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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 Jun 21. 2020

색안경

얼마 전 홍대 앞을 지날 때 보았던 일이 며칠 째 기억 한 편에 남아 있다.

천 원으로 기쁨을 살 수 있다는 곳에서 쇼핑을 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남루한 복장의 할아버지가 급하게 차도까지 내려오셔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무단횡단을 하시려는 건지 걱정이 됐는데, 택시를 잡으려는 행동이었다. 한 손에는 종이박스 몇 개가 담긴 작은 손수레를 끌고 계셔서, 얼핏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처럼 보였다. 아마 택시 기사님들도 그리 생각하셨는지 몇 대의 빈 택시가 그냥 지나쳤다. 대신 잡아드릴까 살짝 고민했지만, 선뜻 행동으로 다가서지는 못했다. 코로나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생각만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비겁함때문이었을까?...


때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한 택시가 정차했다. 이제 어르신이 잘 타고 가시겠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지만 자꾸 고개를 돌려 확인하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어르신을 걱정했나 보다. 길을 건너는 행인들 중 몇 명의 시선이 택시에게로 향했고 한참을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르신이 택시 트렁크에 손수레를 넣으려 했지만, 녹록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맞은 듯 반으로 굽은 허리가 잘 펴지지 않아 손수레가 트렁크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쉽사리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손수레가 트렁크 입구를 찾지 못하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안타까웠다. 그리고 또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얼른 달려가 돕자! 할아버지 짐을 트렁크에 넣어드리자.’ 

정말 짧은 찰나의 순간, 나는 선의를 베풀기로 고민했지만 내 양손에 든 짐의 무게를 생각하고 내 몸의 피곤함을 이유로 또다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핑계 같지만 내 옆의 건장한 청년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듯 보였고 행동에 옮길 준비를 하며 몸을 틀어 할아버지에게도 향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청년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면 한 여자가 쏜살같이 뛰어 어르신의 짐을 트렁크에 넣어드렸기 때문이다. 순간 머리가 띵했고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샛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형광색 티셔츠, 그 티셔츠 길이보다 짧은 핫팬츠를 입은 모습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 같았고 누굴 도와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외모가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삐딱한 시선으로 그녀를 평가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모르는 사이지만 머리가 노랗다는 이유로,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핫팬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나는 그녀를 예의범절 없고 발랑 까진 어린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횡단보도 한쪽에 서있던 그녀 모습을 보았을 때도 요즘 애들 참... 과감하구나 싶었다. 겉으로 혀만 안 찼을 뿐, 더운 여름 노출을 했다고 되바라졌다는 되지도 않는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그런 그녀가 가장 먼저 달려가 어르신을 돕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나 스스로 부끄럽다 뉘우친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가끔씩 착해 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정작 어르신의 힘듦을 외면했고, 그래도 도와드리려 생각은 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타협했던 40대. 

몇십 미터 밖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과감한 패션으로 말 걸기조차 무서워 보이지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한걸음에 달려가 어르신을 도와드린 20대.

과연 누가 선한 사람일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외모와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한다. 나쁜 사람이 명품을 입었다고 그 사람의 인성이 명품은 아닌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에 익숙해져서인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 자꾸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중요시 여긴다. 


내 눈이 잘못됐을지도 모르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내가 맞다고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평가되어 속상했던 경험이 있었으면서 말이다. 

실제로 여중에 다닐 때 얼굴이 하얗고 머리카락이 검지 않다는 이유로, 화장을 하고 탈색을 한 불량학생이라 낙인찍혀 교감선생님께 불려 갔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그대로인데 맥주나 과산화수소로 탈색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담임이 와서 해명을 해주셨지만 어린 마음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떠올리니 그날 그 자리에서 멋대로 예의 없는 여자 취급했던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고맙다. 

나의 편견과 색안경을 깨 주어서.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책의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수 없듯이 외면만 보고 내면을 알 수 없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영어 속담으로 미국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책장에도 겉표지에 낚여서 샀다가 먼지만 쌓인 책들이 꽤 많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앞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섣부르게 그 사람의 가치를 평하지 말자. 연륜이라는 쓸데없는 치장으로, 내가 사람 좀 볼 줄 안다는 직감을 남용하지 않아야겠다. 외면보다 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우자. 나부터 겉모습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 내면의 힘을 키우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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