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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익구 Nov 20. 2021

엄마의 손가락

엄마의 손은 튼 정도가 아니라 마디마다 갈라져 있고 그 틈 사이로 검은

겨울이면 엄마의 손가락은 온통 반창고로 감겨있었다. 농사일이 끝난 농한기에도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느라 손이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 끝은 갈라지고 손등은 거북등같이 텄다. 고된 하루 일이 끝나고 잠들기 전이면 가끔 대야에 내 오줌을 받았다. 손가락마다 감겨있던 반창고를 떼어 낼 때 튼 곳이 벌어지지 않도록 무척 조심했다. 오줌에 손을 담글 때는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표정만 봐도 짐작이 갔다. 대야를 안고 한참 손을 담그고 있던 엄마는 어느새 참 편안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손을 만지며 따뜻한 온기를 느끼시는 듯했다.

  엄마의 손은 튼 정도가 아니라 마디마다 갈라져 있고 그 틈 사이로 검은 피가 맺혀 있기도 했다. 손톱은 자라기도 전에 닳고 닳아 손가락 끝이 뭉툭했다. 한참 후에 불은 손을 잘 말린 다음 연고를 바르고 다시 반창고를 감았다. 오줌의 효과가 있었던지 자주 그렇게 하셨다.

  아침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가마니를 짜느라 짚과 씨름하다 보면 어젯밤에 붙였던 반창고는 한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붙여야 했다. 겨울이면 엄마에게 반창고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내가 철이 들었을 때도 엄마의 손가락은 성할 날이 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 아파 일을 좀 그만하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책가방을 집어던지며 울기도 했었다. 정말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으면서 일만 하는 엄마가 가엾고 싫었다.

  중학교 때 일기장을 보면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엄마의 고생을 덜어 드려야겠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다 자란 뒤에도 엄마의 일은 줄지 않았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셨고 늦게 잠자리에 드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무장갑을 하나 샀다. 찬물에 손을 담글 때는 꼭 끼고 일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 애원에 못 이긴 엄마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찬물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장갑을 끼면 감각이 둔하여 그릇을 깨기도 하고 느려서 일이 안 된다면서 기어코 장갑을 멀리했다.

  모든 일에 당신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는 것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 헌신이 없었다면 나의 오늘은 어떠했을까.

  해가 오르기 전, 장독 위에 정화수 올려놓고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히 기도하던 거칠고 뭉툭한 엄마의 손이 그립다. 내 손을 보면서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었을 때의 엄마 손을 생각하면 마냥 슬퍼진다. 손이 조금 험하고 예쁘지 않으면 어떠랴. 손은 그 사람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흔적을 담고 있다. 요즈음 세상에 엄마 손같이 험한 손이 어디에 있겠느냐마는 가끔 시장 어귀에서 만나는 시골 할머니의 손을 보면서 엄마의 손을 떠올리곤 한다. 가난 속에서도 보릿고개를 이겨냈고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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