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걸스로부터 배운 존버의 법칙

스물넷, 내 안의 불안함으로부터 멀어지는 법.

by 하원
스물넷, 어중간하고, 불안한 나이.
내게 느껴지는 스물넷은 그렇다.
겨우 1년이란 시간 내에 지난 23년 간에 살아온 값어치를 증명해 내야만 하는 나이.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취업에 성공해야 하고, 그동안 내뱉었던 말들을 수습해야만 하는 나이.
때때로 불행하고, 때때로 불안하다.
큰 불행은 없지만 그렇다고 큰 행운, 큰 행복도 없다.
밋밋한 하루하루가 흐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너울지고 얼룩진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그것을 누군가 건드릴 때면 톡 터져 버린다.
애써 안 그런 척 힘내어 걷다가 웹툰 대사 한 줄, 드라마 대사 한 줄, 팝송 가사 한 줄에 어김없이 눈물이 터져 혼자 울어 버린다.
내가 꿈꾸던 내 모습은 이게 아닌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진짜 나 자신이 원하는 게, 좋아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닌데.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지?

최근 나 스스로가 '어? 나 왜 이렇게 예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의미 없이 한 말에도 과민반응을 하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께서 '하는 거 없이 밥 얻어먹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라고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씀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하는 거 없다.'는 뉘앙스의 말만 들어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내 나름대로는 21학점을 복전으로 꽉꽉 채워 듣고 매일 온라인 강의를 듣고, 매일 쏟아지는 과제를 해내고, 주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라서 전혀 모르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강의를 몇 번씩 돌려보면서 공부하고, 브런치를 쓰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보정하고 글을 써서 올리고, 블로그를 쓰고, 책을 읽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서 기획을 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데 그게 부모님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놀고먹는 행동으로 보인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서운했다.
오빠는 2년제 대학을 자퇴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놀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부모님의 여태까지의 이론 대로라면 알아서 취직해서 살아야 하는데 생활비와 학원비를 모두 지원해 주시고 계신다.
그런데 나한테는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몰려와서 더 서럽게 느껴졌다.
'왜...? 왜 나한테만...?!'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내 삶을 앞으로 끌고 나아가고 있는데 4년제 대학에 비록 원하는 소재의 원하던 대학은 아니지만, 오빠가 채워주지 못한 것들을 내가 채워준 것은 분명한데 왜 나는 휴학하는 것에서도 그렇게 욕을 먹어야 했고, 지금도 이렇게 칼같이 내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왜 항상 오빠한테는 너그러운 기준이 나한테는 얄짤 없어지는 것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새벽까지 놀고 게임하느라 낮 2-3시까지 잠을 자고 3시~6시에 학원을 다녀오는 것이 전부인 오빠한테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대견해하고 뭐라도 하니까 기특해하면서, 아침부터 운동하고 밥을 차려먹고 그걸 사진 찍어서 보정해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월-목 동안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브런치를 쓰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유튜브를 기획하는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학생이 뭐가 힘들다고, 나는 학생이 힘들다고 하는 건 너 밖에 못 봤다. 학생이 힘든 게 뭐가 있냐. 집에서 수업 들어가면서. 학생이 수업 듣고 과제하는 건 당연한 거지. 놀아가면서 먹고 대학생이 뭐가 힘드냐. 남들은 자격증 공부도 한다던데 너는 뭐 아무것도 안 한다.

라며 내가 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해버리니, 그런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나 제스처를 듣거나 보게 되면 반사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날카로워졌다.
일단 나 스스로도 나는 계속 뭔가를 하는데,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있고, 불안한데 주변에서도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이 너무 상처가 됐다.

이런 고민들을 비단 올해가 되어서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께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책임지고 지원해줄 테니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든 네가 알아서 꾸려나가라. 졸업 전에 가능한 한 무조건 직업을 가져라.'라고 꾸준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의 이런 고민과 불안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차적으로 더 크게 와 닿았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더 피부로 와 닿았고, 더 불안해졌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렸다.

내 주변만 봐도 벌써 취업한 친구도 있고,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서 취준을 하는 친구, 휴학하고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 등등 굉장히 다양한 상황과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을 느낀다.

각자 나름대로의 불안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나의 불안함을 별 거 아닌 사치스러운 고민거리로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 스스로가 왜 그런 걸로 그렇게 불안해하고 쩔쩔매고 힘들어했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 않나? 당시의 당사자는 심각하다. 누가 뭐라고 한들 나한테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도 사실 그런 이유도 있었다. 매일 밥을 먹고 글을 쓰는데, 좀 더 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을 쓸 순 없을까? 이 불안을 나만 느끼고 있을까?

내가 느끼는 불안을 누군가는 또 느끼고 있을 거란 확신, 기대에 의해서 시작했다. 내 감정과 상황에 공감해 줄 이가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당신만이 힘든 게 아니다. 당신만 그런 상황에 처한 게 아니다. 당신과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다. 때론 위로의 말보다도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한 위안과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 그것을 기록하고 알려주기 위해서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속의 불안이 온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한가 고민을 해봤다.


1. 나는 프리랜서를 꿈꾼다.

주변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꿈꿀 때, 나는 미래가 불확실한 프리랜서를 꿈꾼다. 그중에서도 콘텐츠를 창작하는 창작자(크리에이터)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런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갖고 있는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런 작업으로 돈을 벌어먹고 싶어 하니,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고, 언제 어떻게 성과가 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2. 주변 사람들은 취업을 준비한다.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자격증 공부를 하고, 국가고시를 보고, 토익 시험공부를 하고, 학점 관리를 한다.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눈 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다 보니까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들에도 흔들리고 의문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니까 더 졸아드는 것이다. 이제껏 봐왔던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려니까 또 제한 시간이라는 게 주어진 느낌이다 보니까 사람이 자꾸 여유를 잃고 초조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작은 말 한마디에도 화가 나고, 울컥울컥 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역주행 신화를 쓴 브레이브 걸스가 출연한 편을 보았다. 거기서 유재석 님이 하신 말씀이 되게 공감이 됐다. "제일 답답한 게 그거죠. 내가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이 길을 선택한 게 잘한 결정인지 알 수 없어서, 그게 힘이 들죠."

우리는 모두 미래를 알 수 없다. 과거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미화되기 쉽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현재에 서있는 모두가 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잘 될지 알 수 없다.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이것만큼은 공평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하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선택으로 인해서 후회할까 봐 갈팡질팡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 먹은 오늘 아침 식사.

하다 못해 오늘 아침에 뭘 먹을지도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까 봐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데,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는 불안이 그만큼 커지는 게 당연하다.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불안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선택한 불안정성이 특징인 직업에 한해서는 더 그럴 수밖에. 브레이브 걸스가 버티고 버텨서 포기하고 다른 길로 접어들려고 했는데 역주행 신화를 쓰며 1위를 하게 된 것처럼, 나도 존버 하다 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지만, 버티는 것도 용기다. 버티는 것이, 버티는 능력과 깡이 결국에는 이긴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미생의 명대사처럼. 믿고 나아가 보려고 한다. 아직 나는 젊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나아가고 있으니까. 나의 불안으로부터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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