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메이커 Aug 05. 2020

마음은 가난하고 형편없는 히말라야 로지의 부자 주인

고쿄 호수 배경으로 먹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뽀글이 라면과 신김치

2017.10.25, 수 오후


고쿄 호수 앞에 착륙하는 헬리콥터. 
고쿄 호수 물 위를 타고 지나가는 구름.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수월해서 우리는 정확히 1시간 만에 로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도 고프고 하루 쉬어갈 겸 아저씨와 나는 각자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있던 봉지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저씨께서는 식당 주인에게 이 라면을 끓여주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협상하려 시도하셨지만 이들은 오직 본인들의 메뉴만 팔 생각뿐이었다.(보통은 숙박하는 로지 식당에서 아침, 저녁 식사를 주문해서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점심은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히말라야에 로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네팔 부자들이다. 그러나 이 로지의 주인은 경제적으로만 부자일 뿐 마음은 부자가 아닌 거 같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뽀글이를 해 먹기로 하고 뜨거운 물 한 병을 주문했다. 며칠 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먹었던 맛이 생각났다. 


  식당 주인은 무슨 불만이 있는지 계속해서 우릴 향해 깐족거렸다. 그것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네팔어로 중얼거렸다. 아저씨도,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마을에서 만난 대부분의 로지 주인들은 이곳처럼 불친절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주인과 손님 관계를 떠나 인간으로서 예의가 없는 태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라면 봉지를 들고 식당 밖으로 나와버렸다.


  "와... 저 거의 100일 만에 맛보는 한국 김치예요(감동)."

  "허허, 그래? 어서 맛있게 먹자고"


  아저씨께서는 한국에서부터 이곳 고쿄까지 약 10일 동안 배낭 깊숙이 가지고 계시던 김치를 개봉하셨다.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의 향이 기분 좋게 코 끝을 찔렀다. 숙소 주인의 빈정댐과 깐족거림으로 인해 기분이 조금 상해있었다. 그러나 한국 뽀글이 라면에 김치 한 조각을 올려 한 젓가락 먹는 순간 모든 것이 용서되고 잊혀졌다.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과 김치를 통틀어서 손에 꼽을 최고의 맛이었다. 


  "와! 진짜 맛있어요."

  "자네 덕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뽀글이 라면을 다 먹어보네, 좋은 추억 만들어 줘서 고맙네" 

  "아우, 아닙니다. 아저씨 덕분에 제가 히말라야에서 신김치를 다 먹어보네요. 감사합니다."


뽀글이 라면과 한국에서 물 건너온 신김치.


  좋았다. 히말라야 고쿄 호수 앞에서 먹는 잊을 수 없는 뽀글이 라면과 한국 신김치였다. 맛있게 라면을 먹은 후 우리는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점심때까지 숙소 주인의 태도는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제저녁 메뉴는 분명 우리가 먼저 주문을 했지만 같은 메뉴였음에도 백인 트레커들의 테이블 서빙이 모두 끝난 다음 가장 마지막에 우리에게 서빙을 해줬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뭔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건넨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쌓여가는 불편한 태도로 인해 이곳에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 먹으며 하루를 더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라즈에게 알아봐 달라고 말하지도 않은 채 내가 바로 움직였다. 주변 숙소를 돌아보며 가격을 알아봤고 우리와 함께 포터 2명도 묵을 수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의 숙소는 이미 예약이 다 차서 어렵다고 했다. 이럴 수가. 어쩔 수 없이 다시 그곳에서 하루를 더 지내야 하는 건가. 그러나 마지막에 들린 숙소에서 다행히도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방금 들렀던 여러 숙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네팔인 남자 직원은 나를 반겨줬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유쾌한 성격의 재미있는 청년이었다.


  "혹시 여기 방 있어요?"

  "(밝은 표정으로) 몇 명인 데요? 일단 들어와요."


  나는 전 숙소에서 어제저녁 그리고 오늘 점심때 있었던 일과 그 로지 주인의 태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얘기를 듣더니 그런 일이 있었냐며 포터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가격도 더 저렴하게 해 주기로 했다. 고마웠다. 뭔가 모르게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다시 숙소로 가서 아저씨 그리고 포터들과 함께 숙소를 옮겼다. 식당에 앉아 핫초코를 한잔 마시며 몸을 녹이는데 그 앞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술이었다. 전에 있던 숙소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이 숙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뷰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고쿄 호수, 친절하고 유쾌한 직원, 더 저렴한 숙식 비용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왜 어제 고쿄에 도착해서 바로 이곳을 찾지 못했을까. 그래도 전에 묵었던 숙소에서 그런 경험을 해봤기에 이곳이 더 좋고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최고로 유쾌했던 새로운 로지의 직원.


  점심때 먹은 라면이 너무 맛있었던 걸까? 배는 고팠지만 다른 음식보다는 한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이곳에 한식은 없었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저녁은 달밧(네팔 전통 음식)으로 주문을 했다. 달밧이 나오자 아저씨께서는 소분해서 가져오신 양념깻잎을 꺼내 나눠주셨다. 대박이었다. 마침 내가 가져온 캔 참치도 개봉을 했다. 행복했다. 점심에는 김치를 먹었고 저녁은 100일 만에 양념깻잎을 먹다니... 역시 한국인은 여러 종류의 반찬이 있는 한식을 먹어야 한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돌아봤다. 긴 이동이 있지는 않았지만 오전에는 어렵게 5,360m에 위치한 고쿄 리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마주한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히말라야 8,000m 대의 고봉들과 고쿄 호수는 정말 최고의 선물이었다. 내 평생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불과 오늘 오전의 본 풍경들이었지만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힘든 순간을 지나며 몸은 힘들고 피곤했지만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좋았지만 내일은 또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스토리들이 펼쳐질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밤이었다. 뜨거운 물 1L를 품에 안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곱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갈수록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최초 목표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룸으로 인해 마음은 편안해지고 풍성해짐을 느끼는 하루였다. 감사했다.


  '건아 오늘도 수고 많았어. 멋지다.'


히말라야에서 마시는 핫초코는 사랑이었다.
달밧.
달밧에 캔 참치 그리고 양념 양념깻잎까지 행복한 저녁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을 꿈꿉니다.

916일 동안 80개 국가, 300개 도시를 방황하였고, 조금 다른 인생을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중.


- 개인 키워드 : 동기부여(울림), 가족, 약자, 자신감, 리더십(영향력), 강점, 세계일주, 퇴사(전역), 도전, 성취, 강연, 공감, 글, 코칭, 관계, 멘토, 달리기(러닝)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captain.lee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eon.lee.52

- E-mail

geonstory@naver.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