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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0. 2021

重慶森林은 이곳에

2015년 1월 11일(2일째)-침사추이, 센트럴, 빅토리아 피크

한 손으로 식사하기

여행의 둘째 날 아침은 푹 자서 상쾌한 우리와는 다르게 다소 쌀쌀하고 흐려 보였다. 조식 신청을 안 하고 현지에서 사 먹기로 했기에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일요일 아침의 홍콩 풍경은 우리와는 다르게 거리에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식당에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호텔 앞에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어서 갔는데 넓은 홀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먼저 키오스크에서 메뉴 선택을 했다. 밀크티, 스크램블 에그, 식빵, 마카로니 수프 등 현지 사람들이 많이 먹는 식사를 주문했다. 주문 후에 다른 사람들이 먹고 떠난 자리를 잡았는데 셀프로 많이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종업원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먹고는 그대로 남은 그릇이나 음식물을 테이블에 두고 자리를 떠났다. 적잖이 그 모습이 당황스러웠지만 우리 옆에 있는 홍콩 사람 무리 중에 다행히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이 종업원이 와서 치워줄 거라고 다소 서툴지만 또박또박하면서 친절한 말투로 말해주었다. 나 혼자만 여행 온 것이 아니라 아이와 가족, 친척들도 함께 온 여행이라 긴장하면서 다니는데 이러한 작은 친절은 그런 긴장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이내 음식이 왔다. 아이를 앉힐 공간이 없어서 내가 팔에 안고 한 손으로 식사를 해야 했던 불편함은 있었지만 식사하기에는 충분했다. 


중경삼림의 청킹맨션

다 함께 식사를 한 후 한가롭게 침사추이를 걸어보았다. 호텔 근처 그 유명한 청킹맨션이 있었기에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보았다.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 등장했던 금성무와 임청하의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아직도 속삭여지는 듯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홍콩섬과 카우룽 반도 사이 빅토리아 해협은 진주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빌딩들은 홍콩의 현재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낮에 보이는 홍콩섬의 전망은 밤에 봤을 때와는 색달랐다. 고층 빌딩이 즐비해서 싱가포르나 중국 상하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멀리서 보면 작은 점으로 보이는 곳곳에 사람들이 있으면서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같이 바쁘게 살아갈 홍콩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곳에서 홍콩섬으로 가는 페리 터미널이 있어서 우리는 스타페리를 타고 해협을 건너가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탑승할 수 있어서 종종 이용했는데 다소 기우뚱거려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적응되어 홍콩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페리 터미널

센트럴은 말 그대로 홍콩의 중심으로 침사추이와 더불어서 최대 번화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홍콩 섬은 일찍이 아편전쟁 이후 1842년 영국의 식민지로 개발되어 지금도 수많은 빌딩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의 중심 역시 이곳이다. 홍콩 하면 이 곳 홍콩 섬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역에서 육교를 타고 올라오면 IFC몰이 있는데 아직은 두 손을 묵직하게 만들 수는 없어서 쇼핑은 단념하고 대신 눈으로 쇼핑을 실컷 했다. 그리고 여러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갔다. 홍콩 하면 연상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 에스컬레이터였다. 별거 없이 보이는 거지만 내가 사랑하는 홍콩영화 중 하나 인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청킹맨션과 더불어 나에게는 꼭 와보고 싶은 장소였다. 그렇기 길지는 않지만 다소곳하게 경사가 진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영화 속에서 등장해 엄청난 유행을 불러일으킨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를 떠올려 보았다. 왕페이가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양조위의 집에 숨어 들어가서 옛 여자 친구의 흔적을 지우던 장면이나 양조위의 멋진 제복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생각났다. 이 근처는 소호거리도 있어서 홍콩의 중심부를 간단히 도보로 다닐 수 있었다. 지금보 다소 어렸던 때에 보았던 홍콩 영화에 등장한 장소들을 와보는 것은 팬으로서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장소는 평범한 사람들이 다니는 장소겠지만 그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그 장면이 상상되고 오버랩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홍콩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매력적인 도시였다.

중경삼림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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