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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0. 2021

重慶森林은 이곳에2

2015년 1월 11일(2일째)-침사추이, 센트럴, 빅토리아 피크


소호 거리

특히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은 나에게 있어 인생영화로 꼽히는 홍콩 영화이기에 실제 그 장소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홍콩 여행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 영화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이제 인도, 한국이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항상 성룡, 양조위, 장국영, 주윤발 등 홍콩 배우들과 홍콩 영화들은 추억 속에 함께 하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의 꿈과 이국적인 도시, 언어에 대한 모습은 동경하기에 충분했었다. 이렇듯 홍콩의 매력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한 가지를 한다면 바로 영화의 도시였다는 점이다. 이젠 과거형이 되어 한국사람들은 더 이상 홍콩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고 젊은 층 사이에서 대만 청춘 멜로 영화가 잔잔하게 인기를 얻고 있지만 예전 홍콩 영화는 대단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아와 함께 올라가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느낀 감동은 아직도 느껴졌다. 소호 거리를 들렸다가 카페에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높은 빌딩들 사이로 난 골목길을 다니면서 골동품 구경을 했다. 아이는 걷는 내내 잠들어 있어서 가벼운 점퍼로 몸을 가려주고 아기띠를 한 내가 데리고 다녔다.


빽빽한 홍콩의 빌딩 사이로

저녁에는 피크트램을 타야 해서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 쪽으로 이동했다. 피크트램 편도 예약을 해놓고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길을 걷는 우리는 야경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어른들은 예전부터 들었던 홍콩의 네온사인 가득한 밤거리, 빽빽하다 못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천루가 즐비한 홍콩의 밤하늘과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어 했다.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 2'에서도 주윤발이 죽어가는 장국영과 함께 있을 때 홍콩의 야경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건 나와 아내, 어른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빅토리아 피크로 가기 위해 먼저 피크트램을 타야 했는데 1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트램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야경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홍콩의 여행객은 모두 모인 듯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아이는 내가 한 아기띠를 집처럼 편안하게 있었다. 줄을 서고 기다려야만 하는 곳에서 갑자기 칭얼거리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난감했겠지만 앞의 긴 줄이 사라질 때까지 잘 있어주었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 야경

한 시간 정도 기다린 후 타이핑 산(太平山)의 정상에 위치한 피크 타워로 가기 위한 트램을 탔다. 바로 우리 앞에서 대기줄이 시작되어 우리는 맨 앞에 서서 멀어지는 홍콩 시내를 바라보았다. 경사진 면을 오르는 트램도 신났지만 눈 앞에 담길 홍콩의 야경에 눈이 반짝거렸다. 트램을 타고 올라온 빅토리아 피크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홍콩의 야경을 배경 삼아 사진 속에 남기고 있었다. 이 지역은 홍콩 섬에서도 높은 지대였지만 식민지 시대 영국인들은 이곳에 살았었다. 홍콩의 더위와 습한 날씨를 피해 다소 온난했기에 기후를 찾아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홍콩의 부유층들은 산 중턱에 많이 산다고 한다. 어차피 이동하는 것은 예전에는 가마가 있다면 지금은 자동차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약간 불었지만 날이 맑아서였는지 반짝이는 빌딩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가로등 들은 밤하늘에 박힌 별들의 빛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산이 많은 주룽 반도에 세워진 성냥갑 같은 빌딩들은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 전경을 내려다보는 우리 가족에게는 홍콩의 모습이 경이롭게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참을 구경한 후 내려와 홍콩역 근처 센트럴 선착장에서 스타페리를 탄 다음에 기우뚱 거리는 배 안에서 빅토리아 만을 지날 때까지 홍콩 섬의 야경을 계속 눈에 담았다. 그리고 우리의 잠자리가 있는 침사추이로 돌아왔다. 침사추이에서 다소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스타페리 선착장

하루 종일 아기띠를 매고 다니기에 어깨 부근이 조금 뻐근하기도 했지만 그리 무겁지 않은 몸무게 때문에 괜찮게 다닐 수 있었다. 오히려 아이가 걷지 않고 이렇게 안고 다니는 것이 속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걷기 시작하면 어디론가 갈 것 같고 가다가 다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기띠를 쓸 수 없을 때가 되면 뭔가 안기만 할 수도 걷기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니 팔로 안아야 해서 더 힘들 듯했다. 밖에 있는 내내 아기띠를 집 삼아서 잘 있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이렇게 무사히 둘째 날이 저물어 갔다. 내일부터는 홍콩을 떠나 마카오로 가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남동생, 어머니, 나, 아이, 아내










홍콩의 낮
홍콩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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