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토양

관계가 자라는 토양

by 장동혁
내 생에 처음으로 관계 문제를 맞닥뜨린 건
너덧살 되던 해였다.


물론 누나와 다툰 뒤 머리핀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누나를 나무라는 엄마 머리를 두꺼운 책으로 때린 일 등 사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내 욕구를 관철하려면 그들의 상태도 고려해야만 한다는 걸 인지하고 행동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우리는 아버지 직장때문에 서울에서 전북 진안이란 곳으로 이사했다. 내륙 산간에 위치한 소도읍으로 말 귀 모양을 닮은 마이산으로 유명하다.


그날은 아마도 집들이 겸 친척들이 놀러 왔었나 보다.

자연스레 마이산 한번 가보자는 말이 나왔고, 다들 좋다고 했다. 그곳은 집에서 얼추 5-6Km 거리다. 지금 같으면이야 쉽게 가서 차 한잔 하고 올 거리지만, 그땐 사정이 달랐다. 제법 걸어야 했고 버스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어른들이 하나둘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고, 나에게는 빨간색 점퍼가 입혀졌다.

그때 나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날이 너무 쌀쌀해서 얘 감기 걸릴 것 같은데"


어린 내가 따라나서기엔 날씨가 너무 춥다는 걸 고모가 지적한 것이다. 순간 내 귀가 쫑긋해졌다. 그러다 결국 누군가 집에 남아 나를 데리고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나에게는 일행과 함께 새로운 모험에 참여 하느냐 아니면 집에 남아 따분한 시간을 보내느냐가 걸린 심각한 문제였다.




그때 내가 갑자기 마루로 나갔다고 한다. 그러더니 점퍼를 벗어 던진 뒤 마루에 걸터 않아 무심히 한마디 던지더란다.


"왜 이렇게 날이 덥지?"


웃음바다가 된 건 당연하다.


그날 내가 마이산엘 갔었는지 아닌지 기억에 없다. 그렇지만 호기롭게 마루에 집어던진 점퍼는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흰색 안감에 호른, 트럼펫 등이 그려진 진홍색 점퍼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 무렵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떼를 쓰지를 않았다. 상대를 압박하거나 곤란하게 만듦으로써 욕구를 관철하는 대신, 현실을 부정하면서까지 문제를 무마하려 했다. 대립으로 인한 곤란함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추측컨데 이미 그때 나는 내 욕구보다는 주변의 기대를 먼저 살폈던 것 같다. 그런 행동은 의젓하고 어른스럽다는 보상으로 돌아왔고 그럴수록 그 행동은 강화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마음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읽어주길 바라는. 이별방식도 그랬다. "이제 그만하자" 또는 "여기까지인가보다" 보다는 그 자리에서 그모습 그대로 꼼짝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고 상대가 지쳐 물러설 때까지.


그 태도와 방식은 그렇게 내 관계의 정원 토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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