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매에게는 <여수 밤바다> 보다 오래된 여수에 관한 노래가 있다. 긴 세월 잊혔던 그 노래가 어느 날 기억 속으로 날아들었고, 하루를 그저 처치하기 급급한 나에게 녹진한 삶의 향기를 전해주었다.
유년 시절, 잊을만하면 큼지막한 보따리와 함께 등장했던 분이 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수숫대처럼 마른 그분을 우리는 여수 아줌마라 불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출입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한들 누구 하나 이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40여 년이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 기억이 머리를 스쳤고,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우리는 하나같이 “아아... 여수 아줌마!”를 외쳤다. 이어서 누구랄 것도 없이 아련한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분과의 연이 우리에게 준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 분만 다녀갔다 하면 우리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다락을 오르내렸다. 부옇게 먼지를 쓴 책과 철 지난 옷가지들 사이로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간들 사이로 마른 홍합부터 멸치, 새우 등 평소 손에 쥐기 힘든 주전부리가 쌓여 있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다락에 자리 잡은 우리는 돌처럼 단단한 홍합을 침으로 녹여가며 씹었다. 시간이 지나 말캉해진 홍합에서는 아줌마가 산다는 남도 바다내음이 풍겼다. 그렇게 한참을 씹다 보면 달큼함 뒤로 잘 씹히지 않는 심지 같은 게 남았다.
돌이켜보면 그분은 보따리를 짊어진 채 내륙을 돌며 건어물을 팔던 행상이었다. 터치 몇 번으로 알라스카 빙하수에서 노닐던 연어가 아침 식탁에 오르는 요즘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풍경이리라. 어쩌면 역사책 한 구석에서나 만날 법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교통사정 좋지 않던 시절 아줌마의 보따리는 우리 가족의 건강 식탁이 되어준 셈이다.
보따리를 내려놓고 마루에 걸터앉은 아주머니는 큰 숨부터 돌렸다. 부엌으로 달려가 물 한잔을 떠다 드리고 난 뒤 우리 관심은 온통 보자기를 향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이기지 못한 아주머니는 흰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보자기를 펼쳤다. 펼쳐진 보자기 위로 맑은 햇살과 짭조름한 해풍을 머금은 해산물 향연이 벌어진다. 이어 마주 앉은 아낙들의 이야기보따리도 펼쳐진다.
한시라도 빨리 홍합 맛을 보고 싶었던 우리는 마당에 늘어선 해바라기 그림자가 길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바스락댔다. 어느 날에는 여우비가 마당을 때렸고, 어떤 때는 싸라기눈이 마루 위를 뛰어다녔다.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던 대화는 "인자 가야 쓰겠네..."와 함께 끝이 났다.
그 마루 위로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쌓였을까. 하나 아줌마가 무릎 짚고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던 덜 여문 귀에 삶의 실체가 담긴 이야기가 들어올 리 없었다. 언제부터 그분 출입이 잦아들었는지 기억에는 없다. 뾰족집을 지어 이사할 무렵 일수도 있고,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부터 일수도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한 때 우리와 연을 맺은 그 여인의 삶이 궁금해진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이른 나이 남편을 잃고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천불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도 한다. 가끔씩 살던 곳을 벗어나 바깥바람을 쐬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았을 게다. 아니 그보다는 남겨진 자식들 입을 볼 때 마다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쉽고 궁금하기는 어머니도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땐 나도 어렸지, 지금 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눌 텐데...
어둑새벽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여장을 꾸린 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문을 나섰을 게다. 그리고 삶의 무게가 담긴 보따리를 열차 안으로 밀어 넣었을 거다. 전주역에 도착해 국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뒤, 진안행 버스에 올랐을 것이다. 다녀갈 때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냈으리라.
구비 구비 몰아치는 모래재를 넘을 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그 짐을 지고 어떻게 우리 집까지 왔을까. 지금에야 삶의 무게와 지친 여정이 그려진다.
당시 우리 눈에 그분은 한 치의 실수도, 흔들림도 없는 어른이었다. 하나 나도 무릎을 짚으며 일어서게 되면서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운명을 홀로 짊어진 채 녹록지 않은 삶을 이어가던 여인이었을 뿐임을.
한편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따리만 좇던 우리를 보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순박한 아이들의 재롱이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덜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할 수만 있다면 그때 그 시절 마루 위로 돌아가 보고 싶다.
녹슨 파란 대문이 열리고 시원한 미소가 먼저 들어선다. 냉큼 뛰쳐나가 머리 위 보따리부터 받아 든다. 그리고 누군가의 체온이 필요했을 메마른 손을 잡아 드린다. 뜻하지 않은 행동이 싫지 않은 눈치다. 이내 펼쳐진 보자기 위로 응어리진 삶의 애환이 터져 나오고, 나는 말없이 눈을 맞춘다.
‘봄’ 임에도 봄의 시작의 알리는 3월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삼월처럼 스쳐 지났지만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었던 한 분에 대한 추억이다. 늘 그렇듯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 그 의미와 가치가 들어온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소중한 것들의 뒷모습만 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