하다.', '왜 갑자기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힘들지? 어제까진 안 그랬는데....?', '쉬어야겠다! ', '쉬어야 하는구나!'라고.


그럼 꼼짝없이 다시 힘이 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사람과의 소통도 차단한 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친구는 그러면 오히려 우울해져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보람찬 일을 해야지' 싶어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한다는 데, 나는 이미 이렇게 방전이 되기 전에 쉬는 시간, 짬이 나는 시간에 그런 생각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이렇게 방전된 기간에는 정말 숨쉬기 말고는 아무것도 할 힘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한테는 핸드폰처럼 배터리 on/off 기간이 존재한다.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치의 에너지를 나도 모르게 다 써버리고 나면, 바깥세상과 나를 차단시킨다. 일부러 고립시키는 시간을 주는 거다. 그래야 다시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서 한 번에 불사를 수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쉬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억지로 쓴다는 느낌이 생겼다. 그리고 내 글을 내가 자가 복제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책도 읽고, 넷플릭스도 보고, 노래도 듣고, 콘텐츠 분석도 하면서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가끔 내가 너무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를 채워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걸 너무 늦게 깨닫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오늘의 점심식사

그래서 요즘은 내 에너지 잔량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체크하면서 나아가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에너지를 잘 나눠서 사용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올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균형'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방면에서 중심을 잘 잡고 균형감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

이전에는 운동도 7일을 꼬박 채워서 아침저녁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했다면, 지금은 월수금은 높은 수준의 근력운동, 화목은 유산소와 자세교정 위주의 운동,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은 가벼운 유산소+복근 운동의 루틴으로 강도를 조절하고, 중간에 쉬는 날도 넣어주었다.

식사도 매일 매 끼니 칼질을 하고, 불을 써서 요리해서 먹었던 습관을 버리고, 요구르트 볼 등의 아주 간단하게 차려먹을 수 있는 아침식사, 점심은 엄마의 집밥 또는 간단히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 저녁은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 또는 오믈렛 정도의 금방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바꿔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 에너지로 책을 읽고, 콘텐츠를 분석하는 데 쓰고 있다.

방전되어 버리기 전에 충전은 못하더라도 그 에너지를 유지하려고 생각해낸 방법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당신은 언제 핸드폰을 충전하는 지도 궁금하다.

나처럼 에너지를 모두 다 써버리고 나서야 충전하는 사람이 또 있다면, 그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또,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사람과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어야만 충전을 되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비중이 높을 지도.


나는 나름 만족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서 앞으로 가고 싶은데도 쉬어줘야 열정이 다시 끌어 올라온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는 열정이 꺼져버리기 전에 충전해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당신은 언제 배터리를 충전하는가?

질문을 다시 바꿔서,

당신은 언제 쉬는가?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언제 잠시 멈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가? 언제 에너지를 충전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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