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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 Jun 08. 2020

걷는 여자

코로나 19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나의 살들도 함께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집콕 생활의 후유증으로 확찐자가 되었다는 요즘, 나 역시 그 유행을 따르게 된 것이다. 평소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확찐자’가 되어 옷이 ‘작아 격리’ 중인 대유행은 나의 삶도 강타했다. 덕분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마음에 저녁마다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하천을 따라 한강까지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마련되어 있어 1시간이라도 걷기로 했다. 다이어트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처음부터 무리하다 도중에 포기하고 요요에 시달리느니 꾸준히 걷기를 택한 것이다. 이제 시작한 지 1주일, 5일은 성공했고 이틀은 실패했다. 가능하면 매일매일 계속하고 몸이 잘 적응해 준다면 만보, 만 오천 보를 넘어 언젠가 2만 보 걷기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희망사항으로 끝날까 걱정은 되지만, 이곳에도 중간중간 기록을 남기며 하는데 까지 해보려 한다.


마스크를 쓰고 걷기 시작한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 가끔 마스크 없이 러닝 하는 분들이 지나칠 때 나도 모르게 몸을 피했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쓴 채 적당한 간격으로 열심히 걸었다. 나도 진즉 이렇게 나왔어야 했는데... 코로나라는 핑계를 대며 너무 편하게만 지냈나 보다. 많은 후회와 함께 주인 잘못 만난 내 몸에게 참 미안했다.


마스크 속 나의 숨 냄새를 맡으며 걷는 동안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년 전에도 나는 이렇게 걷기를 도전했던 경험이 있다. 한강에서 멀지 않은 망원동에 살았을 때, 지금처럼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음껏 걷고 숨 쉴 수 있었던 그때, 왜 나는 열심히 걷지 않았을까?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으로 시간을 놓치고 미세먼지가 많다는 이유로, 또 나중에 헬스나 필라테스를 등록하면 된다는 핑계로 오늘 못하면 내일부터 하면 되지 뭐... 그렇게 1년이 지나버렸던 것 같다.


환경은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로 약속들이 취소돼 저녁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바이러스 방지 때문에 늘 마스크와 한 몸처럼 지내다 보니 미세먼지쯤이야 두렵지 않고, 헬스나 필라테스를 하는 실내 스포츠는 당분간 안녕! 그러다 보니 지금이 오히려 걷기에 더 좋은 때가 되었다.

결국 나쁜 환경이라는 건 내가 하기 싫어 만드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걷는다.


결혼 후 1년 만에 14킬로가 쪘고 수없이 살을 빼겠다고 다짐하며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혼 10년 차인 지금은 오히려 살이 더 쪄 날씬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면 18킬로를 빼야 한다. 아프고 다치고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수많은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건 결국 내 의지 부족 때문이다. 이번만은 다른 결말을 맺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매일 걸을 것이다. 걷기가 내 삶의 위로가 되고 활력소가 되길 바란다.


2018년 겨울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다가  공감했던 메시지가 있다.


오늘 우리가 고단함과 귀찮음을 툭툭 털고서 내딛는 한걸음에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나의 오늘을 위로하고 다가올 내일엔 체력이 달리지 않도록 미리 기름치고 돌보는 일.  나에게 걷기는 나 자신을 아끼고 관리하는 최고의 투자다.  

비단 이 문구뿐 아니라 하정우의 책을 읽다 보면 당장 일어나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지만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다 싶은, 걷기 예찬론자  하정우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를 걷는다는 하정우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도 하정우처럼 늘 걷는 사람, 걷는 여자가 되고 싶다.

매일 시간을 내어 걷는 것이 내 몸을 위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비록 마스크를 낀 채 마시는 바깥공기지만 바람이 전해오는 풀내음과 꽃향기를 느끼며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자연을 걷는 것,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인적 없는 숲 속에서 두 팔 벌려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주는 최고의 위로이자 선물이다. 게으름에 익숙한 내가 금방 포기할까 두렵지만, 그때마다 이 글을 읽고 다시 일어나 한 발을 떼길 응원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딛는 나의 발걸음이 내 삶을 건강하게 변화시킬 것을 믿는다.


p.s 오늘도 무거운 몸을 지탱하며 걷느라 수고한 나의 두 발과 두 다리에게 애썼다 감사하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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