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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0. 2021

甛蜜蜜에서 賭神으로

2015년 1월 12일(3일째)-마카오 세나도 광장 일대

고작 이틀밖에 없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창 밖을 바라보면 간판이 가득한 홍콩 거리가 익숙해 보였다. 어느새 정겹게 느껴지는 홍콩을 떠나 마카오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다들 일어나 호텔 앞에 있는 식당에서 달걀 프라이와 식빵, 커피로 식사를 간단하게 한 후 짐을 싸고 체크 아웃을 했다. 거리는 다소 쌀쌀하게 느껴졌지만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설렘으로 가득한 마음 덕분인지 홧홧해진 기운을 갖고 마카오로 가는 페리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나는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캐리어는 내가 끌고 가기도 하고 아내가 끌고 가기도 하고 그랬지만 아이만큼은 이동할 때 무조건 내가 안고 갔다. 아내는 아이가 보채면 달래주기도 해야 하고 배고프면 모유 수유도 해야 해서 다닐 때만큼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다녀야 했지만 다행히도 아기띠가 있어서 참 편리했던 여행이었다. 조금만 더 크면 사용할 수 없는 아기띠인데 안고 다니니 양손이 자유로워 다니기가 훨씬 편하고 좋았다. 


일국양제의 홍콩

페리 선착장은 페닌슐라 후문부터 켄톤 로드(廣東道, Canton Road)를 따라 스타의 거리 반대편으로 쭈욱 걸어가야 등장했다. 켄톤 로드하면 빠질 수 없는 홍콩 영화가 '첨밀밀(甛蜜蜜)'이다. 중국의 농민공으로 돈을 벌기 위해 화려한 홍콩으로 온 남자 여명과 역시 중국 본토 출신이면서 부자를 꿈꿨던 여자 장만옥의 러브 스토리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홍콩의 정신없는 네온사인에 사라지는 듯한 모습이 여운을 남겼던 영화 '첨밀밀'에서 여명이 장만옥을 자전거에 태우고 이 명품이 즐비한 켄톤 거리를 지나가는데 그때 등려군의 노래가 나오면서 영화 내내 감성을 부여잡는다. 이내 30분 전부터 탑승이 가능하다 하여 그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평일 아침의 출근길에 일터로 가는 사람들을 따라 켄톤 로드의 화려한 명품 가게들을 세워두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려 선착장에 도착했다. 


잠들었지만 느낌은 다른 아이와 아내

아침 7시 30분에 도착해 수속 절차를 밟은 다음 배에 탔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배가 많이 흔들릴 것 같아서 다들 어서 잠이나 잤으면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크지 않는 유람선 정도의 배라서 그런지 출발하기 전이나 출발하고 나서도 흔들림이 많이 느껴졌다. 멀미가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이때 잠들어 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와 다르게 나는 어지럼증에 가는 내내 불편함을 느껴서 어서 마카오에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홍콩과 함께 묶여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마카오는 홍콩보다 훨씬 작은 규모여서 우리는 하루만 묵기로 했다. 하루만 있기에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지 페리의 유리창 밖으로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도박의 도시, 마카오에는 주윤발이 영화 '도신(賭神)처럼 멋진 턱시도 복장을 하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건설 중인 마카오 카지노 호텔들

마카오(澳門, Macau)는 홍콩처럼 중국의 특별행정구이다. 하지만  인구가 800만 명에 가까운 홍콩과는 다르게 60만 명 정도로 작은 도시이다. 그래서 중심가는 걸어 다닐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예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홍콩보다는 2년 늦은 1999년 12월 20일에 중국으로 귀속되고 특별행정기구로 지정되었다. 마카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중국의 라스베이거스, 중국 안의 유럽이라고 불리는 작은 도시 이미지이다. 이미 카지노 수입 규모로는 라스베이거스를 앞지른 지 오래인 명실상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으뜸가는 도박의 도시인 것이다. 대개는 홍콩 옆에 붙어있는 카지노 도시라는 인식이 강한 도시지만 포르투갈의 식민지 시절이 있어서인지 곳곳에 유럽 양식의 건축물과 문화재가 산재해있다. 그 유명한 성 바울 성당, 세나도 광장이 있고 골목 곳곳에도 유럽이 물씬 느껴진다. 물론 중국풍의 건물도 많은 도시이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아내는 마카오 하면 에그타르트를 제일 먼저 외쳤다. 홍콩에서도 에그타르트를 사 먹었지만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다며 마카오 여행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마카오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먼저 호텔 버스를 타고 세나도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작은 도시니 만큼 이동하는 데에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나도 광장까지 무료로 운영되는 호텔 버스로 도착했을 때 비는 계속 마카오를 적시고 있었다.


세나도 광장에서 비를 맞으며

세나도 광장은 마카오를 홍보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이다. 중국의 유럽이라고 불리는 마카오에서 세나도 광장은 그 중심에 위치한다. 세나도(Senado)라는 뜻은 포르투갈어로 의회를 일컫는다. 작은 광장이지만 빗방울로 촉촉하게 적셔진 광장 바닥은 더욱 그 색깔을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돌을 깔아 만든 물결무늬가 아름다운 광장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광장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홍콩에서 넘어온 지 1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유럽에 온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다른 모습이었다. 아직은 오전이라 배가 고프지 않아 이 근처를 둘러보고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세나도 광장 주변에는 옛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즐비해 유럽 감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비가 오고 있어서 아이를 안고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게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동생 점퍼로 앞을 가리고 다니니 아이 비도 막고 추위도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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