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를 칭찬하는 일
솔직한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건 내게 꽤 어려운 일이다. 속으로는 별별 걸 다 느끼면서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편했다. 이런 실정이니, 극도의 감정을 표출해 내야 하는 ‘칭찬’에는 얼마나 박하겠나. 비단 내가 상대에게 칭찬하는 상황에서만 뚝딱대는 것은 아니다. 칭찬받는 일 또한 돌아버릴 정도로 부끄러워 얼른 화제를 돌리기 일쑤인 데다, 내가 그런 극강의 감정을 받을 사람이 되는지 검열부터 하고 나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칭찬하거나 받는 상황에 노출된다. 꼭 칭찬의 본래 목적이 아니더라도,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친해지고 싶어서, 할 말이 없어서 등 다양한 취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승무원을 하면서 타인을 칭찬하는 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엄격한 선후배 관계 속에서 터득한 이 기술 덕분에, 대화할 때 ‘영혼 없다’라는 식의 지적을 받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렇지만 칭찬받는 일은 여전히 미숙하다. 그게 본래 목적이 아닌, 사회인의 화법 중 하나로 지나가듯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칭찬 타이밍이 올 것 같을 때 자리를 벗어나거나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의 업적으로 돌리기도 하고, 가끔은 상대를 더한 칭찬 감옥에 가둠으로써 상황을 타개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이런 방법들이 잘 맞아 들어갔으나, 문제는 공적인 상황에서다.
공무원의 경우, 일 년에 두 번 근무성적평정을 진행한다. 근무실적이나 근무태도 등을 종합하여 평가하고 그것을 승진의 기초자료로 삼는다. 이건 일 년에 한 번 받는 성과상여금과도 연관이 있으므로, 아직 승진이 요원한 나 같은 신규에게도 꽤 신경 써야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리고 이게 바로 칭찬의 영역이다. 그것도 내가 나를 칭찬해야 하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진입장벽이 극악무도한 일이다.
근무성적평정을 한다는 공문이 오면, 실장님이 공람과 함께 평정서 서식을 주신다. 그러면 점수표를 제외한 모든 빈칸을 채워서 실장님께 드리면 된다. 빈칸에는 성명, 소속, 직위와 같은 기초적인 자료를 포함하여, 담당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담당업무의 실적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작성하며, 맨 마지막에는 실적과 능력에 관한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 인사란 원래 복잡하고 미묘한 데다 민감한 일이라서, 보통은 비공개로 이루어진다. 예전 자료를 참고할 수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전임자에게 요청해서 작년 평정서를 받고 나서는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시작인 줄도 모르고.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업무는 벌써 며칠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담당업무까지는 업무분장표에 나와 있는 대로 쓴다고 쳐도, 업무 실적은 어떻게 써야 할지…. 평정이라는 게 쉽게 말하자면 내가 한 일을 자랑하는 것이라는 건 알겠는데,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실적을 들먹이자니 괜히 면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 모르겠다. 대충 쓰고 치우자.’
실적란에는 ‘급여를 적기에 지급함’, ‘연체 없이 기한 내 세금 납부’ 같은 누구나 할 법한, 그리고 실적이라기보단 마땅히 해야 하는 업무 일과를 나열했다. 빈칸을 채우자마자 실장님께 드렸고, 별말씀이 없어서 이렇게 작성해도 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 평정 시기가 찾아왔다.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칭찬을 말로 꺼내 표현하는 것도 아닌데도, 평정서를 보면 왜 이렇게 겸연쩍은 기분이 드는지 몰랐다.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도 휘갈기듯 써서 단숨에 제출했다.
“주무관님, 평정서 다시 제출해 주세요~”
이번엔 실장님께 쪽지가 왔다. 아직 승진은 먼일이겠지만, 그리고 이게 승진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인사와 관련된 일이니까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깨끗하게 지운 실적란과 평가란을 보면서 또다시 가슴 한편이 불편해졌다.
‘
나는 한 것도 없고, 맨날 도움만 받는데….’
내겐 평정서 작성이 급여나 세금 납부 업무보다 훨씬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용기 내 써내려 가다가도, 어느 순간 내면의 비평가가 튀어나와 단어마다 검열을 시작했다. 나를 칭찬하고 포장하는 건, 공무원을 준비하며 하루 7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던 것보다 더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며칠 채 시름시름 앓아가는 걸 보고, 실장님께서 팁을 하나 주셨다. 간결하고 정확하게 수치화해서 작성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숫자를 사용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보기로 했다. ‘교원 37명, 지방 공무원 5명, 공무직원 13명 외 기타 강사 20여 명의 급여 관련 업무’, ‘월 3,000만 원 상당의 세금 및 사대보험 납부’ 등과 같이 숫자를 활용해서 빈칸을 채웠고, 이번 평정서는 다행히 통과되었다.
업무가 손에 익고,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고 나서 또 한 번의 평정 기간이 찾아왔다. 그 사이 공적으로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어 잘 해결해 나가는 중이었고, 사적으로는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한결 여유가 생기고 나서도 여전히 평정서의 실적란을 보면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속의 비평가는 세를 많이 줄였다. 수치화된 실적을 보면서 내가 1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했구나! 신기해하며, 바로 순수하게 인정하는 걸 보니 확실히 그랬다. 또 평정서의 공적인 이로움 외의 장점을 하나 더 찾았는데, 그건 바로 내 반년, 일 년을 돌아볼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내가 해내 온 일을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지난 공무원 생활의 최고 실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