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에세이 [EP2]
언젠가 어느 소설 속에서 이런 가사를 발견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 Track 9 中
그저 텍스트의 나열일 뿐인데 왜 그때는 그렇게 내 마음을 울렸는지. 제목조차 언급되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동한 나는 가사를 한 줄 한 줄 검색창에 적으며 제목을 알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찾아낸 노래
처음엔 인상적이었지만 두 번, 세 번 들을수록 빠져들게 되었고 지금은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평생을 함께하고픈 노래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LzfjF1ESIc
그렇다.
우리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우리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다. 새삼스럽지만, 내 이름을 처음 지은 건 내가 아니다. 모든 이의 이름은 부여받은 것, 지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난 내 이름이 어색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를 때면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름과도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친구가 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이 내가 내 이름을 온전히 알고 함께 살아가는 절친한 친구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이름과 처음 친해진 건 언제였을까
다행히도 아마 고등학교 때였나
그랬던 것 같다.
흔치 않은 내 이름과 함께 보낸 시간들
어쩌면 친해지기 전까지 난 '내 이름으로서의 나'와 '없는 이름으로서의 나'를 구분 지었던 걸지도. 지금에서야 뚜렷해진다. 난 내 이름으로서의 나 즉, 외면의 나와 친해지고자 항상 노력했다는 것을
외면의 나는 언제나 완벽하고자 노력했다.
그저 칭찬받는 게 좋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기분이 즐거웠다. 어디 하나 모난데 없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모두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했더니 '없는 이름으로서의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외면의 나가 부러웠다. '없는 이름으로서의 나'는 외면의 나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외면의 나가 될 수는 없었다.
진정한 나는 따로 있었으니까
고민의 연속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은 무엇일까?
그저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진정한 나를 마주 봐야 할까
용기를 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난 내 본모습을 마주 봤다.
그렇게 본 나는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 알았다.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모두 다 그저 나라는 것을
그렇게 난 내 이름과 친해질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가는 복'을 의미하는 내 이름.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지은 이름이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
널 다그쳐 살아가 /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 Track 9 中
노래는 이어져 세상과 나를 연결 짓는다.
세상 속에서 나를 바라보게 한다.
진정한 나와 마주 본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어렵게 이어진 세상에서도 고독해지라고 한다. 나를 더욱더 고독하게,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고 날 다그치라 한다.
이 얼마나 가혹한 처사인가
하지만 어쩌면 부족함을 인정하라는 의미일지 모른다.
우리는 완전함을 바란다.
완전한 성공, 완전한 부, 완전한 명예...
어디에 붙여도 기분이 좋아지는 '완전함'
그러나 본질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이 있을지 미지수다.
우리가 갑자기 태어났을 때도
우리가 나이가 들어 생을 마감할 때도
성공도 부도 명예도 그 어떤 것도 우리와 함께하지는 않는다.
고독하고 부족한 내가 지금 여기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반대로 무엇이 내게 남아있는지 안다는 것
내가 가진 것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추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저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 수 있다는 것, 그뿐이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 Track 9 中
결말, 끝을 향해 달려가는 노래는 점점 더 고조된다.
나를 화나게 하던 세상은 어느새 나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불행 속에 사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혹시 그 사실을 아는가?
인간은 행복하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말버릇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지만
행복을 주관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지속적으로 투여받지 않는 이상 평범한 불행이라는 말대로 생물학적으로 모든 순간 행복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개인의 행복을 최고로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목표를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각자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분명하다.
굳이 모든 순간 행복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의미를 얻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평범한 불행 속에 살고
가끔 특별한 행복을 맞이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힘들겠지
아프고 괴롭고 외로울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삶의 어느 순간에서나 함께할 진정한 나가 지금 여기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 깃든 '없는 이름으로서의 나'
내 존재가 못 미덥더라도, 억지로 걸어가듯 살아가더라도
때론 토닥여주자, 다독여주자, 보듬어주자
그리고 나아가자
이 하늘 거쳐 지나가는 날 위해
이 하늘 거쳐 지나가는 날 위해 - Track 9 中
내 안에는 여전히 서툰 내가 있지만 You've shown me I have reasons I should love myself
내 숨 내 걸어온 길 전부로 답해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 BTS 『 Answer : Love Mysel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