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의 첫 미팅에서 깨달은 것들
어렵게 선택한 교수님과의 첫 만남, 이번에는 내가 선택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운명이 달려 있었다. 퇴근 후에나 뵐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려서 시간 약속을 잡고, 약속된 곳으로 찾아갔다. 가기 전에 고민이 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김영란법에 대해서 잘 알고는 있지만 뭐랄까, 잘 보이기 위한 차원이라기보다는 우선 시간을 내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의 차원으로 작은 음료수라도 하나 사갖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것과 관련한 부담과 문제점들을 예방하기 위해 법까지 제정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약간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가. 이런 부분이 늘 어렵다. 그래서 학교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래, 만약 드렸는데 거절하시면 나를 위한 선물로 주자!'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마카롱 세트 하나를 샀다.
실제로 만난 교수님은 네이버에 나오는 사진의 느낌보다는 온화하고 다정한 분이셨다. 만나서 내 소개를 간단히 하고, 왜 이 전공이 공부하고 싶었냐고 물으시기에 미리 생각해두었던 답변들을 풀어놓았다. 교수님은 진지하게 들으시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공부하려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나도 이런 부분들에 대해 동의한다.' 등 내 생각을 존중해주시며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그리고 왜 현재 직업이 있는데도 공부를 굳이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셔서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공부를 하면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되면 다른 길을 모색해볼 계획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자 흡족해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전공생을 받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그건 함께 하는 사람들과 협업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나하고도 마찬가지에요. 예전에야 학문의 길을 고독하게 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함께 공부하면서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난 화목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고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어요?"
솔직히 오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학부 때부터 내게 교수님이란 존재는 늘 너무 어려웠다. 얼마나 어려웠느냐면... 석사 때도 A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쓸 준비를 하던 중, 아는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로, "너 B 분야의 논문 안 쓰면 졸업 안 시킬 거다!"라고 농담하고 가신 소리에도 소심해져 내가 전공 분야에서도 제일 싫어하고 어려워했던 B 분야의 논문을 쓰고 졸업한 사람이다. (교수님은 아마 전혀 기억 못 하시겠지만... 정말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졸업 못할 뻔했다;) 이렇듯 뭔가 내게 교수님들은 저 하늘 위에 존재하는 사람, 감히 말을 거역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이런 새가슴을 갖게 된 연유는 어릴 때 피아노 선생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원래 난 어른들을 어려워 하기보다는 내 의사표현에 적극적이면서도 명랑한 어린이였는데 어느 날 피아노 선생님이 나에게 "어린애가 왜 이렇게 어른이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질문이 많니? 내가 무슨 니 친구니?"라며 짜증을 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경솔하게 행동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난 그때 이후로 선생님이나 교수님과 같은 어른들을 대하는 것이 한없이 어려웠고...결국 엄청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참 쉽게 고쳐지지가 않아서 오늘 이 만남도 엄청 긴장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의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이 풀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아, 제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거예요, 교수님!"이라고 당차게 말한 후, 꼭 이 교수님 밑에서 지도받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면서 그 확신은 더 강해졌고, 마무리할 즈음 자리에서 일어나며 준비했던 마카롱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런 걸 받으면 내가 면접을 볼 때 당신을 뽑고 싶어도 더 뽑을 수가 없는 거라며, 얼른 집어넣으라고 이야기하셨다. (오기 전, 괜한 고민을 했던 것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렇게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한 달 가까이 어떤 학교로 가야 할지 고민했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간과했던 한 가지 배움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대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그 전공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 논리적인 철학 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갈 수 있는 것이 맞나, 이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사실 대학원을 가기 이전에 내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태도였다는 점이다. 물론 교수님들마다 바라는 부분이 다르시겠지만 대학원 공부도 누군가와의 상호작용 안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라는 점, 학부생도 아니고 이젠 어엿한 성인이기에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지만 나 스스로도 협업의 마인드로 연구에 참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 공부의 결실로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 난 이 첫 만남에서 공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필요했으며 어쩌면 이상을 향한 이 태도가 내가 앞으로 투자하고자 하는 시간을 좀 더 가치있게 만들어 줄 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